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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CHANISM] 무인차 시대의 필수 기술 - 드라이브-바이-와이어 

 

글 정진구 모빌리스타 칼럼니스트
올해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행사인 ‘CES 2015’에서 주목을 받은 제품은 가전이 아닌 자동차였다.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거대 자동차 회사가 앞다퉈 무인 자동차를 무대에 올렸다. 아우디의 무인차 잭(Jack)은 CES 2015 개막 전날 실리콘밸리를 출발해 900km를 달려 행사장에 도착했다. 심지어 구글과 애플까지 무인차 개발에 가세했다. 스마트폰 다음의 정보통신(ICT) 트렌드는 무인 자동차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세계 최초의 양산 ‘스티어-바이-와이어’ 시스템인 인피니티의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 공기 수준의 3중 안전장치를 갖췄다.
자동차에도 디지털 컨버전스 바람이 불고 있다. 디지털과 자동차 기술의 융합은 무인차 시대로 가기 위한 핵심 단계다. 이런 융합을 위해선 ‘드라이브-바이-와이어’ 기술이 필수적이다. 전자식으로 자동차의 주요 부품을 작동시키는 이 기술은 다른 전자식 안전장치와 결합이 쉬워진다. 기계적인 연결 장치를 없애 실내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요즘 나오는 메르세데스-벤츠 신차의 센터콘솔에는 기어 변속 레버가 없다. 변속 레버는 특이하게도 스티어링 칼럼의 오른편에 자리한다. 낯설지만 상당히 편리하다. 전통적인 변속 레버와는 달리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P, R, N을 거치지 않고 D를 바로 선택할 수 있다. 물론 D와 마찬가지로 P와 R로도 이동할 수 있다. D에서 P로 바꿀 때 R을 거치면서 생기는 순간적인 변속 충격도 사라졌으니 장기적으로는 변속기의 내구성에도 도움이 된다.

공간 활용성 역시 뛰어나다. 변속 레버가 스티어링 칼럼에 자리한 덕에 센터 콘솔에는 대신 큼지막한 팔걸이와 컵홀더가 들어 갔다. 재규어ㆍ랜드로버 역시 혁신적인 인테리어로 눈길을 끈다. 창의적인 인테리어의 중심은 ‘드라이브 셀렉트’라 불리는 다이얼 변속기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변속 레버와 동일한 기술이 스며있다. 바로 ‘드라이브-바이-와이어(Drive -by-Wire)’ 기술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CES2015에서 공개한 무인차의 실내. 곳곳에 ‘바이-와이어’ 기술이 스며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드라이브-바이-와이어 기술을 바이-와이어 혹은 줄여서 DbW라 부른다. 여기서 와이어는 전선을 뜻한다. 즉 자동차의 각 부품을 전선을 통해 전자식으로 연결한다는 의미다. 종전의 기계식 연결보다 많은 장점이 생긴다. 각 부분을 연결하는 유압펌프나 벨트, 샤프트 같은 기계적인 부품이 사라져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센터콘솔이나 대시보드 하단에 수납공간을 마련한 볼보의 센터스택이 좋은 예다.


안전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각 부분을 연결하는 기계적인 장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충돌 사고가 났을 때 탑승자가 연결 부품에 상해를 입을 가능성이 줄어 든다. 또 ABS나 VDC 같은 전자식 안전장치와 연동이 간단해져 다양한 안전장비를 손쉽게 달 수 있다. 앞차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속도를 줄이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이나 앞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스스로 차를 멈추는 볼보의 ‘시티 세이프’ 기술이 그렇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에도 제약이 줄어 일반차를 장애인 전용차로 손쉽게 개조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자유를 누리게 해주는 인간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연비 경쟁이 살벌한 요즘 신차 개발에서 바이-와이어는 핵심 기술로 등장한다. 기계적인 연결 장치가 줄어들어 무게를 줄일 수 있어서다. 무게가 줄면 연비가 높아져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전자식 프로그램의 변경만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재미를 바꿀 수 있고 기계적인 연결보다 작동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엔진과 스로틀 밸브, 변속기를 전자식으로 조절하는 기술은 빠르게 보급이 확대됐다. 그러나 브레이크와 스티어링 부분은 전자장비가 부수적인 역할만을 할 뿐, 아직도 기계적인 연결 장치가 달려있다. 전자식 장치에 문제가 생길 경우 주행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바이-와이어 기술은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 사람이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부분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도로교통에 관한 국제협약(제네바 협약)’이나 미국, 유럽 등의 교통 관련 법규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운전자가 차량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시스템의 신뢰성이 충분히 검증되기 전까진 100% 바이-와이어에 의존하기 어렵다.

충분한 신뢰성을 확보해도 기계적인 연결보다 비싼 가격이 문제다. 대당 가격이 수백 억원이 넘는 항공기에선 모든 부분을 전자식으로 제어하는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 까지 확대됐지만 대당 가격이 1억원 미만인 대중 자동차에서는 보급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바이-와이어 기술은 요즘 여러 분야로 확산된다. 스로틀-바이-와이어(Throttle-by-Wire)는 말 그대로 전자식으로 엔진과 스로틀밸브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엑셀 페달과 스로틀밸브를 케이블로 연결했다. 엑셀 페달을 밟으면 케이블을 당겨 스로틀밸브를여는 식이다. 스로틀-바이-와이어를 도입하면서 이런 케이블이 사라졌다. 스로틀밸브에 전기 모터가 붙어있고, 엑셀 페달에는 밟히는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가 달려있다.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전기 모터가 돌아가며 밸브를 조절한다. 기계식 연결보다 정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연비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다양한 전자장치와 연동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과 연결돼 버튼을 눌러 속도를 설정하는 것만으로 자동차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VDC와 연동하면 위급상황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스로틀밸브를 닫아 속도를 줄인다.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엔진 반응을 설정할 수 있는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 기능도 이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다. 앞에서 설명한 쉬프트-바이-와이어(Shift-by-Wire)는 가장 활용도가 높다. 자동변속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더 이상 기계식 변속 레버를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뢰성과 높은 가격이 걸림돌

브레이크-바이-와이어(Brakeby-Wire)는 요즘 새로운 신기술로 각광받는다. 유압으로 작동하는 기존 브레이크보다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브레이크를 작동시키기 위한 유압 호스나 부스터 같은 기계 장치를 모두 없앨 수 있다. 무게가 줄고 연비가 좋아진다. 브레이크 오일이 필요가 없어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유압식 브레이크보다 작동 속도가 빠르고, 네 바퀴에 달린 센서로 이상적인 제동력을 분배해 최적의 제동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유압식 브레이크에 비해 제동거리가 15% 이상 줄어든다. 또 브레이크 부품을 작게 만들 수 있어 자동차 바퀴의 안쪽에 모든 서스펜션 부품이 들어가는 첨단 ‘액티브 휠’에도 쓰인다. 현재 포뮬러1 경주차의 뒤 브레이크에 이 기술이 일부 접목돼 있다.

전자식 조향 기술인 스티어-바이-와이어(Steer-by-Wire)는 일부 건설장비에나 쓰일 뿐, 아직 일반 승용차에는 보급이 더디다. 기계식 조향 장치보다 값이 많이 비싸고, 전원이 나가는 응급상황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돌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에게 가장 큰 상해를 입히는 스티어링 휠과 칼럼을 없앨 수 있어 운전자의 안전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네 바퀴가 독립적으로 조향이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어 보다 안정적으로 코너를 돌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도 손쉽게 주차를 할 수 있다.

무인차 시대로 가기 위한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이 기술은 2013년 인피니티가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앞서 언급한 법적인 문제 때문에 스티어링 칼럼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지만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요즘 신차는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거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날카로운 키를 구멍에 꽂고 키를 돌려 시동을 거는 방식이 불과 5,6년 전만 해도 대부분이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고급차에나 달렸던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과 ABS가 요즘은 경차의 기본 장비다. 드라이브-바이-와이어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다. TV 외화 시리즈 ‘전격제트작전’에 나오는 키트처럼 스스로 운전하는 무인차를 볼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1288호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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