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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쪼그라드는 中 자동차 시장] 엘도라도에서 치킨게임의 전장으로 

공급 넘치고 재고 쌓여 ... 中 정부의 ‘구매제한 정책’이 찬물 

홍창표 KOTRA 중국지역본부 부본부장

▎여러 자동차 브랜드가 모여있는 중국 북경 라이광잉.
BMW차이나 총재는 지난해 11월 열린 광저우모터쇼에 참가했다. 현장에는 그를 기다리던 32명의 중국 지역 BMW 딜러들이 있었다. 그들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총 60억 위안(약 1조1254억원)의 인센티브 지급, 향후 딜러단과의 협상을 통해 연간 판매목표를 설정할 것, 강제적인 차량부품 구매를 중단할 것’ 등의 요구사항이 적혔다. 딜러들이 요구하는 인센티브 지급액은 BMW의 2013년 중국 시장 매출액에 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알짜배기 효자시장을 놓치기 힘들었던 BMW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51억 위안의 인센티브 지급을 약속하고 판매목표 설정도 상호 협의방식으로 바꾸는 것으로 딜러들을 달랬다.

BMW는 아우디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프리미엄 브랜드다. 2007년 이후 중국 시장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45%에 달했다. 딜러와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갑(甲)’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어두운 분위기에 천하의 BMW도 딜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딜러에 꼬리 내린 BMW


중국자동차유통협회는 지난 6월 자동차 재고 경보지수가 전월 대비 7.3% 상승한 64.6%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국 시장 내에 판매하는 자동차의 재고상황을 표시하는 수치다. 이 지수가 50%를 넘으면 적정 재고를 초과한 것으로 본다. 올 3월 경보지수는 67.5%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9개월 연속으로 50%를 웃돌았다. 그만큼 시장에서 팔지 못한 재고가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다. 현재 중국 내 자동차 업계가 겪고 있는 불황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각 대리점마다 재고물량이 쌓이면서 딜러들은 ‘집단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 그동안 이어진 밀어내기식 물량 배정 역시 한계상황에 이르면서 자동차 메이커들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수요 위축과 생산 과잉이라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고 있는데다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자동차 판매 실적이 부진하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 4월 자동차 판매량은 전월 대비 11% 하락했고, 5월에도 전월 대비 4.5% 하락한 190만4000대가 팔렸다. 앞으로의 전망 역시 불투명하다. 지난해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2107만6600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중국 내에서 생산이 가능한 자동차 대수는 5000만대에 육박한다. 한 해에 팔리는 차량 대수의 2배 수준보다 많은 숫자다. 앞으로 특단의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중국 내에 자동차 재고가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의 ‘자동차 구매제한 정책’도 문제다. 중국 정부는 최근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자동차 확산을 막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환경오염을 막고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현재 자동차 구매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도시는 베이징·상하이·광저우·구이야·스자좡·톈진·항저우·선전 8개 도시다. 추가로 정책 시행을 앞두고 있는 도시가 많다. 가장 최근에 자동차 구매제한 조치를 실시한 선전은 올해만 자동차 판매대수가 40만대 줄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전문가가 중국 자동차 시장이 과거와 같은 고속성장기를 다시 맞이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골드먼삭스는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중국 자동차 시장 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대비 1.5%포인트 낮은 9.5%로 수정한다’고 기록했다. 성장률은 더욱 낮아져 2017년에는 7%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판매가 줄고 앞으로의 전망까지 암울하게 발표되면서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BMW의 사례에서 보듯이 많은 기업이 딜러에 대한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고객에게는 다양한 무이자 혜택을 제공하고 공격적인 가격 인하 경쟁도 펼쳐지고 있다. 4월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상하이폭스바겐이 처음으로 가격 인하 정책을 발표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후 이치폭스바겐·베이징현대·창안포드·둥펑푸조·상하이GM 등의 기업이 가격 인하 경쟁에 뛰어들었다.

상하이폭스바겐은 신형 세단 라만도를 포함한 전 모델의 가격을 1만 위안에서 최대 6만 위안까지 할인하는 행사를 가졌다. 창안포드도 지난 4월 자동차 취득세 10% 면제 혜택과 함께, 각종 인센티브 패키지 혜택을 마련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광저우 혼다는 주력 차종인 CR-V의 판매율이 지난해 11.5%나 감소하자 판매가격을 8000위안 떨어뜨리는 조치를 단행했다. 베이징 현대 딜러인 야타이(亞泰)자동차판매유한공사는 산타페 가격을 최대 7만 위안까지 할인하면서 소비자 잡기에 나섰다. 중국 자동차산업 애널리스트 장즈융(張志勇)은 “글로벌 업체간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중국 로컬 메이커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로컬 브랜드의 선두주자인 상하이기차는 합작 파트너인 상하이폭스바겐의 가격 인하 조치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뜨겁다면서 자체 브랜드 모델도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지역별 맞춤형 전략 절실

가격 인하전과 함께 전략지역 재배치도 핵심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경제가 발달한 동남부 연안 지역이 가장 큰 판매 지역이었으나 서서히 무게중심의 축이 중서부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향후 자동차 소비를 주도할 곳은 1, 2선 도시가 아니라 중서부 지역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현대차 제5공장이 들어서는 충칭 역시 중서부 지역의 거점 도시이다. 중요한 것은 동서 지역간 소득수준과 차종 선호도, 자동차 스펙과 기능 수준에 대한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내륙지역에 통할 수 있는 타깃형 전략차종 개발을 고심하고 있는 이유다.

글로벌 자동차기업의 살아남기 경쟁은 중국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시장 침체, 로컬기업의 경쟁력 강화, 외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 예전과 다른 딜러와의 관계 등 각종 요인에서 비롯됐다. 한때 중국 자동차 시장은 황금시장인 엘도라도에 비유되었으나 이제는 치킨게임의 아레나가 되고 있다.

- 홍창표 KOTRA 중국지역본부 부본부장

1299호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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