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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의 회사 생활] ‘회의 중이라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루 종일 회의·보고의 연속 ... 주말에 쉬는 임원 18% 불과 

조용탁 기자 ytcho@joongnag.co.kr

▎일러스트:중앙포토
드라마 속의 대기업 임원은 뭔가 달라 보인다. 여유있게 말하고 행동한다. 작은 움직임에도 권위가 묻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대기업·중견기업의 임원을 만나 물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성공한 인생을 즐기는 엘리트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올라갈수록 처절하다’ ‘휴가 없이 일한 지 몇 년 지났다’ ‘연봉 주는 만큼 사람 돌리는 곳이 조직’이라는 절절한 호소가 나온다.

임원의 삶이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꿈에 그리던 별을 다는 순간 직장 생활엔 커다란 변화가 온다. 커다란 권한을 얻지만 무거운 책임이 따라온다. 산더미 같은 업무량은 덤이다. 본지가 임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대한민국 임원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임원의 회사 일과는 대략 오전 7시30분에 시작한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비서가 하루 일정을 알려준다. 처리해야 하는 업무와 미팅, 빡빡한 회의의 연속이다. 오전 회의를 마치면 점심 시간이다. 하지만 점심도 업무의 연장이다. 외부 인사와 식사를 하며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 일쑤다. 오후에도 역시 회의가 기다린다. 설문에 답한 임원의 70%가 매일 회의만 2~3번 참석했다. 16%는 하루에만 무려 4~5개의 회의 일정이 있었다. 임원에게 전화하면 ‘회의 중이라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가 자주 오는 이유다.

회의로 하루를 보낸 임원에게 퇴근은 낯선 단어다. 임원의 52%가 월 6회 이상 외부 회식 시간을 가진다. 대상은 고객이나 협력사 사람이다. 사장이나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대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하 직원들과의 회식이나 거래처 접대, 동료 임원과의 교류 등 끝이 없다. 홍보마케팅을 맡은 한 제약사 상무는 “일주일에 여섯 번 정도 업계 관계자와 저녁을 먹고, 약속이 없어도 사무실에서 대기하다 집에 간다”고 말했다. 임원에겐 ‘저녁이 있는 삶’이란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

주말(토·일) 근무 빈도 역시 높은 편이다. 말 그대로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이다. 주말에 쉰다고 답한 임원은 18%에 불과했다. 49명이 ‘가끔 주말 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고, 34명은 자주 혹은 매주 주말 근무를 하고 있었다. 임원은 말 그대로 ‘임시 직원’이다. 후한 대우를 받지만 성과를 못 내면 곧장 책임이 따른다. 이들이 주말에도 업무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한 임원은 “휴가와 휴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건 최고경영진에 대한 도전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원의 회사 생활은 외로운 편이다. 마음 통하던 선배는 오래전에 퇴사했다.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동기들도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2015년 30대 그룹 상장사 가운데 평사원으로 입사해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은 0.87%에 불과하다. 당신이 임원이라면 이미 주위에 마음을 터놓을 동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다. 설문에서 임원 10명 중 8명이 외롭다고 답한 배경이다.

임원들은 대부분 아랫 사람에게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하 직원과의 관계는 임원의 회사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부하 직원을 향한 평가도 후한 편이었다. 부장급에 대한 업무 만족도는 62%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중간 관리자(과·차장급)에 대해선 70%가 만족감을 나타냈다. 임원이 원하는 부하는 책임감 있고 창의적이며 업무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다. 절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유형도 있다. 거짓말을 자주 하거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부하는 질색이다. 무능력하고 게으른데, 실수도 잦은 부하를 챙길 상사는 찾기 어렵다. 다만, 권한이 있다면 자르고 싶은 부하가 있느냐는 질문엔 답이 달랐다. 54명이 없다고 답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46명이 누군가를 자르고 싶다고 답했다.

몸은 힘들지만 자리에 대한 만족감은 높은 편이다. 업무가 고된 만큼 좋은 대접을 받는 편이다. 아무리 고참 부장이라도 임원이 받는 대우와는 딴판이다. 대기업의 경우 상무부터 별도 집무실을 제공한다. 차도 나온다. 상무급은 그랜저와 기아 K7, 한국GM 임팔라, 르노삼성의 SM7 가운데 고를 수 있다. 전무급은 제네시스 혹은 K9, 사장급은 에쿠스가 나온다. 품위 유지를 위해 법인 카드와 골프 회원권도 나온다. 가장 중요한 혜택은 급여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임원의 연봉은 부장의 1.5~2배 수준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상장사 임원(등기임원 기준) 연봉은 일반 직원의 10배 수준이다. 국내 4대 그룹 중에는 삼성의 임원과 일반 직원 연봉 차이가 17.1배로 가장 컸다. 삼성 임원 평균 연봉은 14억9793만원이고, 직원은 8766만원이었다. LG그룹(14.4배), 현대자동차그룹(13.7배), SK그룹(9.7배) 순이었다.

‘고달프지만 만족한다’ 80%

특급 대우를 받지만 스트레스도 많다. 42명의 임원이 회사를 가끔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했다. 상사에게 질책을 받거나,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해했다. 임원들에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항목은 능력이었다. 47명이 ‘업무 능력에 한계를 느낄 때’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임원들에게 행복을 묻는 질문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회사 생활에서 어떤 점이 나아지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물었다. 11명이 ‘연봉’, 17명이 ‘휴식’을 꼽았다. 100명 중 67명이 ‘업무가 원활히 풀리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답했다. 임원 대다 수가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업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설문 참여 임원의 79%가 현재 임원직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만년 부장에 머물겠다고 답한 임원은 100명 중 10명에 그쳤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하늘의 별이 좋다는 의미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nag.co.kr

1321호 (201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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