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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ㅣ 성신제 지지스코리아 대표] 도전, 아직도 가슴이 뛴다 

‘피자헛’ 들여온 외식 업계 선구자 ... 병마와 싸우며 펴낸 자서전 


▎사진:오상민 기자
6월 중순의 어느 날. 집밖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 배에서 시작된 통증은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통증이 계속되면 심장 문제일 수 있다’던 의사의 말이 떠올라 다급히 택시에 올랐다. 대형 병원 내부가 웬일인지 썰렁했다. 메르스가 한창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긴 시간 수술을 받고 나오자 의사가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말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급성심근경색이었다. 병원에 환자가 적었던 덕분에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인생이 허무했다. 병원을 나서며 출판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책 냅시다.” 책을 찍기 직전 망설여져 출간을 보류한 자서전이었다. 하마터면 유작이 됐을 거라 생각하니 내가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렇게 서랍 속 깊숙이 숨겨온 [달콤한 모험]이 세상에 나왔다.

[달콤한 모험]은 성신제(68) 지지스코리아 대표가 5년간 써내려간 ‘병중일기’다. 그는 2011년 직장암 선고를 받았다. 암은 이미 간과 폐로 전이된 상태였다. 여덟번에 걸친 수술과 계속되는 항암 치료는 그의 몸과 정신을 망가뜨렸다. 입을 벌리면 나오는 신음소리를 참으려 이를 악물고 글을 썼다. 긴 글을 쓰기에는 체력이 달려 짤막짤막한 단락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계속됐다. 살아있음을 느끼려 일부러 고집한 6인용 병실에서 옆 침대 환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삶을 돌이켜봤다. 외식 메뉴라곤 짜장면이 전부이던 시절 서울 이태원동에 피자헛 1호점을 내던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안정적인 첫 직장을 나와 1976년 한 종합무역상사에 들어간 성 대표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하는 일에 매료됐다. 입사 3개월 만에 대리로 승진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회사가 망했다. 무역 경험을 살려 오퍼상으로 일하던 성 대표는 단돈 7만2000원을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으로 입양가는 어린 아이 셋과 함께였다. 미국에서 바이어를 만나야 하는데 표를 구할 돈이 없어 입양아를 양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항공권을 받은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 피자헛을 눈여겨본 성 대표는 본사에 한국 영업점 독점권을 요청했다. 이미 국내 대기업 세 곳이 가맹점 신청서를 낸 상태였다. 그는 굴하지 않고 본사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나는 피자헛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피자 사업을 할 것이니 나 같은 젊은이를 경쟁자로 두고 싶지 않으면 영업권을 달라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당돌한데, 그 회장은 젊은 패기를 높이 평가해줬어요.” 한국 영업권을 따낸 성 대표는 1984년 문을 연 1호점을 시작으로 10년간 직영점포 52개, 매출 500억원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사업이 잘되자 본사는 경영권을 넘기라고 요구했고 그렇게 그는 피자헛을 떠났다. 이후 미국 외식 업체인 ‘케니 로저스 로스터스’에 이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성신제피자’를 시작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나이는 숫자일 뿐 … “내년이면 한 살 더 젊어져”


실패도 그의 도전을 막을 순 없다. 이번에는 컵케이크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국내 상황에서 개인의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컵케이크 사업이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2년 전 지지스 컵케이크에 사업 제안서를 보냈다. 피자헛 회장과 담판을 짓던 30여년 전처럼 이번에도 무일푼이었지만 성 대표의 적극적인 태도는 본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미국을 오가며 기술을 익혔고, 올해 1월 서울 강남역 한복판에 지지스 컵케이크 1호점을 열었다. 남들은 은퇴해 손자 재롱이나 볼 나이에 힘든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백발의 소년’이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나를 ‘심쿵’하게 하니까요.”

젊은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가게 안. 성신제 대표는 아르바이트생과 마찬가지로 이름표가 달린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맞는다. 이름표에는 ‘성신제’ 이름 석 자뿐 어떠한 직함도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있는 동창 모임은 최근 나간 기억이 없다. 50년 전 얘기만 무한반복하는 친구들과 있으면 자신도 과거에 매몰될 것 같아서다. “내 나이 예순 여덟이지만 68년생이라는 각오로 임합니다. 내년이면 한 살 더 젊어지니 얼마나 좋습니까?” 나이는 숫자일 뿐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그다. 여전히 투병 중인 그는 시간이 때마다 매장 뒤편에서 아령을 들어올리며 체력을 기르려 애쓴다. 성 대표는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면 녹초가 되지만 내일 가게에 나가 새로운 손님을 만날 생각을 하면 그저 설렌다”고 말했다.

[달콤한 모험]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의 자서전은 쓰디쓴 실패로 가득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책 제목을 [젊은이여 나처럼 살지마라]로 정하기도 했어요. 어려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한테 나처럼 살라고 할 어른은 많잖아요.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그의 책이 [달콤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출간된 것은 숱한 실패 속 진정한 달콤함을 맛봤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에 쓴 맛이 없다면 세상 제일 달콤한 그 무엇을 입에 넣어준다 해도 행복한 줄 모를 것이다. 달콤한 컵케이크는 원래 쓴 커피와 먹는 게 가장 맛있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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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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