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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동 걸린 신차] 아슬란·뉴 레전드·C4 피카소의 눈물 

모호한 정체성·가격, 애매한 스펙, 특징 없는 디자인에 고객 외면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34-
“오늘은 국내 고급차 시장에 한 획을 긋고, 새 역사를 써내려 갈 현대자동차의 전륜구동 최고급 세단 ‘아슬란’이 정식으로 데뷔하는 날이다. 아슬란 출시를 계기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국내 고급차 시장에서 에쿠스·제네시스와 더불어 또 하나의 고급차 대표 브랜드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2014년 10월 30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린 ‘아슬란(ASLAN)’ 공식 출시 행사에 참석한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수입차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는 시점에서 아슬란으로 안방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남은 두 달 동안 6000대를, 판매가 본격화하는 2015년에 2만2000대를 판매하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아슬란의 처지는 풍전등화다. 예상만큼 팔리지 않았고, 구상처럼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자리를 잡지도 못했다. 올 10월까지 아슬란의 목표 대비 판매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 42%다. 월 평균 1833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로는 평균 770대만 팔렸다. 국내와 수입차를 막론하고 최근 출시된 모든 신차 중에 아슬란만큼 혹평과 외면 속을 헤맨 차는 드물다. 차 자체엔 별 문제가 없다. 주행 안정성이나, 정숙성 측면에선 호평이 지배적이다. 아슬란은 그랜저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엔진만 빼면 그랜저와 별 차이 없는 어정쩡한 스펙과 탁월한 내부 디자인에 비해 너무 처지는 외부 디자인이 구매 의욕을 떨어뜨렸다. 그랜저도 차는 훌륭하다. 아슬란을 그랜저보다 800만~900만원 더 주고 사려면 상응하는 뭔가 있어야 했는데 바로 그게 없었다. 신차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 것이다.

결국 아슬란은 출시 전부터 지적된 정체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가격과 재원 면에서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수요를 노렸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그럴 바에 그랜저’ ‘그럴 바에 제네시스’를 택했다. 아슬란과 가격대(3800만~4500만원)가 비슷한 수입차가 늘어난 것도 흥행 실패의 원인이다. 실제로 올 가을 출시된 GM 임팔라는 출시 3달 만에 계약대수 1만대를 돌파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임팔라는 아슬란보다 400만원(출고가 기준)가량 저렴하다. 사자(아슬란)가 사슴(임팔라)에게 진 모양새다.

아슬란의 목표 대비 판매율 42% 불과

현대차는 판매 부진이 계속되자 연초부터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 8월 말에는 차종교환 프로그램이란 특단의 대책까지 내놨다. 아슬란을 구입한 개인 고객이 차량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그랜저나 제네시스로 교환해주는 프로그램(1개월 내)이다. 아슬란 구매가격이 교환 차량 가격보다 높으면 차액을 소비자에게 돌려주고, 교환 차량 가격보다 낮으면 소비자가 추가로 부담하는 식이다. 그러자 8월 400대선으로 떨어졌던 월 판매량이 9월 800대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반짝 효과였다. 10월 다시 판매량이 375대로 급락했다. 11월에도 598대에 머물렀다.

현대차로서는 고민이 깊다. 그동안 ‘현대차’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에쿠스’는 최근 출범한 고급 세단 브랜드 ‘제네시스’에 편입됐다. 에쿠스와 제네시스가 빠졌으니, 현대차 브랜드 중 최고급 브랜드는 최상위 모델인 아슬란이 이어받아야 한다. 하지만 시장의 냉혹한 평가와 판매량을 고려하면 ‘현대의 상징’이라고 내놓기엔 중량감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정통성을 가진 그랜저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일단 현대차는 12월 7일 2016년형 아슬란 판매를 시작했다. 1년 동안 축적된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사양을 재구성하고,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했다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자존심을 버리고 가격을 최대 245만원(G330 모던) 인하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 고객 선호 사양인 운전석·동승석 통풍시트와 4.6인치 수퍼비전 클러스터, 뒷좌석 다기능 암레스트 등을 기본으로 적용했다. 스펙은 높이고 가격은 낮춘 초강수를 던진 셈인데, 내년 초까지 뚜렷한 반등이 없다면 현대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시트로엥 ‘C4 피카소’는 조사 기간 내에 출시된 전체 차종 중 목표 대비 판매율이 가장 낮았다. 22.5% 밖에 안 된다. 지난해 10월 한국에 출시했는데 월 40대 판매가 목표였지만 10대도 채 못 팔았다. CUV(다목적 퓨전 차량)를 표방하며 실용성을 내세웠지만 우수한 연비(복합연비 14.4km/ℓ)를 제외하면 딱히 매력적인 게 없었다. 가족이 나들이용으로 타기엔 작고, 좁은데다 과하게 둥근 외관 디자인 역시 감점 요인이었다. 한국 소비자가 프랑스 브랜드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인 변속 충격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가격은 4190만원으로 어중간하다. 같은 가격대 중엔 최강의 수입차 폴크스바겐 티구안이 있다. 티구안은 올해 전체 수입차 중 가장 많이 팔린 차다.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파문에도 한국에선 오히려 판매량이 증가했다. 이 틈을 뚫기엔 C4 피카소의 특징이 너무 없었다. 그나마 ‘그랜드 C4 피카소’는 7인승이란 장점이 부각돼 화제를 모았지만 5인승인 C4 피카소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뉴 레전드는 애매한 가격에 홍보도 부족

혼다 뉴 레전드 역시 판매율이 20%대에 머물렀다. 지난 2월 국내에 출시해 연 500대 판매 목표를 세웠지만 월 20대 이상 판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선택을 받지 못했다. 사실 혼다의 플래그십 세단 레전드(Legend)는 이미 검증이 끝난 차다. 1986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이름처럼 레전드가 됐다. 국내에 출시한 건 6기통 3.5리터 전륜구동 모델이다. 탁월한 가속성능을 자랑하면서도 복합연비 9.7km/ℓ의 높은 효율을 구현했다. 대부분의 일본 프리미엄 세단이 그렇듯 소음이나 진동 면에서도 합격 점을 줄 만하다.

세계 최초로 P-AWS(Precision-All Wheel Steer, 4륜 정밀 조향기술)를 도입한 것도 눈길을 끈다. 뒷바퀴를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 차선 변경 등 방향이나 속도 제어가 필요한 경우, 상황에 맞게 뒷바퀴의 이동 각이 조절된다. P-AWS는 핸들링 보조 시스템(Agile Handling Assist)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뛰어난 조정 성능을 보여준다.

차는 좋은데 홍보가 부족했다. 각 언론 자동차 담당 기자들 중에도 출시 사실을 몰랐다는 사람이 꽤 있었을 정도였다. 별도의 신차 출시행사가 없었으니 그럴 만했다. 현대차 제네시스, 렉서스 ES, BMW 5시리즈 등 다양한 경쟁 차종이 포진한 고급 대형 세단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기엔 성의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6500만원에 달하는 가격도 부담스럽다. 렉서스 ES 시리즈보단 비싸고, BMW 5시리즈와 비슷한 수준이다. 신규 진입자의 가격 정책치곤 너무 단순했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1315호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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