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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3인의 스타트업 정책 고언] 숫자 아닌 내실 챙겨라 

경험 부족한 청년에 편중된 지원 위험천만 … 네거티브 규제로 확 바꿔야 

정리=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청년을 바로 창업시장에 몰아넣기보다는 경력자의 창업도 장려해야 한다’ ‘플랫폼이 특정 기술이나 UI에 한정되면 혁신적인 서비스 개발에 애로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발전을 위한 전문가들의 주요 조언이다. 비단 스타트업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법과 제도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요즘 아닌가. 좀 더 열린 사고가 절실하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 ‘경력 창업’ 늘리고 SW 교육 지원해야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 기조에 맞춰 창업 장려 정책을 쓰고 있다. 정부에서 직접 투입하는 창업 지원 자금만 연 7000억원이 넘는다. 정부가 군불을 때자 조금씩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벤처 투자 규모는 2조원을 넘었다. 해외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대기업이 인수하는 스타트업도 나오기 시작했다. 공공과 민간이 제공하는 창업자 공간도 급격히 늘었다. 정부는 대기업과 연계해 전국 17개 도시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해 약 3만 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지금의 창업 지원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지원이 대부분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청년·대학생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혁신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다. 지금 시대의 혁신은 대부분 소프트웨어로부터 나온다. 국내외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면면을 보면 모두 소프트웨어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창업에 나서는 국내 청년·대학생들은 소프트웨어 능력이 부족하다. 초·중·고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지 못한데다, 대학에서도 전공자를 제외하면 코딩을 할 줄 아는 창업자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있는 개발자의 역량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앱센터가 영국 업체에 의뢰해 창업대회에 참가한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코딩 능력을 평가한 적이 있다. 개발자임을 자처하는 청년들의 능력도 글로벌 수준에는 많이 모자랐다.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은 생각보다 ‘경험’이 좌우한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최근 ‘청년·대학생보다 경력 창업자가 성장률, 투자 유치 등에서 성과가 더 좋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따라서 청년을 바로 창업시장에 몰아넣기보다는 경력자의 창업도 장려해야 한다. 미국 창업자의 경우 평균 16년의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중기청의 창업 지원 자금 7000억원 가운데 5800억 원이 청년·대학생에 집중 투입됐다. 창업 지원 대상은 20~30대의 비중이 72%에 이른다. 이로 인해 기술을 연마해야 할 대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창업에 나선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가 ‘경쟁력 없는 창업을 부추긴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국내 스타트업의 1년 생존률은 40%에 불과하다. 살아 남는 스타트업을 늘리려면 고급 기술을 보유한 팀의 창업을 선별해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가 굳이 청년·대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싶다면 부족한 경험과 기술을 보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교육’으로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 ‘오픈 플랫폼, 보안, 해외 진출’ 필수


스타트업의 단골 메뉴인 핀테크는 정부의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나름의 성과를 냈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지난해 5월 핀테크 활성화 대책이 발표되면서 전자금융업자의 자본 요건을 5억~10억원으로 대폭 완화했고, 핀테크지원센터를 설립해 소통 창구를 확보했다. 사전보안성심의제도의 폐지,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 등은 기존 금융 규제의 틀을 ‘사전 규제’에서 ‘사후 관리’로 확 바꾼 조치다.

그러나 아직 혁신적인 서비스의 출시가 적고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하다. 그만큼 올해 핀테크 정책의 방향이 중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표준화된 개발도구(API)를 위한 오픈 플랫폼 활용이다. 오픈 플랫폼은 핀테크 업체가 새로운 서비스에 필요한 금융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일종의 정보 출입 고속도로다. 업계에선 공동망을 만들되, 핀테크 업체들이 고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용자인터페이스(UI)의 사용에 유연성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플랫폼이 특정 기술이나 UI에 한정되면 혁신적인 서비스 개발에 애로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안산업의 육성도 핵심 과제다. 새로운 서비스가 많이 출시될수록 해킹 등 보안 리스크도 커지게 마련이다. 규제 방식이 사전 규제에서 사후 관리로 바뀌면서 금융사의 정보 유출 부담도 커졌다. 따라서 보안 기술력 있는 업체의 발굴과 금융보안원 등 전문기관의 체계적인 업체 지원이 시급하다. 또 최근 관심이 큰 생체인식과 높은 보안성이 강점으로 꼽히는 블록체인 기술의 적극적 연구와 도입이 필요하다. 이미 미국 나스닥에서는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인 ‘링크’에 블록체인을 도입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핀테크지원센터·코트라·특허정보원이 체결한 해외 진출 협력 양해각서(MOU)를 구체화해 시장조사, 마케팅, 특허정보 등 해외 진출 원스톱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 O2O 혁명 대비한 규제혁신 절실


온라인 경제가 오프라인 경제를 변혁시키는 O2O 혁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도 늘고 있다. 그러나 국내 O2O 기업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규제와 이해집단의 저항 때문이다. ‘우버’는 자가용 영업 행위로 간주돼 불법화됐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콜버스’도 같은 운명을 맞을 위험에 처했다. ‘스퀘어’는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오프라인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영수증을 줘야 한다는 규제 하나 때문에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자동차 거래를 위해 300평 이상의 매장을 갖춰야 한다는 규제를 신설해 중고차 온라인 거래를 준비하던 스타트업을 불법화했다. 시대착오적인 ‘오프라인식’ 규제가 별다른 토의나 검증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예산 낭비로 끝나고 말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 창업에 휩쓸린 청년은 신용불량자의 나락에 떨어진다. 한국 경제는 혁신을 수용하는 다른 나라에 뒤쳐지고 소비자는 혁신의 혜택에서 멀어진 채 살아야 한다. O2O 경제로의 원활한 전환을 위해서는 규제혁신이 필수다. 무엇보다 금지조항의 철폐와 이해집단의 저항에 대한 절차적 확립이 필요하다. 규제의 철폐에는 시장의 자율 기능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비대면 전자상거래가 발전한 것은 정부의 규제와 감시가 아니라 상호 평가시스템 같은 시장의 자기 정화기능 덕이다. 이외에도 자본금·매장 등 준비 요건의 가면을 쓴 오프라인식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근원적인 해결책도 필요하다.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다.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걸 보고 나서야 규제를 손 보는 뒷북 행정으로는 승자독식의 디지털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선진화하려면 이 같은 변화를 통해 O2O 경제의 흐름에 부응해야 한다. 그 선택과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

- 정리=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1320호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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