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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유럽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온상?] 전쟁 없는 유럽 만드는 EU 심장부 공격 

무슬림 인구 40%인 몰렌베이크, 실업률 높고 불만세력 많아 ... 벨기에 분리주의 영향도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3월 22일(현지시간) 테러가 발생한 브뤼셀 자벤템 국제공항 출국수속장은 폭발로 아수라장이 됐다. / 사진:인스타그램 제공
극단주의 테러의 자살 폭탄 공격이 3월2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의 행정수도인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발생했다. 일상 생활을 하는 불특정 다수라는 ‘소프트 타깃’을 노린 잔혹 범죄다. 시간대부터 시민들이 분주하게 출근하는 오전 8시에서 9시 20분 사이다. 테러가 벌어진 장소도 공항과 지하철이다. 130명이 사망한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가 벌어진 지 131일 만이다. 당시 테러를 주도한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번 테러도 배후에서 부추겼다고 스스로 밝혔다. 서구 문명에 대한 공격임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 공격을 받은 말베이크 지하철역은 EU 집행부와 이사회 건물로부터 각각 500m 정도 떨어져 있어 EU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이번 테러는 EU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다시는 전쟁 없는 유럽을 만들기 위해 국가연합을 시도하고 있는 EU를 비웃듯 IS는 민간인을 타깃으로 하는 무차별 테러에 나선 것이다.

1120만 벨기에 인구 중 64만 명이 무슬림: 벨기에는 국제 사회에 평화롭고 번영하는 유럽의 작은 나라로 알려졌다. 인구 1120만 명(이 중 64만 명이 무슬림)에 영토는 3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철강산업과 기계, 특히 총기 제조업이 발달한 선진국으로 국내총생산(GDP)이 4671억 달러로 세계 30위에 올라 있다. 1인당 GDP는 4만1740달러로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자 나라다. 네덜란드 남부의 가톨릭 지역이 분리돼 1831년 별도 국가로 독립했다.

벨기에는 맥주와 초콜릿, ‘물 프리트’로 불리는 홍합요리와 와플의 나라다. 스머프와 탱탱이라는 유쾌한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수도인 브뤼셀은 초콜릿처럼 달콤한 이미지의 관광도시다. 이곳의 중심지는 그랑플라스(Grand-Place)다. 프랑스어로 큰 광장이라는 뜻으로 유럽 도시의 중심부에 흔히 있는 넓은 광장이다. 이 나라의 또 다른 언어인 네덜란드어로 같은 뜻의 ‘흐로터 마르크트(Grote Markt)’로도 불린다.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국제사회에서도 평화로운 이미지만: 벨기에 하면 이런 평화로운 광경이 떠오른다. 벨기에는 평화와 동의어인 동화 같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독립 후 제국주의 시대에도 중동이나 이슬람권을 지배한 적도 없다. 중동 파병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 나라도 아니다. 따라 나선다고 해도 국가 규모가 작아 별다른 역할을 맡을 수도 없다. 한국전쟁 때 참전한 것이 드문 해외 파병 경험이다. 오히려 1,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침략을 받고 점령돼 프랑스로 진군하는 길목 노릇을 했다.

그런 나라가 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됐을까? 여러 이유가 꼽히지만 우선 국가 자체의 분열적인 경향이 거론된다. 벨기에는 분열적인 나라로 악명 높다. 주민의 57%를 차지하는 북부 블랑드르 지역의 플라밍과 32%를 차지하는 남부 왈로니 지역의 왈롱이 각기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 국가가 언어권별로 사실상 나뉜 상황이다. 정확하게는 네덜란드어권, 프랑스어권, 양쪽 언어를 같이 쓰는 수도 브뤼셀과 주변의 수도권, 그리고 동부 독일 접경지대의 독일어 사용 소수민족 지역으로 나뉜다. 문제는 네덜란드어권과 프랑스어권 주민의 갈등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왈로니와 플랑드르는 서로 아예 다른 나라처럼 살고 있다. 이들은 서로 구독하는 신문, 보는 방송, 다니는 학교도 모두 따로다. 언어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체성이다. 벨기에라는 국가 정체성보다 살고 있는 지역에 따른 정체성이 더욱 강하다는 편이다. 1950년대에는 언어 권별로 심각한 갈등을 벌여 같은 루뱅대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대학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대학으로 나뉘기도 했다. 서로 언어가 다른 주민들은 한 지역에 살아도 서로 대화도 하지 않으며 섞이지도 않는다. 서로 싸우지는 않지만 함께 하지도 않는다는 냉정한 분위기다. 언어가 다르다고 주민끼리 물과 기름처럼 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민자들은 더욱 소외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주민 40%가 무슬림인 몰렌베이크, 실업률 30%: 이를 잘 보여주는 지역이 브뤼셀 중심부 그랑플라스에서 5km쯤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는 동화적인 광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지역이 있다. 공식 명칭이 몰렌베이크생장이지만 주로 몰렌베이크로만 불리는 지역이다. 모로코 이민 후손들로 우글거리는 이 지역은 실업률이 높고 사회 불만자로 가득하다. 벨기에 평균 실업률이 9%인 데 비해 몰렌베이크의 실업률은 30%에 달한다. 몰락해 가는 산업지역이다. 낙서로 가득한 벽 사이에서 아이들은 축구를 하거나 뛰어다니면서 논다. 지난 40년 간 주로 모로코 출신의 무슬림 공동체가 성장한 곳이다. 현재 인구 10만 명의 이 도시에서 39.3%가 무슬림 이민자다. 벨기에 수도권에서는 인구의 49.3%가 무슬림인 생조스탕노드처럼 상당한 무슬림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이 적지 않다. 몰렌베이크도 그중 한 곳일 뿐이다.


▎파리 에펠탑이 테러가 발생한 벨기에의 국기(빨강·노랑·검정) 3색 조명을 3월 22일 밝혔다.
문제는 이번 테러는 물론 지난해 파리 테러에 나서거나 관계있는 인물의 상당수가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무슬림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점이다. 파리 테러와 관련해 브라힘 압데슬람과 그의 동생인 살라 압데슬람, 공범인 모하메드 아브리니가와 테러 기획자인 압델하미드 아바우드가 바로 이 몰렌베르크에서 성장하거나 살았다. 더구나 지난해 파리의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서 기자들을 학살하고 코셔 식료품점(유대인이 먹을 수 있도록 성서가 허락한 종류의 음식만 파는 가게)를 공격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범도 이곳 출신이다.

벨기에인 450명이 외국에서 이슬람 전사로: 영국 BBC방송은 지난 3월 16일 약 450명의 벨기에 국적자가 현재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이슬람 전사로 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합류하기 전 되돌아온 포기자와 현지에서 사망한 사람, 전사로 싸우다 귀국한 사람, 그리고 여전히 전쟁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을 모두 합친 숫자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인구 대비 아주 높은 비율이다. 이 숫자는 벨기에의 역사학자 아라비스크 피터 반 오스타이엔이 추정한 것이다. 벨기에 공안당국의 공식 추정치는 300~350명 정도다. 이 숫자는 인구 100만 명 당 30명이 지하드를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300명이 지하드에 참가해 인구 100만 당 31명이 참전하고 있는 스웨덴만이 이와 비슷한 비율이다. 아랍계 이민자가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선 약 1100명 정도가 지하드에 참가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인구 100만 명 당 16명에 해당한다.

벨기에에서 이렇게 높은 비율의 지하드 참가자가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 급진 이슬람 단체인 샤리아포벨기에(Shariah4 Belgium: 영어식으로 이해하면 벨기에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다스리자는 이야기다)라는 단체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BBC는 분석했다. 이 단체는 벨기에 내 무슬림 청년을 대상으로 전사를 모집하고 시리아나 이라크행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안 당국은 추정한다. 서방 정보기관이 파악한 벨기에 태생의 무슬림 지하드 전사의 상당수는 이 단체를 통해 중동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동에 이슬람 전사를 ‘송출’하는 지하드 네트워크는 우수죽순처럼 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다른 단체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리주의 사회갈등 심한 벨기에에서 무슬림도 영향: 독특한 것은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도 벨기에의 이런 분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샤리아포벨기에’는 벨기에 북부의 네덜란드어 사용지역인 플랑드르 지역과 두 언어가 모두 사용되는 수도 브뤼셀 및 주변 수도권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왈로니에서는 제대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보 당국의 평가다. 이슬람 극단주의도 벨기에 분리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올라온 브뤼셀 테러 추도 영상. 소총에 오줌 누는 벨기에 명물 오줌싸개 소년 동상. / 사진:트위터 제공
벨기에 국적의 이슬람 전사는 대부분 모로코계 부모 사이에서 벨기에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후손들이다. 독특한 점은 이들의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대단히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사회적인 박탈감이나 어린 시절부터 범죄자나 문제아였기 때문에 이들이 급진화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BBC는 지적했다. 이들 중 무슬림을 열렬하게 신봉하는 사람의 숫자는 의외로 적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인종적으로 혼혈 가정에서 자랐거나 외국에서 입양됐다. 정체성 문제가 있었을 수 있고, 이 때문에 급진적으로 이슬람에 빠졌을 수도 있다.

벨기에에서 일을 도모하는 이슬람 성전주의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외국에서 지하드나 테러를 벌이는 벨기에 국적자는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 9·11테러가 나기 직전인 2001년 9월 9일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판지실 계곡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탈레반 정권에 저항하는 운동을 주도하던 아메드 샤 마수드를 암살한 2인조도 몰렌베이크 출신의 모로코 이민자 후손이다. 이들은 기자로 위장해 인터뷰를 한다고 그를 만났다가 카메라 배터리에 폭탄을 숨기고 접근해 자폭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나중에 그 가족에게 돈과 위로 편지를 보냈을 정도로 알카에다의 핵심이었다.

벨기에 모로코인이 주축을 이룬 이슬람 모로코인 전사(GICM)라는 조직은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 출신으로 무슬림으로 개종한 뮈리엘 데고크는 2005년 이라크에서 자살 공격을 수행해 최초의 백인 여성 자살공격자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모바일와 SNS가 발달하면서 과거 위력을 떨쳤던 극단주의 이슬람 조직은 더 이상 서구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 정보당국의 평가다.

그럼에도 모바일 시대에서 과거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슬람 전사를 모집하던 시대의 주역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GICM 군사 조직의 지도자로 2006년 벨기에에서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던 압델카데르 하키미는 석방됐다가 최근 시리아에서 목격됐다. 당시 그를 변호했던 변호사 중의 한 명인 라시드 이바는 샤리아포벨기에에서 보낸 벨기에인 이슬람 전사들과 함께 시리아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벨기에에선 단순 이슬람 관련자였던 이들이 외국에서는 무기를 들고 살상행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주민 일부 테러 벌였다고 ‘테러의 온상’이라니?: 파리 테러 주동자의 상당수가 이곳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몰렌베이크는 이미 지난해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벨기에 경찰 보안부대는 이 지역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여러 차례 기습에 나섰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지하드 타운으로 알려졌고, 무슬림 해방구로 오해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이런 시각에 대해 편견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브뤼셀의 한 교외 지역인 이곳은 30개국 이상에서 모인 다양한 출신의 주민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사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파리 테러 이후 무장 경찰이 이 지역에 들이닥치기 전까지 이런 일은 전혀 없었다.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특정 테러범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시사만평주간지 샤를리에브도가 테러범의 공격을 받은 직후에도 말렌베이크에는 용의자와 관련자를 체포하려는 경찰의 습격이 있었다. 극단주의자들과 연계된 인물이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벨기에와 프랑스를 잇는 탈레스 고속열차에서 테러를 벌이려고 무기를 들고 승차했다가 다른 승객들에 의해 제압된 테러 미수범도 이 지역에 있는 여동생의 집에서 한동안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브뤼셀의 유대인 박물관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도 이 지역에서 상당 기간 살았다는 것이 로이터통신의 보도다.

벨기에 정보당국에 따르면 몰렌베이크는 수도 브뤼셀을 둘러싸고 있는 수도권 지역에서도 특이한 곳이다. 9만~1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이민자 비율이 높으며 이 중에서도 무슬림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대략 절반이 무슬림으로 추정되며, 어떤 구역은 주민의 70~80%가 무슬림이다. 몰렌베이크는 다문화 지역임과 동시에 고질적인 벨기에의 분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벨기에의 장 잠봉 내무장관은 벨기에를 떠나 극단적인 이슬람 집단에 합류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말렌베이크 지역 출신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극단주의자의 비율이 줄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국의 감시와 만류로 시리아로 가는 벨기에 국적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가는 사람의 상당수는 여전히 말렌베이크 출신을 비롯한 주변 브뤼셀 수도권 출신이라는 설명이다. 주민들은 이 지역이 극단주의의 온상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는 게 BBC방송의 보도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박스기사] 프렌치 프라이 원조는? - 애초 벨기에의 발명품

벨기에는 작은 나라지만 개성으로 가득하다. 대표적인 것이 요리다. 전 세계적으로 프렌치 프라이로 알려진 감자튀김은 벨기에가 원조로 알려졌다. 벨기에에서 처음 만들어 먹던 것이 이웃 프랑스로 퍼졌는데 이를 본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이를 들여가면서 프랑스가 원조일 줄 알고 ‘프렌치 프라이’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자국에서 처음 개발된 것이라고 주장해 원조 논쟁이 뜨겁다. 9·11테러 이후 프랑스가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에 동참을 거부하자 미국 의회는 구내 식당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추방해 이에 ‘보복’했다. 그러자 일부 프랑스인들은 “그건 프랑스 음식이 아니고 벨기에 음식이라네”라면서 이 조치를 조롱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온 관광객들의 필수적으로 맛보는 요리가 된 ‘홍합요리과 감자튀김’도 벨기에 요리라는 것이 정설이다. 홍합에 토마토 소스나 치즈 소스 등 다양한 재료를 각각 가해 요리한 다음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요리다. 프랑스에서 조사한 결과 오리 요리에 이어 프랑스인이 가장 선호하는 요리에 뽑혔다. 프랑스어로 물 프리트(Moules-frites)라고 하는 음식인데 물은 홍합이고 프리트는 감자튀김을 뜻한다. 프랑스어로 감자튀김은 프리트 드 폼 드 테르(Frites de Pomme de Terre)라고 부르는데 감자라는 뜻의 폼 드 테르(Pomme de Tere)와 튀긴 음식이라는 뜻의 프리트가 합쳐진 것이다. 이를 줄여 프리트라고 부른다. 이젠 프리트라고 하면 다른 튀긴 음식이 아닌 감자튀김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런 개성있는 나라가 테러의 온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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