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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완벽한 계획이 만능은 아니다 

MBA와 유치원생간의 마시멜로 게임 대결 … 시행착오 통한 휴리스틱이 문제 해결 지름길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ted.com
양복을 차려 입고 페덱스에 첫 출근한 톰. 작업복 차림의 중년 흑인 여성이 다가와 일손이 딸려서 그러니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한다. 기꺼이 그러겠노라 하고 따라 나섰는데 하필이면 배송창고로 향하는 게 아닌가. 톰은 난처한 표정으로 “죄송하지만 저는 배송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여직원 왈 “아, 걱정 마세요. 배송코드를 인터넷에 입력하기만 하면 되요.” 다시 톰, “아, 이해를 못 하셨나 본데 저는 MBA입니다.” 당황한 표정의 여직원 “아, MBA셨군요. 그럼 어떻게 입력하는지 처음부터 가르쳐 드려야겠네요.” 예전에 TV에서 본 페덱스 광고의 한 토막이다.

다리를 침대에 맞춰 늘리고 줄여서야


▎스파게티 국수, 테이프와 실, 마시멜로 등으로 창의성과 협동심을 테스트하는 마시멜로 게임. / ⓒted.com
MBA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커리큘럼 자체가 경영 이론과 현실을 접목시킨 만큼 아무래도 타 전공에 비해 경영 현장에서 인기가 많다. 하지만 기대와 실망은 비례하는 법.물론 MBA 출신 중에 출중한 사람이 더 많기는 하지만 일부는 학교에서 배운 경영이론을 맹신하고 복잡다단한 현실을 무리하게 이론에 끼워 맞추려 한다. 경영학에서 배운 문제 해결의 도구와 접근방식이 요행히 현실에 잘 들어맞는 경우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현실을 간과하고 고지식한 이론에만 집착하는 것은 행인의 다리를 침대에 맞게 늘리고 줄이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와 다를 바 없다.

이론이 현실을 가이드하고, 현실이 이론을 강화시킬 때 제대로 된 경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배운 도식화된 지식이 실제 현장의 문제 해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게임이 있다. 톰 우젝(Tom Wujec)은 엔지니어링이나 영화 제작용 설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오토데스크(Autodesk)의 팰로우이다. 그는 경영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복잡한 문제를 이미지나 스케치 등으로 시각화해서 쉽게 해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비즈니스 시각화(Business visualization)’의 전도사이다. 그가 즐겨 활용하는 마시멜로 게임(Marshmallow challenge)을 통해 교과서를 뛰어 넘는 창조적 문제 해결의 힌트를 얻어보자.

마시멜로 게임은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20개의 스파게티 국수가락, 약 90cm의 테이프와 실, 그리고 마시멜로 한 개를 갖고 가장 높은 탑을 쌓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제한 시간은 18분이고, 마시멜로는 반드시 탑 꼭대기에 놓여져야 한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어렵다. 스파게티 면은 너무 약해서 금방 부러지고, 간신히 높이 쌓아도 중심이 흐트러지면 탑이 쓰러진다. 팀원들이 빠르게 협동해야 하는 건 필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이 시작되면 먼저 팀 내 주도권을 정하고,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탑의 구조를 계획하고 구성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스파게티 국수로 탑 구조를 쌓아 올리는데 활용한다. 그러다 결국 제한시간이 되면 누군가 마시멜로를 집어 들고 아주 조심스럽게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모두 뒤로 물러나 ‘앗싸’를 외치며 자신들의 작품에 감탄한다. 하지만 대개 ‘앗싸’가 ‘으악’으로 바뀐다. 마시멜로의 무게 때문에 전체 탑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실패가 많은 사람들은 MBA를 막 졸업한 사람들이다. 유치원생들로 구성된 팀 만도 못하다. 왜 그럴까? MBA들은 한 가지 완벽한 방법을 찾도록 배워 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여 가장 효율적일 것 같은 방식을 선택한 후 드디어 탑을 쌓기 시작하지만 첫 번째 도전은 대개 실패한다. 그러면 다시 머리를 맞대고 차선책을 찾아 토의하다가 결국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린다.

이와 달리 유치원생들은 일단 이런 저런 방식으로 막 쌓고 본다. 실패해도 개의치 않고 다시 시도한다. 그러다 얼결에 낮은 층의 탑 쌓기에 성공하면 거기에 조금씩 변형을 가해 결국 제법 그럴싸한 탑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어떤 부분이 맞고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어가면서 모양을 개선해 가는 것이다. “아이처럼 그리는데 평생이 걸렸다”는 피카소의 말처럼 어쩌면 아이들은 창의성과 천재성을 타고나는지도 모르겠다.

톰 우젝은 MBA와 유치원생들 외에도 다른 여러 그룹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게임을 진행했는데 그중에는 포춘 50대 기업 CEO들로만 구성된 팀도 있었다. 이 팀의 성적은 어떨 것 같은가? CEO 팀도 MBA보다는 조금 낫지만 역시 유치원생들보다는 못한 성적을 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CEO와 수행비서로 구성된 혼합 팀은 유치원생들을 능가했다는 것이다. 역시 CEO는 수행비서가 옆에 있어야 실력을 발휘하는가 보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하는 리얼옵션형 사고 필요


▎‘마시멜로 게임’ 강연 동영상.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성인 팀들이 마시멜로를 맨 마지막에 놓는 데 비해 아이들은 보통 처음부터 마시멜로를 맨 꼭대기에 놓고 그 아래에 탑을 만든다는 것이다. 놀랍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체론(Holism, 현상의 전체성을 강조하고 전체가 단순히 부분의 총합은 아니라고 보는 이론)과 휴리스틱(Heuristics,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하거나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의 기술)의 대가였던 것이다.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경영 문제들은 실제로 마시멜로 게임과 닮은 구석이 많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문제가 대부분이고, 시간은 항상 빠듯하다. 블루오션이라고 해서 들어가 보면 이미 붉은 빛이고, 기술로 승부하는 진검승부 시장에서도 종종 가격이나 디자인으로 치고 나오는 엉뚱한 기업이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일단 작게 시작해 보고 상황 변화를 지켜본 후, 거기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해 가는 리얼옵션(Real option)형 사고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운 기본 품새만 가지고는 길거리 싸움을 감당 못 하듯이, 현실에서는 적당한 변칙과 임기응변이 더 효과적이다.

유교문화의 잔재인지, 군사 정부의 흔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기업들은 딱딱한 ‘보고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회사 일은 보고에서 시작해서 보고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큰 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보고는 양날의 검이다. 회사의 보고 라인을 따라서 보고서를 다듬다 보면 계획의 완성도는 분명 높아진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려지고 실행력이 무뎌진다는 문제가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처럼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영환경에서는 번듯하고 치밀한 계획보다는 당장 팔을 걷어 부치고 정면 돌파하는 대범함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영학은 철학처럼 진리를 깨치거나 자연과학처럼 정답을 찾는 매력적인 학문이 아니다. 수백 가지 변수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어렵게 경쟁하고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근사치를 찾는 아주 세속적인(?) 학문이다. 또 사이언스 측면도 있지만 아트 측면도 강하다. 탄탄한 이론과 함께 살아있는 현실 감각을 갖추고 둘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유지해 가는 기업만이 살아 남는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289호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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