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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조정 가속도 내는 일본] “인문·사회·사범 돈 안 되는 학과 폐지” 

자연과학·공학 중심 국립대 육성 ... 16년째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 


▎일본의 명문 국립대로 꼽히는 도쿄대·교토대·히토츠바시대·쓰쿠바대(사진 왼쪽부터). / 사진:각 대학
일본에서도 대학 구조조정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전국 86개 국립대학의 인문·사회 과학과 사범 계열의 학부·대학원 과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저출산 여파로 학생 수가 줄었다며,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정적자가 누적되는 가운데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사회적 요구가 큰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미 후쿠이(福井)·신슈(信州)대 등 26개 국립 대학들은 2016년도 이후 문과계열 학부를 폐지하거나 다른 학부에 나눠 줄 계획이다. 이중 17개 대학은 문과 학부 1300명의 모집을 중단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기초학문 없이 기술학문이 성숙해질 수 있겠느냐는 의견으로 맞서고 있다. 정부가 단기적인 비용 문제로 일본의 성장잠재력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10여 년째 국립대학 구조조정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던 학계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이번 정부안에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인문·사회과학과 사범 계열 폐지는 아베노믹스 제3의 화살인 ‘성장전략’의 하나로 꼽힌다. 아베 정부는 규제개혁 등 실용주의 전략을 채택해 국가의 역량을 결집, 경제성장을 위한 환경 변화를 끌어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채용 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 먼저 교육 환경부터 바꾸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 명의 대학 졸업생이 4개의 일자리를 놓고 고민할 정도로 구인난이 심각하다. 기업들이 좋은 인재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구직자의 구직 활동을 방해하거나, 못하게 강요하는 ‘오와하라(おわハラ)’가 사회문제로 떠올랐을 정도다. 지난해 일본의 대졸 취업률은 96.7%. 첨단산업·제조업 중심의 일본으로서는 이공계 인력이 한 명이라도 아쉬운 실정이다. 또 일본의 학령인구가 지난 1992년 205만 명에서 2008년에는 124만 명으로 39.5%나 줄어든 점도 정부의 문과 구조조정을 부추겼다. 일본의 4년제 사립대학 중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은 2006년 기준 40%에 달한다.

학계 “다양한 가치 만드는 교육 없어져” 반발


학계는 정부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학의 역할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이과 교육 역시 나날이 발전하는 산업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라 정책의 실효성이 없다고도 주장한다. 일본 국립대학협회는 성명을 통해 “격변하는 시대야말로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학문이 더욱 필요하다”며 “국가가 틀에 박힌 교육을 강요하면 대학의 다양성이 없어져 국가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 등 일부 일본 언론들도 “효율성만 추구해 대학 조직을 폐지하거나 전환하는 것은 지나치게 난폭한 일”이라며 “국립대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학부가 없으면, 학생들은 멀리 있는 다른 대학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일본 정부는 각 대학의 기본 예산이자 정부지원금인 ‘운영비 교부금’을 구조조정 및 조직개편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겠다며 실력행사를 예고했다. 물론 대학들이 정부 정책에 수렴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운영비 교부금을 최대 30~40%까지 늘려주겠다는 당근책도 함께 제시했다. 학계에서 문과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은 높지만, 국립대 이사회나 비(非) 인문학부로서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일본 정부는 또 국립대학의 기술력 강화와 신기술의 상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국립대학법인 등에 의한 투자사업유한책임조합에 대한 출자’ 조항을 조정, 국립대의 벤처 회사 투자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는 국립대를 이공계 중심으로 재편한 뒤 벤처 투자 기능을 강화해 신기술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부, 교부금 확대 등 지원책…자발적 참여 유도

일본 정부의 문과 구조조정은 지난 2001년 시작된 국립대학 구조조정 계획인 ‘도야마 플랜’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국립대학의 경쟁력을 복원하자는 목표로, 대학에 경영·업적·능력주의 운영 시스템을 도입하는 한편 기업과 민간이 참여하는 평가체계를 갖추게 했다. 이를 위해 2년 만에 101개였던 국립대학을 89개로 통폐합하고, 시장관리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국립대학 법인화를 실시했다. 대학이 민간적 발상을 해야 사회의 요구에 맞춘 커리큘럼을 꾸리게 되며, 그에 맞춘 인재와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반대편에서는 정부의 대학 자율성 침해 논란부터, 대학의 기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됐다. 일본 대학들은 과거 독일의 ‘국가시설형’ 운영체제를 따르다, 1980년대 미국의 ‘조합형’ 관리 운영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부가 20년 만에 다시 국가시설형 운영을 하겠다고 하자 대학들은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었고, 사회적 반발은 더욱 커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의 계획대로 대학 개혁은 진행됐다. 반대 기류는 거셌지만 대학들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는 동안 사회·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글로벌화에도 실패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정부 계획에 동력이 실렸다.

일본 정부가 지난 14년 동안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뾰족한 성과를 내놓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이공계 몰아주기에도 바이오·항공 등 첨단 산업 기술 경쟁력은 한국·중국 등에 추격당하고, AV(오디오·영상)제품의 기술표준 주도권을 미국에 내주는 등 글로벌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국립대가 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을 피해갈 명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구조조정이 일본 경제에 큰 이슈가 아니며, 효과도 크지 않다’, ‘문화·체육학과는 왜 구조조정 대상에 안 올랐으며 이미 엘리트 육성 교육의 한계를 체험했다’, ‘일본 국립대의 인문·사회·교육 학부생 비율은 37.1%로 사립대(59.3%)보다도 22.2% 포인트 이상 낮다’ 등이 주된 반대 논리다. 그러나 이들 주장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실리지 않고 있으며, 상황은 도야마 플랜 시행 초기인 2001년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일본 정부가 16년 이상의 장기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데다, 올해가 일본 국립대 구조조정 계획 중 ‘개혁 가속기’의 마지막 해라는 점, 아베 총리가 재신임을 얻었다는 점에서 좌초될 가능성이 작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ins.com

1304호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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