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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만물이 서로 다름은 자연의 당연한 이치 

같은 물건도 품질·수요에 따라 가격 달라 … 세종은 토지에 따라 세금 달리 걷어 

김준태 칼럼니스트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보아오(博鰲) 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만물이 제각기 다른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夫物之不齊 物之情也)’는 맹자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문명 사이에 우열은 없고 오직 특색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각각의 문명, 나라들이 차이를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의 장점을 배우며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맹자] ‘등문공’편에 나오는 이 말은 시장에서 물건의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맹자의 제자 진상은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허자(許子, 제자백가 중 農家의 한 사람)의 학설을 따른다면, 시장의 물건 값은 싸고 비싼 구별이 없고, 나라 안에 속이는 행위가 없어질 것입니다. 설령 어린아이를 시장에 보낸다 하더라도 그를 속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베와 비단의 길이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굵은 베와 가는 베 또는 비단실과 무명실의 무게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오곡의 수량이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신발의 크기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을 것입니다.” 모든 물건의 기준가격을 동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건 값이 균일하여 예측이 가능하게 되면 백성들은 더욱 편리하게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시진핑 “문명과 국가에 따른 차이 존중해야”

맹자는 반박했다. “무릇 만물이 제각기 다른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어떤 물건의 가격은 차이가 배 또는 다섯 배가 되고, 어떤 물건은 차이가 열 배, 백 배나 되며, 또 어떤 물건은 차이가 천 배, 만 배나 된다. 그런데 그대는 모든 물건의 값을 똑같이 하려 하니, 이는 천하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굵고 거칠게 삼은 신과 가늘고 세밀하게 삼은 신의 값을 똑같이 한다면 사람들이 무엇 하러 힘들여 가늘고 세밀한 신을 만들려 하겠는가? 허자의 학설을 따르는 것은 천하 사람들을 거느리고 허황하고 거짓된 곳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물건마다 종류가 다르고 품질도 다르다. 희소성도 다르고 값어치도 다르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가격을 획일화한다면 시장질서는 교란되고, 양질의 물건도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게 맹자의 판단이다.

이 문제는 조선 조정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 여기서는 물건 간의 가격획일화가 아니라 특정 물건의 가격고정화를 논의한다. 1795(정조19)년, 좌의정 유언호는 이렇게 건의한다. “분기마다 조정에서 방출하는 미곡이 1만여석이 넘는데 여전히 시장의 가격은 조금도 안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부유한 상인들이 사재기를 하여 미곡의 유통을 막고 이익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대체 방출한 곡식들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입니까. 늘 가격을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격을 조작하도록 좌시해서는 안 됩니다. 속히 평시서(平市署) 제조(提調)로 하여금 민정을 자세히 살피고 시장의 폐단을 널리 자문하게 한 다음, 이를 참작하여 지난 몇 년 동안의 평균 가격을 토대로 획일적으로 가격을 정하도록 하소서.” 가격고정을 통한 곡식가격안정화 조치를 주장한 것이다.

정조는 동의하지 않았다. “말은 좋은 말이다. 그러나 관에서 가격을 획일적으로 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만물이 제각기 다른 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사꾼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인데 (가격고정화로 인해) 도성 시장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겠다고 판단한다면 싣고 오던 물자를 들고 배를 돌려 다른 데로 가지 않는다고 어찌 보장하겠는가”(정조19.2.10).
물가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지 정부에서 획일적으로 고정시켜놓아서는 안 된다. 이는 결국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처사이다. 정조는 대신 매점매석을 통해 가격을 조작하려는 움직임을 엄단하고, 물자의 원활한 시장공급을 지원하는 일에 치중했다.

물건의 개별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인식은 조세문제에도 반영됐다. 세종 때 영의정 황희는 토지세 부과와 관련해 “지금 비록 고을마다 토지를 9등급으로 나누고자 하나, 만물이 제각기 다른 것은 자연의 이치인 까닭으로 같은 고을이라 해도 같은 등급으로 정하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며 보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세종22.7.13) 토지등급의 선정을 고을 단위로 적용했는데, 같은 고을의 토지라 해도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획일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이를 보완하여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6등급, 풍흉의 정도에 따라 9등급, 총 54개의 등급으로 부과기준을 세분화했다. 세종 26년부터 시행된 ‘전분6등법 연분9등법’이 바로 그것이다.

맹자의 이 정신은 나아가 모든 개별자들이 갖고 있는 차이에 대한 존중으로 확대된다. 순조가 즉위하자 재상들은 연명으로 군주의 도리에 대해 진언했는데, 그중 한 구절이다. “만물이 제각기 다른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때문에 위에 있는 이의 말과 행동이 중요한 것입니다. 모두가 마음을 열고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조율하며 올바른 정치를 이끄셔야 합니다”(순조 즉위년.8.1).

백성들은 제각기 다르다. 살아온 과정도 다르고 살고 있는 환경도 다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도 다르다. 따라서 모든 이의 역량을 모아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획일화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별성이 발휘되는 가운데 하나 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재상들은 백성의 ‘제각기 다름을 존중하고 조율하는’ 임금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 ‘차이에 대한 존중’은 갈수록 중요시되고 있다. 앞에서 사례로 든 물가의 자율조정이나 수요자 맞춤형 정부정책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가 간 교류확대, 글로벌 기업의 성장, 다문화사회의 확장 등 변화된 환경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강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 사유의 기저 속에는 아직도 ‘다름’과 ‘차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와는 다르거나 우리와는 다른 타자에 대해 ‘구별’하고, ‘분리’하여 불편한 시선으로 대한다. 우열의 잣대를 적용하고 심지어 배척하기까지 한다. ‘만물이 서로 다름은 자연의 당연한 이치’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조 “물가는 시장에서 결정”

우리는 나의 주관적인 잣대로, 혹은 우리만의 잣대로 타자를 평가하거나 획일화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는 개인이나 조직이나 국가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로마, 몽골, 고구려와 같이 역사 속의 강대국들은 하나같이 다양한 민족을 융합시키고 그 문화를 포괄해 낸 다양성과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다. 차이를 존중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가 ‘만물이 다름’을 전제하고 그에 맞춰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93호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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