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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 기자의 글로컬 컴퍼니 | UL] ‘보이지 않는 안전’의 기준까지 챙긴다 

세계적 안전인증 전문 기업 ... UL이 정하면 글로벌이 따른다 


▎황순하 유엘코리아 사장. / 사진:오상민 기자
세상은 정말 안전한가? 사람들은 늘 안전 문제에 조바심을 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장난감만 봐도 그렇다. 아이가 가지고 놀면 불안하게 마련이다. 저 플라스틱은 정말 안전한 걸까? 유해한 성분이라도 묻어나지 않을까? 그렇다고 어디에 물어볼 만한 곳도 없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인 순간에 에어백이 터져 줄지, 뜬금없이 급가속 되는 건 아닌지 늘 불안하다. 주변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니 더 걱정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대형 참사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안전에 신경 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과거에는 이런 ‘눈에 보이는’ 안전이 중요했다. 휴대전화가 깨지거나 배터리가 터지지 않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까지 걱정의 대상이다. 휴대전화에 전자파가 얼마나 나오는지, 소프트웨어가 유해하지 않는지도 제품 안전을 위한 고려 사항이 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안전을 위해 고려할 사항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안전 걱정도 커져


▎사진:UL Korea 제공
제조사는 누구든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무턱대고 믿을 순 없다. 그래서 생긴 것이 ‘인증(Certification)’이다. 제조사들로부터 독립된 전문 검증기관이 ‘이 제품은 어떤 안전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며 이에 따라 인증됐음’을 확인해줄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확실한 인증기관의 인증마크를 보고 제품을 고를 수 있고, 제조사는 인증으로 제품의 안정성을 인정받는 방식이다. KC마크나 ISO 등이 이러한 인증의 예다.

그럼 그런 안전기준(가이드라인)은 누가 어떻게 정해야 할까? 어느 정도까지는 안전이고 어느 정도 이하는 안전하지 않은 걸까? 기업은 가능한 폭넓게 기준을 정하길 원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생산비를 줄여 마진을 늘릴 수 있다. 반면 소비자는 가능한 기준을 엄격하게 잡으려 한다. 조금이라도 더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양자가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은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닌 제3의 기관이 정해야 한다. 전문적 식견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정하기 애매한 이런 기준을 정립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UL은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제품이 안전한지 평가하는 기관이다. 1894년 설립 이래 비영리기관이었던 UL은 2012년부터 일부 비즈니스를 영리로 전환했다. 지난 4~5년 동안 무려 32개 회사를 인수·합병했다. 제조사나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비영리기관이 인증기준을 정하면 더 믿음이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UL은 영리 회사로 전환하면서도 인증 부분은 비영리로 남겨 뒀다. 영리화를 통해 기술 투자 등은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도 인증기준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과거 UL은 전기·전자, 공장 모터 등 각종 산업 분야는 물론, 스마트폰 등 첨단 기기, 재생에너지, 환경 안전성 등 ‘보이지 않는 안전’을 점검하는 첨단 분야에 이르기까지 범주를 넓히고 있다. 4000명 정도였던 전 세계 임직원 수는 현재 1만2000명으로 늘었다.

UL이 안전기준을 만들고 평가하는 핵심 수단은 ‘신뢰’다. UL이 정하고 평가한 것이니까 소비자들이 믿어준단 의미다. ‘UL마크’가 찍힌 것은 UL이 정한 안전기준을 충족했단 의미다. 실제 미국인들은 전자제품 등을 고를 때 먼저 ‘UL’ 마크가 찍혀있는지 확인한다. 이런 신뢰를 얻게 된 것은 UL의 안전 솔루션과 서비스가 지식과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안전기준은 여러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서 정한다. UL은 상정된 제품의 안전 여부를 두고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기준을 정한다. 합의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학계·업계·소비자단체 등을 패널로 모아 제품을 제시하고 6개월에서 1년 동안 다양한 환경에서 각종 안전성 검사를 수행한다. 실사를 거친 뒤에도 장기간 토론과 논쟁이 이어진다. 오랜 시간 공신력을 쌓은 덕에 미국 정부도 제품 안전성에 대한 이슈가 발생하면 UL을 불러 조언을 구할 정도다.

이렇게 만들어진 UL 안전 규격은 북미 시장에서 가이드라인으로 통한다. 미국의 안전기준은 미국과 무역하는 세계 각국 제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물론 UL마크가 없는 제품도 미국에 수출할 순 있다. 문제는 미국 소비자들이 수준 높은 안전인증마크를 요구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점이 구매에 영향을 주니 세계 각국 제조사들은 UL의 안전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미국의 최대 유통 업체인 월마트는 공급 업체들에 UL 마크나 그 이상 되는 안전기준 준수를 요구한다. 통신 업체 버라이즌의 경우 UL 환경 인증 획득 여부에 대한 정보를 제품 사양에 포함해 제공하고 있다. 유통 업체가 UL 마크를 요구하니 각국 제조업체가 UL 기준을 지킬 수밖에 없다. 황순하 UL코리아 대표는 “UL의 안전 규격과 마크를 통해 개별 제품의 안전은 물론, 업계 전반의 안전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며 “안전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았을 땐 전열 제품이 과열돼 화재가 일어나는 사고가 잦았는데, 요즘은 안전기준을 맞추니 그런 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UL 마크의 안전효과를 설명했다.

영리 회사로 전환하면서도 인증 부문은 비영리로 남겨


▎UL의 제품 안전성 실험실. / 사진:UL Korea 제공
UL의 비즈니스는 기업 활동이라기보다 글로벌 NGO에 가깝다. 글로벌 시장에는 지역이나 국가별로 다양한 안전기준이 존재한다. 북미 시장에서는 UL 규격이, 유럽에서는 CE 인증이 널리 쓰인다. 진출 시장마다 개별 안전기준에 따라 마크나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이들 안전기준은 GMA(Global Market Access) 프로그램에 따라 전 세계가 공유한다. 여러 지역에서 인증을 받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조치다. UL은 매출과 별개로 세계 각국 공공기관과 협력해 안전기준을 정하는 장을 마련한다. 매년 4월 시카고에서 연례 회의(UL Annual Meeting)를 열어 세계 각국 UL 임직원과 학계·업계·공공기관 등 관계자, 전문가들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안전에 대한 주요 쟁점과 이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자리다. UL 연례회의는 전 세계에서 450여명이 참석해 1주일간 진행된다. 전자·전기, 화재·안전 등 각종 안전 분야에 대해 보다 진화된 안전기준을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벌어진다. 이런 논의 중에는 한 해 20만명이 이상 사망하는 인도의 교통 사고 문제도 포함된다. 도로교통안전에 대한 규정이나 차량 충돌 안전성 규정 등을 어떻게 확립해야 하는지 인도 정부에 제안하는 일이다.

UL 인증 마크를 획득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준에 따른 물리적인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묻고 오랫동안 토론해서 만든 안전기준이 적용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UL은 완성품은 물론, 제품에 사용된 개별 부품도 면밀하게 살핀다. 인증을 받은 후에도 사후 심사를 통해 애초 품질을 계속 유지하는지 상시 점검해 인증의 신뢰를 높인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UL 안전규격에 따라 인증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 UL 코리아는 제조사의 매출 규모를 막론하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사후 심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는 공장을 20분 이내에 보여주지 않을 경우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기준에 부합하도록 시정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생산품에 UL마크를 붙일 수 없다. 황순하 대표는 “안전 인증을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하다”며 “안전을 위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에 대한 기준과 수준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그는 또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UL의 안전기준은 물리적인 안전에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젠 인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 일례로 UL 환경 사업부의 그린가드(GREENGUARD) 인증은 현대인이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실내 공기질에 대한 인증이다. 실내에서 사용되는 가구나 자재는 물론 전자기기 등으로부터 나오는 유해 물질에 대해 평가한다. 그린가드 인증은 전 세계 400개 이상의 환경인증 프로그램에서 가산점으로 작용하거나 참고 기준으로 적용된다.

UL 코리아는 수많은 UL 지사 중에서도 우수한 성과로 주목 받고 있다. 직원 수는 230명으로 글로벌 임직원 수의 약 2%에 불과하다. 하지만 1996년 설립 이래 매년 매출 목표를 달성하고 두 자릿수 성장을 실현하고 있다. 1인당 생산성이 UL 글로벌 대비 2~3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UL 본사 임원들도 한국 지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업무 시간 내 효율이 상당히 높고 고객 중심의 마인드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발적으로 혁신적인 프로세스를 제안하고 구현하는 것도 한국지사 직원들의 특징이다. 통상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시장을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시아 중 하나에 묶어 보는 편이다. 하지만 UL은 다른 글로벌 기업과 달리, UL 코리아를 범중국지역과 같은 급의 지역 단위로 보고 있다. UL 코리아가 UL에서 가지는 위상이 높다는 방증이다.

실내의 공기질까지 인증

UL은 투명성과 신뢰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회사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놀이터 비슷한 모습이다. 흔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답게 흔하지 않은 직장 스타일이다. 황 대표가 주창하는 기업문화 ‘먼저 논다, 열심히 일한다, 함께 큰다’에 따른 모습이다. 사무실을 방문해 보면 일하는 모습보다 뭔가 노는 듯 보이는 모습이 더 흔하다. “보통 하루에 8~9시간 정도를 직장에서 보내는데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4~5시간 정도라고 봅니다. 이 시간을 무리해서 늘리기 어렵다면 차라리 집중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집중을 위해 오히려 나머지 시간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봤습니다. 언제 일을 하느냐는 우려도 없진 않았어요. 하지만 실제 성과는 더 좋아졌습니다.” 임직원이 행복하면 고객들이 행복해지고, 이는 고객과 회사의 동반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UL 코리아를 방문한 글로벌 임직원들은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회사 분위기에 놀랍니다. (한국은) 생산성이 높고 업무 강도가 세서 힘들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자유롭게 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신기해 보일 겁니다(웃음).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거든요.”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1305호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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