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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 영국 손잡고 달러의 길 따라 걷는다 

1950년대 유로달러 시장 탄생 과정 재현할 듯 ... 위안화로 금융 프리미엄 누리려는 영국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0월 21일 런던 총리관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중국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구성 통화로 편입되는 게 유력하다.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10월 영·중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런던 국제금융센터의 위안화 비즈니스 확대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새빨갛게 물든 영국. 그 노골적인 자세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중국은 지금 안전보장이나 인권 문제 등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와 긴장 관계에 있다. 하지만 영국은 그러한 중국에게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벗어 던지면서까지 다가서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부부를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는 버킹검 궁전에 묵게 했다.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주석 부부의) 이번 영국 방문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며 “영·중 관계가 황금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편전쟁이 있었던 19세기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영국이 추진하는 원자력 발전사업 등에 중국이 총 400억 파운드를 투자하는 것이 이번 전략적 파트너십의 주요 포인트다. 19세기 패권국이 현 경제 대국에 매달리는 구도다.

중국에 노골적으로 매달리는 영국의 속내는?


사실 중국도 금융 강국 영국의 전문성에 기대려 한다. 영국이 부끄러움이나 체면을 버리고서라도 중국에 접근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체적으론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이다. 이번 정상 간 합의에서 중국은 자국 이외에선 최초로 위안화 국채를 런던 시장에서 발행하기로 발표했다. 런던은 이미 2012년부터 홍콩의 뒤를 쫓는 형태로 위안화의 오프쇼어(Off-shore, 중국의 법률이나 감독이 통하지 않는 해외에 형성된 위안화 기반 금융시장) 업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이것이 이번 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된 것이다.

앞서 말한 캐머런 총리의 발언에 대해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영국의 윈윈 관계가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황금시대의 시작”이라고 화답했다. ‘중국과 영국의 윈윈’이란 무엇일까?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의 시계바늘을 60년 전으로 되돌려봐야 한다.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일명 시티라 불리는 곳은 불과 사방 약 1마일의 좁은 지역에 중앙은행 BOE(잉글랜드은행), 증권거래소, 상품거래소, 각종 금융회사, 해운회사가 빼곡히 들어선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금융센터다. 자본가를 기준으로 본 대영제국 역사는 제조업 등의 산업계와 시티를 중심으로 한 금융계가 서로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며 움직여왔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영국 제조업은 거의 힘을 잃었다. 지금은 자본 논리상 시티가 영국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런던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에 빠졌다가 화려하게 부활 할 수 있었던 건 ‘유로달러 시장(여기에서의 유로는 유럽의 의미로 공통통화 유로와는 별개)’ 덕분이었다. 1950년대 후반의 일이다.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세계의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가 아닌, 미국의 달러가 됐다. 대영제국 시대에 전 세계 무역과 투자에서 파운드를 사용한 덕분에 런던은 금융·상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만약 그 자리를 달러에 뺏긴다면, 런던의 설 자리가 흔들릴 처지였다.

그러자 런던의 은행들은 자국 통화가 아닌 달러 예금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전전(戰前)의 금융·경제 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국제 금융 거래에 대한 규제가 크게 강화됐다. 무리하게 외화를 취급하는 것 역시 금지됐다. 하지만 영국은 경제의 기반 침하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제금융 업무 노하우가 뛰어난 런던의 이익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달러를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시작된 유로달러 시장은 영국 내 파운드 시장과 명확하게 구분됐다. 무엇보다 규제나 세금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본국인 미국보다 예금 금리는 높고, 대출 금리는 낮은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1960~70년대 런던에 엄청난 속도로 달러 자금이 유입됐다. 달러 통화의 무역 금융이나 채권 등 금융상품이 꽃을 피웠고, 덕분에 달러 기축통화 시대에도 런던은 번성했다.

G7 중 가장 먼저 AIIB 참가 선언한 영국


당시 미국은 이를 어떻게 보았을까? 1960년대 미국에선 여러 규제 때문에 자국 금융회사의 국제 금융 비즈니스가 쉽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직접 런던에 진출해 달러를 통한 비즈니스를 자유롭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유로달러 시장에 몸을 던졌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경상수지 적자 등을 통해 해외에 대량으로 뿌려진 달러가 자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영국에서 금융 빅뱅(갑작스런 규제 완화)이 시행됐고, 주요 선진국에서도 금융자유화가 추진됐다.

하지만 전후 달러가 기축통화로 정착하는 데 유로달러 시장은 큰 역할을 했다. 압도적인 유동성을 가진 이 자유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증권 투자나 외화 거래가 달러 통화로 이뤄질 수 있었다. 자국 통화도 아닌데 그것을 끌어들여 기축통화로서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이러한 런던의 방식은 1990년대 후반 유럽 공통통화인 유로에서도 발휘됐다. “독일이나 프랑스 계열 금융회사는 하나같이 국제 업무의 거점을 런던으로 옮겼다. 유로화의 등장 후 런던의 존재감은 한 단계 높아졌다.”(다카타 하지메 미즈호 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

달러·유로라는 세계 1·2위 통화를 수확하는데 성공한 런던 입장에서 보자면 언젠가 세계 통화를 잠식할지 모르는 위안화를 무시하는 건 불안한 일이다. 영국이 달러나 유로처럼 유로위안화 시장(오프쇼어 위안화 시장)을 크게 키우려 준비한 흔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올해 3월에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G7 중 처음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가를 표명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유럽 각국이 우르르 AIIB 참가를 결정했다.

세계적인 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통화가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 달러의 확산은 미국의 경상적자나 전쟁 비용 지출을 통해 이뤄졌으나 경상흑자국인 중국의 경우, 지금까지 시종일관 미국 국채 중심의 외환보유액 축적에 매진해왔다. 이것을 회피할 수 있는 고도의 수단이 AIIB나 그것과 관련된 실크로드 기금 구상이다. 앞으로 중국은 위안화를 인프라 투자 형태로 아시아 각국에 퍼뜨릴 것이다. 유로위안화 시장을 지향하려면 우선 위안화가 전 세계에 확산돼야 한다. 영국 왜 AIIB를 지지하고 나섰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 퍼진 위안화를 저축하거나 이를 운용하는 매력적인 시장이 없다면, 각국은 중국과의 수입 결제를 통해 위안화를 중국으로 다시 돌려보내게 될 뿐이다. 바로 일본 엔화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으로, 이런 상황에 머문다면 위안화가 달러의 경쟁 상대로 도약하는 건 어렵다. 여기서 런던이 등장한다. AIIB등을 통해 위안화를 보유하게 된 세계 각국에 위안화를 사용하는 무역 금융이나 금융상품을 제공해 위안화에 기반한 민간 투자나 공공 부문의 외화 거래를 늘리려는 구상이다.

또 한 가지 런던이 관여했다고 보이는 요소가 올 8월에 나타났다. 현재 중국은 달러·유로·엔·파운드에 이어 위안화의 IMF SDR 구성 통화 편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IMF는 지난 8월 리포트에서 BOE 지원 하에 위안화의 SDR 편입을 위해 중국 본토와 더불어 런던 시장에서의 위안화 환율도 중시할 것을 시사했다. 중국 역시 이 리포트에 대응해 8월 위안화의 달러 기준 환율의 제도 개혁을 실시했다. 위안화가 SDR 구성 통화에 편입되면 중국이 얻는 이득은 상당하다. 달러 의존도가 줄어들고, 수출입 환율 리스크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최종적인 결제기능을 장악해 안전보장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자본이동 완전자유화에 부정적인 중국의 차선책


물론 장애물도 있다. 일단 자본이동 등 국제금융 시장의 자유화에 중국이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1단계는 비교적 성공적이다.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점유율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단계적 해금을 시작한 지 5년째인 2014년 중국 무역액 중 위안화 결제 비중은 22%로 크게 상승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물론 시진핑 정권이 내건 ‘신창타이(뉴 노멀)’ 정책 하에 금융자유화가 꾸준히 추진될 것이다. 하지만 주가 폭락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모습이나 국유 기업에 대한 지도 체제를 강화하는 모습 등은 여전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구나 단기 자금 도피나 유입을 두려워하는 중국 정부는 자본이동의 완전 자유화에는 일관되게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런던 시장은 보다 흥미로운 존재다. 유로달러 시장 탄생 당시에도 달러 발행국인 미국에서는 자본이동 등 규제가 심했다. 발행국 내에 자유로운 국제금융시장 없어도 통화의 국제화가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을 유로달러 시장이 보여준 셈이다. 또한 중국에서는 국제금융 업무에 대한 노하우나 인재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를 포함해 어느 정도 규제를 남긴 본국 시장과 런던에서의 유로인민화 시장이라는 조합은 중국에게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진핑이 말하는 윈윈 관계의 정체가 아닐까?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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