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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의심증·편집증 극복] 상대방 입장에서 다시 돌아보라 

확증편향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 시각으로 판단해야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일러스트:중앙포토
하루는 50대 후반 남자가 진료실을 찾았다. 그는 머뭇거리며 말문을 텄다. “어디 가서 얘기해야 할지 몰라서요…. 아들은 하나인데 미국에서 공부 중이고, 아내는 교수예요. 최근 아내와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제 대학동창 친구와 셋이서 저녁 식사를 했어요. 그 친구와는 유학시절을 같이 보냈고 집안끼리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오랜만에 만나 옛날 고생했던 얘기도 하고 농담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왔죠.”

어느 날 갑자기 아내를 의심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새벽에 잠이 깼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보다 그 친구와 더 가깝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마주치는 두 사람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리고 대화 중에 아내가 무심코 한 ‘교수님이 당신보다 자상해’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요. 그냥 넘어가야지 했는데, 과거 20년의 사건들이 구슬 꿰듯 짜 맞춰지더라고요. 지나쳤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아침 식사를 하며 다짜고짜 물었어요. ‘너 그 친구와 바람 피우지?’ 아내는 웃으며 넘어갔어요. 그런데 그 이후 계속 둘 사이 관계가 자꾸 의심이 돼요. 떨쳐버리기가 힘들어요.”

그는 탁월한 능력과 강직한 성격을 인정받아 직장에서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30년간 공직 생활을 명예롭게 마감하고, 지금은 몇몇 기업에서 고문으로 소일을 하고 있다. 그는 무신론자다. 평생 자신의 능력만 믿고 살아왔다. 그는 모범적인 가장이다. 평생 가족만 알고 살아왔다. 그는 충실한 가장이다. 맏아들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내와 아들도 잘 건사했다. 그런데….

공자는 나이 40세를 불혹(不惑)이라 했다. 그런데 현대인은 60세가 돼도 무수한 유혹(誘惑) 가운데 침몰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 자본주의의 ‘아케이드 프로젝트(Arcade Project)’는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 우리는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틀에 갇혀 살아간다. 현대인은 60세가 돼도 무수한 의혹(疑惑) 가운데 추락한다. ‘누군가 항상 나를 지켜본다.’ 인터넷 시대의 ‘빅 브라더(Big Brother)’는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행동을 감시한다. 우리는 지식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마치 표류하는 배처럼 갈피를 못 잡고 살아간다.

사랑하던 아버지가 마피아인 것을 아는 순간, 딸의 세계는 무너진다. 존경하던 스승이 매국노인 것을 아는 순간, 제자의 세계는 붕괴된다. 사랑하던 아내가 오랫동안 딴 남자를 좋아한 것을 아는 순간, 남편의 세계는 무너진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일이!” 아니라고 부인해 보고, 말도 안 된다고 화도 내 보고, 되돌려 보려고 타협해 보기도 한다. 홀연히 의심, 의혹, 회의, 불신, 피해의식, 편집, 분열이 들어선다. 과거 수십 년이 구슬 꿰듯이 짜 맞춰진다.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게 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과정이다. 확증편향은 갑론을박의 원인이다. 우리는 보통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한다. 그래서 같은 말을 듣고도 다르게 해석한다. 확증편향은 과거 경험을 반영한다. 무엇이든 자꾸 반복하면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친숙함은 진실과 거리가 있다. 낭패를 불러올 수 있다. 확증편향은 무의식적인 자기정당화다. 휴거를 기다리던 신흥 교도들은 거짓이 드러나도,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는 선한 행위’로 합리화한다.

확증편향에 잘 빠지는 사람이 있다. 편집증적 성격의 소유자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편집증, 사도세자는 분열증을 보여준다. 편집증은 어려서 정당한 대우를 못 받고, 신체적, 감정적으로 학대받은 경험을 가진 경우에 많이 나타난다. 특징은 셋으로 요약된다. ①모든 것에서 숨겨진 의도를 찾는다. 의심, 의혹, 회의, 불신, 피해의식에 잘 빠진다. 아무나 못 믿고, 믿음을 확인하려 끊임없이 테스트한다. ②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우연한 일조차 자신과 관련 짓는다. 세상을 흑백논리로 본다. ③권력구조에 민감하다. 항상 이용당하거나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자주 박해당하는 포지션에 있다.

편집광(Paranoia)은 정상부터 비정상까지 다양하다. 순기능도 있다.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미국 반도체산업을 성공시킨 인텔사 사장 앤디 그로브가 남긴 말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한국 생명과학의 선구자 황우석이 남긴 말이다. 편집증적 태도는 리더의 바람직한 덕목 중의 하나다. 자신, 가족, 기업, 국가를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 상식적인 일이나 전통적인 권위를 부정하는 철학적 정신의 근본이 된다. 열광적으로 헌신하는 개인들의 집단현상을 통해 사회적 대의를 실천한다.

자, 그에게로 돌아가자.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생각을 거둬들이자. 너무 멀리 갔다. 의혹은 언제 일어나는가? 생각과 몸 사이에 괴리가 생길 때 싹튼다. 몸이 지쳤다.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어보자.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회의는 언제 생기는가? 생각과 마음 사이에 괴리가 생길 때 싹튼다. 마음이 지쳤다. 좋아하던 시집을 들고 한적한 카페로 나가보자. 생각이 바뀔 것이다. 불신은 언제 일어나는가? 생각과 혼 사이에 괴리가 생길 때 싹튼다. 혼이 방향을 잃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 길을 새롭게 점검하자. 커다란 목적이 들어설 것이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철학자와 행동가가 길을 잃었다 철학자는 두려워 벌벌 떨며, 온갖 의혹에 싸여 있었다. 행동가는 무섭지만, 온몸으로 부닥치며 길을 찾았다. 두려움이 몰려올 땐 최소(Minimum)를 기대하고, 무서움이 몰려올 땐 최악(Maximum)을 가정하자. 그냥 행동하자! 기대 없이 행동하고, 믿음 없이 행동하자.

둘째, 소설을 다시 쓰자. 우선, 상대 입장에서 써보자. 아내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침부터 무슨 날벼락인가? 갑자기 바람을 피운다니 너무 황당하다. 어제 대화에서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 뭔가 오래 쌓인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상대역할을 경험해 볼 때, 비로소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음, 반박 자료를 써보자. 악마의 변호인이 돼 보자. 반대 증거를 모아보자. 그 교수는 오래 된 친구다. 둘이 가깝다고 해서 바람피우는 사이라 할 수 없다. 눈빛이 통한다는 것은 너무 주관적이다. 내가 자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반박 자료가 쌓일 때, 비로소 의심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확실성에 내맡겨라

셋째, 불확실성에 내맡기자. 오늘날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은 설명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복잡성에 지배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 하나도 확실한 게 없다. 지구 한 편에서 나비 날갯짓이 다른 편에서 태풍을 일으킨다. 거대한 혼돈 가운데 질서가 들어선다. 작은 선택에 기뻐하지 말고, 큰 결정에 주목하자. 작은 지혜에 도취되지 말고, 큰 깨달음에 도전하자. 작은 확실성에 안주하지 말고, 우주적 불확실성에 내맡기자.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312호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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