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브렉시트 위험에 휩싸인 EU 

 

왕윤종 SK경영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영국이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 빅토리아 여왕 시대다.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무려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통치한 인물이 바로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하노버 여왕이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녀의 어머니가 독일계였고, 남편 역시 외사촌인 독일계 앨버트 공자였다. 독일인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근면하고 고집이 셌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일했고 지치지 않는 출산력으로 4남 5녀를 두었다. 대부분의 자녀가 유럽의 주요 왕족과 결혼했기에 그녀는 ‘유럽의 할머니’라는 명칭을 얻기도 했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영국의 복지병을 고치기 위해 빅토리아 시대의 자랑스러운 가치관을 빌려 왔다. ‘개인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이다’라는 자조(self-help)의 개념이다. 대중적으로 자조의 정신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사회운동가 겸 저술가인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의 [자조론](1859) 덕분이다. 스마일스는 대영제국이 위대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니 국가가 잘나서가 아니라 국민이 잘나서였다고 했다. 일하지 않고 파업을 일삼고 자신의 기득권만을 지키려고 했던 영국의 강성 노조와 대치했던 대처 총리에게 빅토리아 시대 자조의 가치관이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가 유로존의 위기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재정위기와 채무위기에 휩싸인 좌파 치프라스 정권이 국민을 볼모로 삼은 위험한 도박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지난 2월 1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한 마라톤 협상이 타결됐다. EU 회원국들은 영국의 캐머런 총리가 요구한 협상안을 대부분 수용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영국은 왜 EU 탈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협상을 요구했던 것일까? 그리스와 달리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영국은 상황이 다르다. 그럼에도 영국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이 진통을 겪고 있는 재정위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리스 치프라스 정권이 채권단의 긴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듯이 영국의 캐머런 총리도 브렉시트의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오는 6월 23일 시행하기로 했다.

EU 회원국인 동유럽 국가의 이주민 급증으로 복지 재정 압박이 커짐에 따라 영국은 이주민에 대해서 일정 기간 복지혜택을 보류시킬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초 영국은 복지혜택 유예 기간을 10년으로 요구했는데, EU는 4년으로 타협안을 제시했다. 앞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다수의 영국인들은 EU에 잔류하기보다는 이주민에 대한 복지혜택을 줄이는 것이 영국이 살 길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으로의 이주민은 900만 명에 달한다. 2014년 63만 명의 이주민이 유입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직도 유입세가 지속되고 있다. EU는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넘어 인력 이동이 자유롭다. 영국은 브렉시트가 가져올 부정적 파급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로운 인력 이동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고 있고, 이주민에 대한 복지혜택 탓에 영국 정부의 재정이 어려워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EU의 웅대한 계획에 브렉시트는 그렉시트보다 더 위험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 왕윤종 SK경영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1326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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