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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해운업 살아날까] 순풍에 벌크선 속도 슬슬 높여 

운임지수 반등세 ... 벌크선 비중 큰 팬오션 품은 하림에 호재 


▎팬오션의 벌크선. 최근 벌크 해운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면서 팬오션을 인수한 하림에도 호재가 될지 주목된다
팬오션을 인수한 하림그룹이 웃을 수 있을까? 해운 업황의 개선 여부에 따라 하림의 이번 인수 이후에 대한 전망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해운 업계는 끝모를 장기 불황으로 최근 5년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 간판 해운사인 한진해운은 2012년 1098억원, 2013년 412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상태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지난해 821억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하며 반등한 게 위안거리다. 현대상선도 2012년 5096억원, 2013년 3627억원, 지난해 2349억원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하는 아픔을 맛봤다. 팬오션의 지난해 매출은 1조6456억원으로 2년 전인 2012년 매출(5조4178억원)의 3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최근 세계 해운 경기가 조금씩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해운업의 경기선행지수라 할 BDI(Baltic Dry Index)가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BDI는 영국 런던의 발트해운거래소가 산출, 1999년 11월부터 발표하고 있는 종합 운송지수다. 특히 석탄이나 철광석 같은 원자재와 곡물을 운반하는 벌크선의 시황을 나타내는 데 쓰여 벌크선 운임지수라고도 한다. 원자재나 상품을 운반하는 양이 많아질수록 BDI도 오른다. 이는 전 세계 교역량이 증가하고 있음을 뜻한다.

벌크선이 팬오션 매출의 80% 차지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BDI는 6월 17일 725로 전날인 16일(681)보다 44포인트, 15일(656)보다는 69포인트 올랐다. 비록 지난해 10월 1428을 기록했던 데 비하면 반 토막이 났지만, 올 1~6월 500~600대 구간을 횡보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사정이 나아졌다. 하준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1분기 벌크 해운 시장 비수기로 BDI가 500~700 저점에서 움직였고 2분기 들어 바닥에서 반등했다”고 말했다. 비수기를 감안해도 그간 BDI 하락세는 두드러졌다. 지난해 1분기 BDI는 1100~1600대로 같은 해 2~4분기보다 양호했다.

팬오션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있어 BDI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팬오션은 전체 매출에서 벌크선을 통한 화물 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할 만큼 벌크선 의존도가 높다. 벌크선으로 철광석과 석탄, 곡물 등을 포장 없이 나르며 거래 업체들로부터 운임을 받는다. 현대상선 같은 경쟁사가 컨테이너선 비중(전체 매출의 80%가량)이 더 큰 것과는 대비된다.

더욱이 팬오션은 STX그룹이 해체된 2013년 6월부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새 주인을 애타게 찾던 상태였다. 벌크선 운송에서는 대형 업체와 장기 운송에 대한 계약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법정관리 하에서는 입찰 참여가 제한돼 불리한 처지였다. 장기 운송 계약을 따내지 못할 경우 벌크선들을 쓰지 않고 방치하는 상태로 용선료는 계속 내야 해 악순환이 거듭된다. BDI가 좀체 개선되지 않을 때 선박 해체를 결정하는 선사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팬오션으로서는 하림의 이번 인수로 이르면 7월 중 법원의 허가를 거쳐 법정관리를 졸업할 가능성이 커진데다, 최근처럼 BDI 개선이 이어질 경우 향후 장기 운송 계약을 하는 데도 청신호가 켜지게 돼 고무적이다.

증권가는 올 연말까지 BDI가 1000선을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경하 동부증권 연구원은 “침체됐던 전 세계 벌크 해운 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다”며 “지난 5년간 경기선행지수로서 가치를 잃었던 BDI가 다시 실물 경기를 온전히 반영하는 지표로 거듭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3년간 BDI 진폭이 짧아지고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벌크 해운 업황의 회복 여부에 물음표가 따랐지만, 벌크선 선복량(적재 가능한 최대 화물중량, 해운용역 공급량 지표)이 감소세로 전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벌크 해운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통상 선복량이 증가하면 공급 과잉으로 운임이 하락할 수밖에 없어 업황은 그만큼 악화되는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유 연구원은 세계 벌크 해운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중국 철강 업체들의 절대적 재고량이 올 들어 적었던 만큼, 이들 업체의 철광석 재고 비축 수요도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한편 컨테이너선을 빌리는 가격을 지수화한 컨테이너선 운임 지수인 HRCI(Howe Robinson Container Index)도 지난해 12월부터 급락하면서 올 초 540선으로 주저앉았지만 6월 17일 현재 779.3로 반등했다. 호황기이던 2005년 한때 HRCI가 2100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치이지만 의미 있는 반등세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컨테이너선은 올해까지 대형선 선복량이 전년 대비 20% 넘게 증가하겠지만 내년에는 1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수급이 균형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주요 해운사들 1분기 실적 개선

국내 주요 해운사들의 실적이 올 들어 개선되고 있는 것도 해운업 부활론에 힘을 실어준다. 팬오션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6% 증가한 589억원이었고, 매출도 3877억원으로 10.8% 늘었다. 한진해운은 지난 2010년 3분기 이후 분기별 최대 영업이익인 1550억원을 올 1분기에 기록했고, 현대상선도 같은 기간 42억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하면서 5년 만에 1분기 흑자를 달성했다. 매년 1분기가 업계 비수기임에도 이들 기업은 유가 하락 호재에 따른 연료비 절감, 화물 운송 루트의 최적화, 성공적인 물류비 관리 등으로 호실적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물론 끝을 모른 채 침체됐던 업황이 당장 드라마틱하게 반전 하리라 속단할 순 없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올해 국내 해운업종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5월 해운업의 BSI는 전월 대비 5포인트 하락한 61에 머물렀다. BSI가 100이 넘으면 경기 전망이 그만큼 밝다는 의미이지만 100 미만인 경우는 그 반대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그런가하면 중국의 5월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확정치도 49.2로 기준치인 50에 3개월 연속 미달됐다. 중국의 제조업 경기가 그만큼 부진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환경 규제로 중국 내에서 석탄 수입량이 줄어들면서 국내 벌크 해운사들도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5월 기준 국내 컨테이너선 부문 BSI가 채산성, 자금 사정, 매출 항목에서 각각 100, 106, 106을 기록하는 등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는 신호도 같이 나오고 있다. 침체 늪에 빠져 방황하던 해운업이 점진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이 유효한 이유다.

1291호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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