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청년 창업 전문가 4인 좌담] 규제 놔두면 돈 풀어도 백약이 무효 

덩치보단 질적 성장에 초점 맞춰야 … “혁신가 키울 교육시스템 개선 절실” 

사회·정리=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왼쪽부터)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정준오 직토(ZIKTO) 연구원, 김세진 앱센터 본부장,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 사진:김현동 기자
최근 청년 창업 열기가 뜨거워졌다는 데는 많은 이가 공감한다. 과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공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러나 청년 창업이 취업의 대안으로 자리 잡고, 벤처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축으로 성장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10월 25일 청년 창업 전문가 4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세진 앱센터 본부장,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정준오 직토(ZIKTO) 연구원이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엔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최근 청년 창업, 특히 벤처와 관련된 많은 정책이 쏟아졌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청년실업이 심각한 건 전 세계적인 문제다. 성장 속도가 느려지자 창업을 유도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가가 취하는 전략이다. 한국도 최근 창업시장을 키우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인 점이 걸린다. 돈을 많이 쓰고, 지원이 늘면서 시장이 달아오르긴 했지만 무분별하게 너무 많은 자원을 쏟아 붓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시중에 돈은 넘쳐난다. 이 때문에 오히려 필터링은 더 어려워졌다. 사업계획서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 투자를 받아놓고는 계획대로 사업을 안 하고, 다른 비즈니스에 돈을 쓰는 벤처도 허다하다. 계획대로 했다가 실패하면 투자자의 책임이지만, 그 모델을 믿고 투자했는데 전혀 다른 사업을 하면 그건 사기다. 그래 놓고 이런 부분에 대해 지적하면 유연한 창업 활동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부분이 정화가 안 되면 건전한 벤처생태계가 자리 잡긴 어렵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벤처 창업시장이 지난해에 비해 대략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양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벤처 단계별로 투자금이 공급되면서 생태계가 조금씩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 공급자 중심이란 것이 굉장히 한국적이긴 해도 시장을 형성하는 단계에서 국가가 정책적으로 힘을 싣는 건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나친 버블이라 보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질적으로 가다듬을 시기가 된 것도 맞다. 기술만 있다고 창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이든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 경험이 부족한 청년 창업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마케팅인데,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주는 세밀한 정책이 가미돼야 할 것으로 본다.


질적 성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하나?

김세진 앱센터 본부장: 일단 성과주의를 벗어 던져야 한다. 앱센터가 창업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뛰어든 게 7년 전이다. 우후죽순 많이 생겼지만 현재 민간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곳은 앱센터 밖에 없다. 대부분은 정부 기관이나 재단 등이 주도한다. ‘창조경제’란 키워드는 매우 훌륭하지만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일정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3년 정도했으니 스타를 만들어내고,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분위기다. 진짜 생태계가 잘 만들어지려면 기초투자가 중요하다. 현 정부 1~2년 차엔 그런 게 비교적 잘 이뤄졌다. 그런데 올해부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식의 미묘한 변화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창업 펀드는 정부가 주도한다. 그러니 그 펀드를 운용하는 벤처캐피털(VC)도 성과 위주 투자로 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다간 생태계가 성숙하기도 전에 열매만 먹고 끝날 수 있다. 청년 창업 활성화가 하루 이틀 하다 그만둘 일은 아니지 않는가? 실리콘밸리가 완성형 모델이 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기초투자나 씨 뿌리는 일은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이병태: 투자가 늘어나는 것과 벤처가 ‘죽음의 계곡’을 넘어 살아남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시장은 여전히 규제로 가득하고, 변화 속도는 더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앞둔 스타트업 숫자는 30개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140개 정도로 크게 늘었다. 대부분 기존 산업, 특히 오랫동안 혁신이 없던 산업을 뚫은 기업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만 봐도 그렇지 않나? 가장 변화가 더딘 택시·호텔 사업에서 혁신을 했다. 창업자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가 이런 신생기업들에게 길을 열어줄 준비가 돼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법을 바꾸려 국회에 가면 ‘세월아 네월아’고, 이해당사자들이 조금만 반발하면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우버가 왜 한국에서 철수했겠나? 산업마다 규제투성이에 기득권을 가진 쪽에선 혁신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까지 막으려 애쓴다. 최근 금융, 의료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되는데 새로운 스타트업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있겠나? 이걸 개혁하지 않으면 한계가 분명하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공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세진: 삼성페이 때문에 화제가 된 루프페이만 봐도 그렇다. 한국은 아예 그런 스타트업을 만들 수가 없다. 규제 때문이다. 신용카드 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그걸 신용카드 회사도 제공하지 않는다. 루프페이 대표가 “신용카드 회사에 미리 허락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는 “그런 허락을 왜 받느냐”고 답했다. 유턴 표지판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은 유턴할 수 있는 곳을 표시하지만 미국은 하면 안 되는 곳만 알려준다. 그 표시가 없으면 다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뭐든 해볼 수 있는 분위기지만 우리는 잘못했다간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 아예 실험을 못하게 만드는 틀을 깨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혁신가는 등장하기 어렵다.

정준오 직토 연구원: 청년 창업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한데 초기에 물리적·심리적인 부분을 도움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부족했다. 특히 직토처럼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롤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자금 조달도 어려운 부분이다. 시제품을 만들기까지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VC를 방문하면 ‘시제품을 보고 얘기하자’ ‘크라우드펀딩 결과를 보고 얘기하자’ ‘매출을 보고 얘기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돈이 필요한 과정을 다 거친 뒤에 투자하겠다는 거다. 그러니 아예 시작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스타트업의 기업공개나 인수·합병(M&A)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유신: 실리콘밸리의 최대 강점은 엔젤 투자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동시에 인수·합병(M&A) 시장도 발달했다. 벤처생태계의 중요한 축 중 하나는 창업에 성공한 사람이 회수에 성공한 뒤 엔젤투자자로 활동하는 거다. 투자도 하면서 자신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멘토링까지 해주는 건전한 선순환이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M&A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하다. ‘고생해서 일군 기업을 헐값에 사간다’는 건데 꼭 그렇게만 볼 게 아니다. 산업 변화 속도만 봐도 그렇다. 얼마나 빨라졌나. 과거에 10~20년 먹고 살던 아이템이 이젠 3~5년도 못 간다. 정리하고, 다른 길에 또 도전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이병태: 경제 원리에 따라 내버려두면 될 걸, 굳이 정치 이슈화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중 하나가 M&A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한다고 하면 ‘상생할 생각은 안 하고, 돈으로 기술을 강탈한다’고 말한다. 이런 부담을 주니까 대기업이 국내 벤처나 중소기업을 인수하고 싶어도 두려워한다. 그러니 자꾸 해외에 있는 기업을 인수한다. 물론 살 만한 회사가 한국에 없다는 판단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지금은 대기업도 성장 엔진에 목마른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대기업-중소기업 프레임으로 비난하는 건 건전한 벤처생태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김세진: 가격보단 철학이 문제다. 한국 대기업이 한국 벤처를 인수할 때 해외 기업보다 더 싸게 인수한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도 틀렸다고만 단정하긴 어렵다. 시장 논리대로 하면 능력이나 기술이 부족해서 가격이 싼 것이라 볼 수 있지만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뒤에는 휴랫패커드 같은 선의를 가진 대기업이 있었다.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더 전진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거다. 당연히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 대기업은 단기 투자 밖에 안 한다. M&A할 때도 단기 성과가 확실한 회사만 고르려 한다. 더 현실적으로는 구매자인 대기업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다.

이병태: 좋은 지적이다. 예전엔 오너가 외국에 나갔다 오면 새로운 사업 아이템(포트폴리오)을 들고 들어왔다. 한국에 없는 게 많았던 시절이니까, 자본만 있으면 금방 한국에 가져와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된다. 굴러들어오지 않으면 찾아 나서야 하는데 인사시스템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오랜 기간 후계자를 키우고, 전문경영인에게 10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 사장은 자신이 내년에도 자리에 있을지 확신을 못한다. 구글이 무서운 건 당장 유행하는 것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중장기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긴 흐름에서 M&A도 해야 한다.

벤처가 좁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정유신: 시장이 성숙할수록 더 중요해질 거다. 특히 중국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의 벤처시장 규모는 우리의 100배지만 투자 규모는 10배 정도다. 온라인 창업이 중심이라 큰 돈이 안 든다. 온라인 중심이란 건 우리 청년들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로 나가라고 하는데 지나치게 아웃바운드(해외로 나가는 것) 중심의 사고를 하는 건 문제다. 열심히 해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것도 좋지만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인바운드도 중요하다. 중국은 큰 내수 시장을 무기로,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이들과 합작하는 형태의 창업이 활발하다. 인바운드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도 잘 돼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인바운드를 하자고 하면 시장을 빼앗긴다는 주장을 한다. 그렇지 않다. 인바운드는 단기간에 기술 수준을 높이고, 우수한 마케팅 능력까지 흡수할 수 있는 기회다.

김세진: 우리나라는 아직 이른바 ‘패스트-팔로워’라는 20세기 전략을 못 벗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엄청난 변화 속도는 기존 지식과 역량만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게 입증됐다. 이대로 가면 세계 50위권으로 밀려날 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가려면 이런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잠재력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아직 ‘혁신잠재역량’이란 키워드가 주류 학계에서 연구된 적이 없다. 예컨대 통찰력이나 선한 동기 같은 거다. 파괴적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래야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지 않겠나?

정준오: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인데 수출이 관건이다. 수출을 하려면 현지화(언어나 마케팅, 유통채널 확보 등) 및 세금 문제가 골칫거리다. 또한 현지에 연고가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찾기도 어렵다. 그러면 결국 에이전트나 중간 벤더를 통하게 되고, 자연히 수익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좀 더 세밀하고,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젊은 청년 창업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병태: 크라우드펀딩 등 투자 여건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수차례 미팅을 하지 않아도 간단한 동영상 하나로 목표 금액의 10배~20배를 모으기도 한다. 투자금을 낸 사람들이 잠재적인 고객이니 자연스레 홍보도 되는 거다. 공유경제의 활성화로 임대료 등 비용 부담이 줄었고, 서버 관리 환경도 좋아졌다. 시제품도 3D 프린터로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다른 부담이 줄었으니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창업이 성공하는지 잘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엄밀히 말해 청년 창업의 성공 확률은 매우 낮고, 영역도 좁다. 돈과 네트워크를 보유한 산업의 주류 업체들을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매우 좁은 길로 들어섰다는 인식과 나의 비교우위가 무엇인지를 잘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이자면 대출과 폐업에 관한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다. 잘못 발을 들였다간 남은 인생 내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준오: 학부 시절부터 사물인터넷 하나만 보고 꾸준히 준비했다. 창업 아이템을 고르는 것도, 열정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색깔’이 중요하다. 청년 벤처가 하는 사업 아이템은 대부분 비슷하다. 꼭 투자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색깔이 있어야 일도 즐거워진다. 동시에 그것을 30초에서 1분 내에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

정유신: 당연히 리스크가 있지만 어차피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이다.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최소한 3번은 실패한다. 꿈도 좀 크게 가졌으면 한다. ‘코스닥 아닌 나스닥’ 이런 식으로. 어차피 우리나라 경제가 대기업에 기대 성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취업을 했더라도 살면서 한번쯤은 창업을 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직원들의 그런 사고와 역량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변화한다. 취업과 창업이 두 가지 다른 길이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걸어야 할 하나의 길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 사회·정리=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1309호 (2015.11.0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