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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인식 기술 어디까지 왔나] 온몸이 ‘비번’인 시대 눈앞 

홍채·정맥 활용 가시화 … 세계 특허 출원, M&A 활발 


summary | 생체인식 기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모바일 기기가 일상 생활에 스며들고 여기에 금융이 접목되면서다. 몸이 핀테크를 위한 새 비밀번호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지문인식이 대세지만, 지문의 단점을 보완한 홍채나 정맥인식 기술도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미국·일본 기업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기술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도 활발하다. 보안의 취약점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은 남은 숙제다.

손 안의 휴대폰으로 돈이 오고 갈 수 있게 된 지는 오래됐다. 최근에는 모바일 결제가 오프라인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이 모바일 결제를 망설인다. 불안해서다. 통계청의 ‘2014년 지급 수단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모바일 결제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의 78.3%가 ‘정보 유출 및 보안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이런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주목을 받는 게 생체인식 기술이다.

특허 美·日이 가장 많아


최근 대규모 해킹 사태와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 보안 문제가 대두되면서 지문·홍채·정맥 인식과 같은 ‘생체인식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개인의 신체 정보를 활용해 본인임을 인증하는 기술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의 역할을 내 몸이 대신하는 것이다. 생체인식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시장 규모를 가늠하기도 이르다고 말한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이 많고, 어디까지 적용시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관심이 커짐에 따라 몇몇 업체에서는 관련 추정치를 내놓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프로스트 앤 설리번’은 2012년 14억8000만 달러(약 1조6700억원)였던 세계 생체인식 시장이 2019년 61억5000만 달러(약 7조원)로 커진다고 전망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016년에 96억 달러(약 10조8000억원)에서 2019년에는 150억 달러(약 17조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고, 국내에서도 연간 2억6000만 달러(약 3000억원) 수준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2020년이면 전체 모바일 기기 중 절반이 생체인식 기술을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 개발에 따른 특허 출원도 활발하다. ‘다중 생체인식 기반의 인증기술과 과제’ 보고서가 2004년부터 10년간 세계특허 조약(PCT)에서 ‘생체 인식(biometric authentication)’으로 검색되는 특허를 국가별로 조사한 것에 따르면 미국(1187개)과 일본(521개)이 앞서 나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각각 263개, 250개로 뒤를 잇는다. 박종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연구위원은 “중국의 추격 속도가 빨라 곧 한국의 출원 건수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도도 복병이다. 학술·이론 측면에서 성장해 특허 수는 많지 않지만 관련 논문 수가 많다.

생체인식은 관련 기술 전문 업체뿐 아니라 모바일 기기에 접목하려는 스마트폰 제조기업, 플랫폼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칩 제조기업, 특허사업 전문기업,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이동통신 기업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특허 수로 보면 후지쓰·히타치·소니·오키 등 일본 기업이 두각을 나타낸다. IB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기술을 가진 중·소 기술 기업을 대기업이 인수·합병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대기업이 다소 자체 개발에 비중을 싣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생체인식 기술 중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지문인식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지문인식이 전체 생체인식 시장의 60%가량을 차지한다. 시장 조사 업체 IHS테크놀로지는 애플과 삼성이 지문인식 시장을 촉진시켜 2020년 시장의 크기가 지금의 네 배인 170억 달러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5, 애플은 아이폰5S부터 지문인식 기술을 스마트폰에 탑재했다.

지문인식은 기술 성숙도가 높아 속도가 빠르고 사용이 편리한 게 장점이다. 손에 쥐고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의 특성에 잘 맞는다. 하지만 지문이 닳아 거의 없어진 사람이나 땀이 많이 나는 사람들은 지문인식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 실리콘으로 본을 뜨거나 복제 기술을 활용해 인증이 해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다른 생체인식에 비해 보안은 다소 취약하다.

지문인식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술로 홍채인식이 주목을 받는다. 홍채는 지문보다 식별이 정확하고 복제도 어렵다. 과거에는 큰 기계 앞에 눈을 가만히 대고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내장 카메라로도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안경을 써도 인식이 가능하고 걷는 사람의 눈을 추적해 인식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보안이 중요한 핀테크 업계에서 주로 홍채인증 기술을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홍채인식은 사용에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고, 기기가 지문 스캐너에 비해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성이 관건”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모바일 결제 업체가 지문인식보다 보안 수준이 높은 홍채인식을 마케팅 용도로 활용하면 시장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맥인식은 지문인식과 홍채인식의 장점을 결합한 기술로 꼽힌다. 손의 정맥 모양으로 본인을 확인한다. 지문인식처럼 간편하다. 인식의 오차율도 낮다. 현재 유럽의 일부 대형마트와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는 정맥인식 결제 시스템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사용자가 사전에 등록해놓은 은행 계좌와 연동시켜 결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다만, 스캐너의 크기가 비교적 커 작은 모바일 기기에 적용하기 어렵고 기기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안면인식은 눈썹 간 거리, 얼굴 뼈 돌출 정도 등 특징을 통해 사용자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이 관련 특허를 취득해 자사 기기에 안면인식 보안을 내장시켰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도 자사 결제 플랫폼인 ‘알리페이’에 얼굴 인식을 결합한 스마일투페이를 내놨다. 하지만 현재는 안경 쓴 얼굴과 안 쓴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등 세세한 얼굴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 밖에도 걸음걸이나 제스처 등 행동 양식 측정해 식별하는 행동 인식, 심장박동 인식 등이 개발 중이지만, 상용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보조 수단으로 쓰는 게 안전

생체인식 기술을 더 널리 쓰려면 인식률과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보안의 필요성 덕에 각광 받는 생체인식이지만, 보안 문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신체 정보가 유출될 경우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어서다. 비밀번호는 유출 때 바꿀 수 있지만 생체인식 정보는 영구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생체인식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고액의 금융 거래 등 위험이 큰 경우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신용카드를 긁고 그다음 단계에서 한 번 더 생체 정보를 확인하는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각 기술에 장·점을 보완하고 보안성을 높일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생체인식 기술을 함께 사용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 함승민 기자 ham.seungmin@joins.com

1307호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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