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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 | 리큐르] 젊은 여대생도 “소주 주세요” 

참이슬·처음처럼·좋은데이 ‘과일맛 소주’로 일전 … 소비 계층 확대·다양화 


2015년 한 해 한국 소주시장을 리큐르가 휘저었다. 1990년대 잠시 시장에 나왔다 반짝 관심을 끌다 사라진 주종. 잊은 줄 알았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시장에 등장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바람은 거셌다. 한국 소주시장의 판도를 뒤바꿔놓을 정도다. 우선 소주 소비량이 늘었다. 저도 경쟁을 거친 소주시장의 소비 계층은 중년 남성 중심에서 청년층으로 확대됐다. 리큐르는 젊은 여성층까지 끌어들였다. 달짝지근한 과일 맛이 소주의 역한 느낌을 없앴다. 특히 롯데주류는 리큐르 신제품 ‘순하리’를 기말시험이 끝난 대학가에 집중적으로 뿌렸다. 소주에 익숙하지 않은 여대생을 집중 공략하겠단 전략이다. 맥주에 비해 포만감이 적고 소주에 비해 맛이 달콤해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직장 회식자리에서도 젊은 여성의 주문을 부르며 ‘순하리’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한 때 ‘소주계 허니버터칩’으로 불릴 정도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순하리’ 선전을 관전하던 대형 소주 업체들도 리큐르를 속속 선보였다. 리큐르가 소주시장 주류로 인식되면서 젊은 여성이 소주 소비층으로 등장했다.

소주 업계 ‘허니버터칩’

리큐르는 수도권 소주시장 판도도 바꿔놨다. 국내 소주시장은 점유율 46.1%를 차지하는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공고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17.1%, 무학의 ‘좋은데이’는 11.6% 점유율로 1강2중 양상이다. ‘처음처럼’은 오랫동안 수도권에서 ‘참이슬’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견고한 ‘참이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롯데는 동남권인 부산·울산·경남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이 지역에도 절대강자가 존재했다. 무학의 ‘좋은데이’가 75%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 롯데는 그룹의 아성인 국내 동남권 시장에서 소주 주도권을 가져와 전국 점유율을 높일 전략을 세웠다. 전략 무기가 ‘순하리’다. 그래서 롯데가 리큐르를 처음 선보인 곳도 부산지역 대학가다.

시장 판도는 예상과 좀 다르게 흘러갔다. ‘순하리’ 이후 무학도 5월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란 이름의 리큐르를 선보이며 맞불을 놨다. 유자 한 가지 맛인 ‘순하리’와 달리 블루베리·석류·유자·복숭아 등 다양한 맛을 선보였다. 특히 롯데가 동남권을 치고 들어오는 사이 무학은 수도권을 공략했다. 지금까지 수도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좋은데이’란 브랜드를 알릴 기회였다. 무학의 일부 대리점에선 리큐르에 일반 소주 ‘좋은데이’를 끼워주면서 브랜드를 홍보했다. 롯데의 리큐르 지방 공략이 무학의 수도권 공격에 길을 터준 셈이다. 무학의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는 5월 출시 이후 2개월 만에 2500만병이 나갔다. 이 중 1000만 병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판매됐다. 판매량 상당수가 수도권에서 팔린 것이 무학에겐 가장 큰 소득이다.

전국 소주시장 판도 지각변동

하이트진로 역시 ‘자몽에이슬’이란 리큐르를 내놨다.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놨던 리큐르 제품을 한국인 입맛에 맞춰 시장에 출시했다. 하지만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진 않았다. 이미 일반 소주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굳이 생산라인을 바꿔가며 번외 경기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 출시 직후인 6월에 300만병으로 시작한 ‘자몽에이슬’은 7~9월 690만병, 10~11월 720만병 정도 수준만 판매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하이트진로는 수도권을 수성했다. 롯데는 동남권을 중심으로 전국 리큐르 시장을 선점했다. 무학은 수도권에 진출해 시장을 확대했다. 더위가 한풀 꺾인 9월부턴 리큐르 인기가 다소 시들해졌다. 무학의 리큐르는 시장 규모가 줄어들며 전체 소주 생산의 10%만 유지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도 리큐르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 없다. 롯데도 지난 여름만큼 뜨겁게 판촉 전을 벌이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럼없이 소주를 주문하는 젊은 여성이 늘어났고, 리큐르는 한국인의 주요 주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 리큐르: 희석식 소주에 물이나 과일향 등을 별도로 섞어 바로 마실 수 있는 RTS(Ready To Service) 주류를 말한다. 발효주를 끓여 높은 도수로 만든 술을 증류주라고 하는데, 증류주에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들면 혼성주가 된다. 리큐르는 주종으론 혼성주에 속하고 형태론 RTS에 포함되는데, 주류 업계에선 통상 RTS라고 지칭한다.

[박스기사] 리큐르의 등장 왜? - 또 하나의 순한 소주 레이스


올해 리큐르가 만들어진 배경 중 하나는 저도 소주 경쟁이다. 보다 순하고 순하게 소주를 만들다 보니 한계에 다다랐고, 더 낮은 도수 소주를 내놓기 위한 대안으로 리큐르가 등장했다. 소주나 맥주 외 특별한 주종이 없던 시절에 소주는 어느 정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뤘다. 제조 시간이 짧고 생산이 간편해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짭짤한 제품이었다. 여러 대기업이 뛰어들었고 생산설비가 크게 늘었다. 1990년대 이후 막걸리, 전통주, 와인, 위스키, 수입맥주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밀려난 희석식 소주는 공급 과잉 위기에 처했다.

한정된 소주 수요를 잡기 위해 소주 업체들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 소주 도수를 낮추며 주류 소비 연령층을 점점 넓혔다. 좀 더 순한 술로 보다 젊은층이 소주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과거 25도이던 소주 도수는 급기야 16도로 떨어졌다. 주요 성분인 주정을 덜 쓰고도 더 많은 소주를 팔 수 있게 됐다. 싸게 만들어 더 많이 파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소주 경쟁이 이어지면서 공급 과잉 상태는 이어졌다. 그렇다고 16도 미만으로 도수를 내리는 건 무리였다. 더 내리면 맛이 너무 밋밋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일 맛을 섞어 리큐르를 내놓았다. 리큐르의 알코올 도수는 13도 내외다. 잘 취하지 않으면서 달콤한 맛이 소비자 욕구에 맞아 떨어졌다. 소주 업계 관계자는 “16도로 떨어질 때까진 도수를 내릴수록 생산비를 줄일 수 있었지만, 과일맛을 넣으면서부턴 생산비가 올랐다”며 “리큐르가 만들어졌단 건 저도 소주 경쟁이 일단락됐단 의미”라고 말한다.

1314호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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