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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상반기 베스트셀링카] 국산차 SUV로 뛰자 수입차 세단으로 날아 

국산차 3대 중 1대는 SUV·미니밴 … 수입차는 분기 판매기록 경신 

85만7169대. 올해 상반기에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수다. 세월호 사건의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판매량이 6.2% 늘었다. 하지만 모든 완성차 업체가 웃을 순 없었다. 수입차 브랜드는 만족스러운, 국산차 브랜드는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수입차 판매량은 해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해는 최초로 연간 판매량 20만대를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산차 판매량도 지난해에 비하면 소폭 늘었지만 일부 차종의 선전에 그쳤다. 국산 승용차 45종 가운데 34종의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줄었다. SUV·미니밴이 인기를 끈 게 위안거리였다. 파죽지세의 수입차와 반격을 준비하는 국산차의 상반기 성적표와 하반기 판세를 바꿀 변수를 살펴봤다.

▎사진:김현동 기자
난세(亂世)에는 영웅(英雄)이 등장하는 법이다. 힘겨운 2015년 상반기를 보낸 국산차 업계에 SUV(스포츠유틸리티차)·CDV(미니밴)란 영웅이 등장했다. 현대 ‘투싼’, 기아 ‘쏘렌토’ ‘카니발’, 쌍용 ‘티볼리’, 르노삼성 ‘QM3’가 나름 뜨거운 상반기를 보냈다. 사실 상반기 국산차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이어지는 불경기에 메르스 사태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갈수록 세력을 불리는 수입차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상반기 내수시장에서 국산차는 총 73만7337대가 팔렸다. 세월호 사건의 타격을 입었던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판매량이 3.4% 늘었다. 그 일등공신이 SUV와 CDV다. 이들 차종의 상반기 판매량은 24만9856대다. 전체 국산차 판매량의 33.9%다. 상용차(트럭·버스)를 제외하면 41.4%로 점유율이 늘어난다. 지금 추세면 앞으로 팔리는 차 2대 중 한대는 SUV·CDV가 될 수도 있다.

수세에 몰린 국산차 업계는 SUV 중심의 다목적 차량을 투입해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자동차 시장의 주포라고 할 수 있는 세단 판매량이 크게 줄어서다. 수년째 판매가 줄고 있는 중대형 세단은 물론이고 소형차와 경차의 판매량까지 줄었다. 경차는 전년 동기 대비 13.4%, 소형차는 13.7%나 줄었다. 불경기에 비교적 값이 싼 경차와 소형차의 판매까지 줄어든 것은 꽤 충격적이다. 국산 세단이 절대 가격보다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서 밀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5000만원 이상 중대형 세단이 판매 순위 상위권을 휩쓴 수입차 시장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내수시장에서 국산차의 완벽한 부활을 알리기 위해서는 결국 세단의 판매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SUV란 묘수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바둑 명언 중에는 ‘묘수를 세 번 두면 진다’는 말이 있다. 묘수를 둔 다는 것 자체가 수세에 몰렸다는 뜻이고, 계속 묘수만 생각하다간 전체 판이 망가진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이창호 9단은 이렇게 말했다. “바둑은 줄기차게 이기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고, 줄기차게 이기려면 괴롭지만 정수가 최선이다.”

국산 경차·소형차 판매량도 줄어


괴롭지만 정수(세단)로 승부를 봐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뚜렷한 모델이 떠오르지 않는다. 올 상반기 국내에서 판매된 자동차(상용차 제외)는 총 45종이었다. 처음 출시한 신차로 지난해와 비교가 불가능한 현대 ‘아슬란’, 쌍용 ‘티볼리’를 제외하면 43종이다. 이 중 지난해 상반기 대비 판매량이 늘어난 차종은 9종에 불과했다. 기아 ‘쏘렌토’ ‘카니발’, 현대 ‘투싼’ 등 SUV 판매가 크게 늘었다. 대부분의 세단은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형 세단인 현대 에쿠스의 판매는 31.8%, 쌍용 체어맨은 50.5%가 줄었다. 현대가 절치부심하며 내놓은 신차 아슬란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국산차를 대표하는 브랜드인 현대·기아차의 점유율도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두 회사는 줄곧 7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2010년 이후 수입차가 상승세를 타면서 두 회사의 점유율이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69.3%의 점유율을 기록해 처음으로 70%대의 벽도 무너졌다. 올 상반기 점유율은 67.5%로 떨어졌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수입차의 점유율은 0.1% 올랐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의 줄어든 점유율은 어느 브랜드가 가져갔을까? 주인공은 쌍용자동차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 4만5410대의 차를 팔았는데, 지난해 동기 대비 36.6% 늘어난 수치다. 올 초 출시한 소형 SUV 티볼리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쌍용차의 간판 모델인 코란도C 와 코란도스포츠의 판매량이 줄어든 가운데 거둔 성적이라 더욱 놀랍다. 현대·기아차는 수입차를 상대하기도 벅찬데, 쌍용·르노삼성·한국지엠 등 국내 브랜드와도 싸워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국산차 업계와 달리 수입차는 질주를 이어갔다. 올 상반기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11만9832대로 내수시장 점유율 14%를 돌파했다. 반기 동안 2011년 한해 판매량(10만5037대)보다 더 많은 차를 팔았다. 역대 최초로 연간 판매량이 20만대를 넘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늘어난 판매량보다 무서운 것은 기세다. 해마다 덩치를 불리고 있다. 2010년 수입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6.9%였다. 이 점유율을 두 배로 끌어올리는 데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상반기 수입차 판매량이 크게 늘어난 데는 브랜드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이 큰 역할을 했다. 5~6월 수입차 브랜드는 저마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차를 팔았다. 할인은 기본이고 무상 AS 기간과 품질보증 기간도 크게 늘렸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이 수입차 사기엔 최적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반기 도입 예정인 디젤차 ‘유로6’ 기준이 변수였다. 정부는 올 9월부터 승용 디젤차에 대해 유로6 기준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차는 유로5 기준을 충족한 차들이다. 9월 이후에는 유로6 규제를 통과한 차만 수입과 등록이 가능하다. 새로운 규제 시행을 앞두고 기존 유로5 차량의 재고를 소진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다. 물론 9월 이후에도 이전에 인증을 마친 유로5 기준 디젤차도 팔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준의 신차가 등장하면 아무래도 구형 차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 힘들다.

수입차 브랜드는 자사 자동차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힘을 쏟았다. 상반기가 끝나면 많은 매체에서 차량 판매 순위를 기사화한다. 바이럴마케팅의 역할이 큰 수입차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순위를 높이는 것이 판매에 도움이 된다. 소비자들에게 ‘베스트셀링카 상위권 차가 좋은 차’라는 인식이 각인되는 효과가 있어서다. 수입사(브랜드)의 차를 받아 직접 판매를 하는 딜러에게도 상반기 판매량은 중요하다. 딜러와 수입사가 계약할 때 ‘배리어블 마진(variable margin)’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딜러는 상반기 판매를 집계해 특정 판매량을 넘을 경우 추가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목표치에 근접했거나 이미 목표량을 넘긴 딜러들은 추가 수익을 움켜쥘 수 있다. 그만큼 딜러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할인폭도 커진다. 브랜드의 정책에 딜러의 추가 할인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 가능하다.

수입차 브랜드 프로모션에 딜러 할인까지


과정이야 어찌됐든 수입차 브랜드는 행복한 상반기를 보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등록된 22개 수입차 브랜드 대부분의 판매량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늘었다. 유일하게 ‘피아트’만 판매량이 줄었다. 점유율 상위권은 독일 4개 브랜드가 휩쓸었다. BMW가 점유율 20.2%로 1위, 메르세데스-벤츠(19.1%), 폴크스바겐(15.6%), 아우디(12.2%)가 그 뒤를 이었다. 독일 4개 브랜드는 2009년 이후 수입차시장 점유율 1~4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BMW는 6년 연속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미니(MINI)까지 합치면 23.3%로 점유율이 뛴다. 독일을 제외한 브랜드 중에서는 미국 포드가 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점유율 4.7%로 4위권과의 격차는 컸다. 2008년 이전만 해도 독일 브랜드와 자웅을 겨루던 일본 브랜드의 추락도 이어졌다. 도요타와 렉서스가 나란히 6위와 7위를 기록했지만 점유율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었다. 당분간은 미국이나 일본 브랜드가 독일 브랜드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 유로6 : 유럽연합이 도입한 디젤차 배기가스 규제 단계다. 1992년 유로1에서 시작해 2013년 유로6까지 발전하며 규제가 강화됐다.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배출가스 기준이 유로5보다 엄격하다. 대표적 배출가스인 질소산화물의 경우 유로5 기준치의 절반 수준(승용차)보다 더 낮춰야 한다.

1295호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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