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대책을 위한 대책에 안주하지 말라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

1930년 프랑스 정부는 독일을 맞대고 있는 국경선을 따라 400km에 달하는 큰 요새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대의 만리장성에 비유될 만큼 견고하고 길었다. 방벽 안에 몇 겹에 이르는 벙커를 만들고, 그 지하로는 벙커와 벙커 사이를 연결하는 조밀한 통로와 더불어, 군인들이 몇 개월에 걸쳐 외부의 보급 없이 버틸 수 있는 식량과 탄약, 여타 보급품 창고도 지었다. 각 벙커는 야포 및 대전차포,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되어 있었다.

이 거대한 요새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히틀러가 집권한 후 독일의 재무장 조짐에 불안해진 군 수뇌부에서 나왔다. 조프레(Joffre) 원수(元帥)라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놓자 이를 당시 전쟁부(Minister of War) 장관이었던 마지노(Maginot)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 요새 건설은 1939년까지 계속되었고 당시 30억 프랑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다. 마지노 라인이 완성되자 군사전문가들을 비롯한 프랑스의 주요 인사들은 이를 ‘천재의 작품’이라고 칭송하며 독일로부터의 어떤 공격도 막아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 마지노 라인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놓여 있던 벨기에와의 접경 지대에는 이 요새가 건설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하고 이 나라를 거쳐 프랑스로 쳐들어 온다면 마지노 라인을 완전히 우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군부는 벨기에를 가로 지르는 울창한 ‘아르덴느 숲’이 천연적인 요새로 작용해 독일군의 침공을 저지해 줄 것이라 믿었다. 1940년 5월 10일 설마했던 대로 독일군이 벨기에를 통해 쳐들어 오기 시작했다. 탱크를 앞세운 속도전으로 아르덴느 숲을 단숨에 통과한 독일군의 침공 방법은 큰 효과를 발휘해 침공 개시 한 달여 만인 6월 14일 파리를 함락시켰다. 마지노 라인을 믿고 독일의 탱크를 앞세운 속도전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한 것이 독으로 작용했다.

지난 5월 하순 발생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의 불길이 당국의 필사적인 노력과 관련 의료진의 헌신으로 다행히 진화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질병에 대한 대책반은 2년여 전에 만들어졌고 대응 매뉴얼은 작년 중반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이 질병이 발생하고 나니 중동 국가 중 몇 국가를 빼놓은 매뉴얼 자체의 결함 등으로 초동 대응이 제대로 이루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연일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최초의 환자가 이 매뉴얼에서 제외된 나라에서 입국했던 것이다. 마지노 라인처럼 우리 정부도 대책을 세웠다고 안도해 대책 자체의 ‘구멍’은 따져 보지 않아 생긴 인재가 아닌가 싶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실무자들이 벌어질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한 ‘완벽한 대책’을 세웠다고 장담해도 정작 그런 일이 생기면 회사 전체가 허둥대는 모습을 필자도 종종 보아왔다. 나중에 보면 대책 자체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거나 요식행위처럼 ‘대책을 위한 대책’을 만들어 놓은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대책을 만들어 놓았다는 안도감 속에서 조직 전체의 긴장감이 풀어져서 실제로 위기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더욱 우왕좌왕하는 경우도 많았다. 위기에 대한 ‘완벽한 대비책’이란 없는 법이다. 이보다는 조직 전체가 항상 위기는 올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갖고 대비하는 ‘완벽한 위기의식’이 더 중요하다.

-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

1295호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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