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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초강수가 묘수될까 자충수될까 

개성공단 폐쇄 놓고 논란... 깊은 수읽기로 대응해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한 다음날인 2월 11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출발한 공단관계자 차량이 파주 자유로 대로변에서 짐을 옮겨 싣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철수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대응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초강수를 두었다고 표현했다. 또한 일부에서는 자충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초강수와 자충수는 바둑에서 온 시사용어다. 이 말들은 언론의 헤드라인에서 비교적 자주 쓰인다. 두 용어의 정확한 의미와 함께 여기에 내포돼 있는 전략적 의미를 알아보자.

초강수는 위험 내포: 바둑에서 초강수는 매우 강력한 수를 말한다. 보통의 정상적인 수를 정수(正手)라고 하며 이보다 강력한 수를 강수라고 한다. 그런데 강수 중에서도 강도가 훨씬 더 높은 수를 초강수(超强手)라고 한다. 초강수는 위력적인 수이기 때문에 성공하면 효과가 크다. 대부분의 초강수는 상대방의 굴복을 강요하는 성격을 띤다. 상대방이 굴복하고 물러선다면 초강수는 정수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초강수에 상대방이 굴복하지 않고 강하게 맞서온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서로의 오기가 충돌하며 복잡하고 어려운 싸움이 벌어지기 쉽다. 쌍방이 기세로 맞서 싸우게 되면 타협의 여지가 줄어들어 판세 자체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초강수는 무리수가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둑고수들은 어떤 때 초강수를 둘까? 초강수는 프로기사의 바둑 성향, 즉 기풍(棋風)과 관련이 있다. 바둑스타일상 초강수를 자주 두는 기사와 잘 두지 않는 기사가 있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이나 최철한 9단 같은 전투형 기사는 강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이세돌은 ‘쎈돌’, 최철한은 ‘독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대마싸움을 즐기는 기사들은 종종 초강수를 구사해 전투바둑으로 이끄는 전략을 쓴다.

그러나 신산(神算) 이창호 9단 같은 영토형, 즉 경제형 기풍을 가진 기사들은 여간해서 초강수 카드를 쓰지 않는다. 불리하더라도 꾹 참고 기다리는 전략을 쓴다. 복잡한 싸움이 벌어지면 앞날이 어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무리한 전략을 쓰지 않는 것이다. 중간적인 기풍의 기사들은 보통 정수를 위주로 한다. 그러나 때로는 강수와 초강수를 동원하기도 한다. 초강수를 쓸 때는 정상적인 수단으로 도저히 승리하기 어렵다고 볼 때다. 이 경우는 무리를 각오하고 초강수를 써서 국면을 뒤집으려고 한다. 초강수의 예를 하나 보기로 하자.


[1도]는 예전에 기성전이란 타이틀전에서 최철한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도전했을 때의 한 판이다. 당시 최고수였던 돌부처 이창호가 백1로 두어갔다. 흑2로 밀면 살려주고 대신 중앙에 두터움을 얻겠다는 뜻이다. [2도]는 이에 대해 최철한 9단은 흑2에 나와 4로 끊는 강수로 대응했다. 독사다운 강력한 수다. 흑도 이 수로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보면 초강수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강수가 나오면 국면은 싸움으로 휘말리게 된다. [3도]에서 온건한 이창호지만 백1에 막고 3으로 두어 강하게 맞선다. 맞바둑에서 물러선다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최철한은 계속해서 흑4~10의 강수를 연발하며 기세로 대응한다. 결국 이 싸움은 결국 백1쪽의 두 점이 잡히는 것으로 끝이 났다. 최철한의 강수가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 예에서 보듯이 초강수는 전투적인 국면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초강수에 상대방이 물러서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를 쓴 것은 지금까지 써온 유화책으로는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금줄을 죄는 강경수단으로 압박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자충수의 의미: 개성공단 폐쇄를 두고 자충수(自充手)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바둑을 둘 줄 몰라도 자충수의 의미는 대충 알 것이다. 자충수는 스스로를 해롭게 하는 수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좌충우돌과 비슷하게 생각해 자충수(自衝手)로 쓰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박치기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해석해도 별문제는 없다. 그러나 바둑에서의 자충수는 스스로 자기 생명줄인 수를 조여 불리하게 만드는 수를 말한다. 자충수는 자신을 위기로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바둑에서는 당연히 금기로 여긴다. 매우 드물게 자충수가 묘수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악수로 평가받는다. 비즈니스나 일상생활에서도 자충수는 피하도록 해야 한다. 개성공단 폐쇄를 자충수로 보는 것은 이 조치가 오히려 우리에게 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 입장을 반영한다. 경제를 중시하는 온건파의 입장으로 보면 이런 우려가 당연할 것이다. 이 폐쇄 조치로 입을 경제적 손실이 수조원이라고 한다. 경제형들은 북한을 서서히 개방으로 이끄는 길을 선호한다. 개성공단 초강수는 이런 가능성을 거의 없애버린 강경책으로 볼 수 있다.

초강수의 수읽기: 개성공단 초강수는 국면전환의 묘수일까, 아니면 우리를 해롭게 하는 자충수일까? 여기에는 중국과의 관계나 북한 체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들어 있어 간단히 결론 내리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한반도를 둘러싼 수읽기는 정말 복잡해 머리가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수읽기에 신중을 기하고 평가도 신중해야 한다. 북한이 압박 정책에 핵무기 포기를 선언한다면 초강수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며 북한의 경제에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개성공단도 재개될 수 있다. 북한이 마음만 바꾼다면 이번의 초강수는 판세를 반전시키는 묘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마음을 바꾸겠느냐는 것이다. 체제 유지를 위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사태는 예측불허가 될 수 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극단적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다. 이 경우 우리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의 최대 후원자인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한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견제구를 우려하는 중국의 입장은 우리와 같지 않다.

개성공단 초강수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미 초강수를 둔 이상 무를 수는 없다. 이 수로부터 벌어질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향후 전개될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바둑판의 복잡한 싸움에서 고수들이 여러 가지 변화를 읽듯 정교한 수읽기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한 수를 두는 데 일본의 어떤 기사는 5시간을 생각한 적이 있다. 전문가 집단의 지혜를 모아 깊은 수읽기를 하고 후속 대책을 세워 이번 전략이 효과를 거두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24호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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