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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드 | 높은 저축률 활용 고민하는 중국 정부] 증시로 ‘왕서방의 돈’ 몰아간다 

자본유출·환율변동 위험 덜면서 기업 부채 해결할 묘수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summary | 당국이 자본시장 활성화에 나서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기업들의 무질서한 디폴트를 막기 위해선 이자부담을 더 줄여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예금을 빠져 나온 돈이 향할 수 있는 투자처가 없다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는 ‘저축에서 투자로’를 슬로건으로 다시 한번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할 것이다.


▎사진:중앙포토
“하드랜딩(경착륙) 위험요? 상대적으로 풍부한 정책수단과 높은 수준의 저축률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매우 작죠.” “기업들의 부실 때문에 은행 시스템 리스크가 우려된다고요? 높은 저축률이 완충역할을 할 겁니다.” 지난 2월 상하이 주요 20개국(G20) 회의와 전인대 기간 중 리커창 총리와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는 중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확신하면서 어김없이 인민들의 높은 저축률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이는 향후 난관 타개에 있어 ‘왕서방’의 저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임을 시사한다.

저축에서 소비로: 중국의 저축률이 얼마나 높길래 저러는 걸까. 실제로 상당하다. 잠시 그래프를 보자. 세계은행(World Bank)의 최근 통계인데, 2013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저축률(GDP 대비 가계 정부 기업의 총저축 비율)은 50%에 달한다. 쿠웨이트와 버뮤다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한국(34%)은 물론이고 독일(26%)과 일본(21%), 미국(18%)을 크게 웃돈다. 작년 말을 기준으로는 46%대로 다소 낮아진 것으로 추산되지만 여전히 서방의 주요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중국 일반 가정의 경우 매년 가처분 소득의 30%가량을 저축하고 있다.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가계는 어떨까. 가처분 소득의 5~6%만 저축할 뿐 나머지는 모두 소비한다.


중국의 저축률은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지난 20년 간의 초고속 성장 덕분이기도 하지만, 열악한 노후보장 시스템이 근본 원인이다. 사회보장제도 발전이 뒤쳐진 탓에 믿을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저축 밖에 없다는 신념이 강하다. 여기에다 “1990년대 후반 진행된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 해고와 경쟁시스템 도입이 인민들의 저축 욕구를 한층 강화시켰다”는 분석도 더해진다(2015년 노트르담 아시안 스터디의 넬슨 마크 교수).

과도한 저축성향이 바뀌지 않고서는 소비 중심의 성장모델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중국의 중산층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이들의 소비욕구가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잠재 소비군의 성장 못지 않게, 중국의 인구구조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것을 감안하면 일본식 소비절벽의 위험 또한 잉태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당국도 필요 대책을 마련 중이다. 노후 불안으로 저축성향이 커지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지방의 의료보장 혜택을 확대하고 연금시장 발전 방안도 마련 중이다. 3월 21일 인민은행은 성명서 하나를 내놨다. 금융회사들에게 고령층의 노후 연금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금융상품을 개발하라고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정부부처와 공동으로 연금 서비스 발전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노후 설계를 위해 한 나라의 연금 시스템은 3개의 기둥(three Pillar)을 필요로 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그리고 금융회사들이 판매하는 사적연금(개인연금) 서비스다. 인민은행의 이번 발표는 개인연금 서비스 부문의 강화를 의미한다.

인민은행은 우선적으로 만기가 길고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연금형 저축상품의 개발을 언급했다. 국공채를 중심으로 고배당형 주식이 포함된 포트폴리오가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개인연금 시장이 확대돼 금융사들의 수익기반이 넓어질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개인연금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방정부의 지방채 소화에 도움이 될 것이고, 산업 구조조정 비용과 복지재원 확대로 증가할 국채 물량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수급기반이 될 것이다.

저축에서 투자로: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경제포럼에서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 총재는 기업들의 부채 수준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높은 수준의 부채는 거시경제 리스크로 향하기 쉽다고도 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GDP의 160%에 달하는 기업 부채가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임은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저우 총재의 경고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노정한다. ‘과도한 기업 부채를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은 탄탄한 자본시장을 육성, 기업들의 에쿼티 파이낸싱(Equity financing: 주식을 통한 자본조달) 기회를 늘려 대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중국 경제를 관찰해온 이들에겐 저우 총재가 제시한 이 방안 역시 딱히 새롭지는 않다. 지난 2011년부터 당국이 줄기차게 제시했던 금융정책 방향이다. 작년 짧고 강렬했던 증시의 ‘붐-버블-버스트’를 거치며 ‘쉽지는 않구나’라고 확인도 했다. 그럼에도 저우 총재가 재차 주식시장과 에쿼티 파이낸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본토 기업의 부채 문제를 해소하는 데 포기할 수 없는 근본 대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은 왜 이렇게 은행 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일까. 저우 총재는 “가계의 금융자산 가운데 저축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여전히 주식투자 인구가 너무 적다는 이야기다. 중국 민간의 잉여자금이 은행 저축으로 집중된 결과 자금 순환의 고리가 ‘민간→은행 저축→은행 대출→기업 부채’ 쪽으로만 계속 비대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목에서 당국이 기업 부실 문제와 은행 시스템 위험을 해소하는 데 왕서방의 저축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어하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사실 그간 당국은 일관된 이야기를 해왔다. “직접금융(주식과 회사채 등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을 발전시켜야 한다” “다층적 자본시장 발전이 공급부문 개혁을 뒷받침 할 것이다”….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맥락이다. 이를 감안하면, 당 지도부는 ‘저축에서 투자로’를 슬로건으로 다시 한번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할 것이다. 이미 증권 업계의 중앙은행으로 통하는 중국증권금융이 주식융자 업무를 재개했고, 증권사들에게 공급하는 금리도 내렸다. 손쉽게 그리고 싼 값에 증시 자금을 대주겠다는 신호다. 중장기 방안으로 상장사의 배당증액 등 주주환원 확대조치도 마련할 계획이다.

풍선효과와 연착륙: 사실 당국이 자본시장 활성화에 나서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기업들의 무질서한 디폴트를 막기 위해선 이자부담을 더 줄여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예금을 빠져 나온 돈이 향할 수 있는 투자처가 없다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가계 투자소득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해외 투자를 대폭 허용할 수도 있다. 다만 ‘자본유출과 위안화 환율’의 불안감이 아직은 상존해 있다. 결국 국내에서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게 여러모로 마음이 놓인다. 당국으로선 상장형 M&A펀드와 인프라 펀드, 신성장육성 펀드 등 다양한 투자상품을 개발해 돈을 자본시장으로 유인함과 동시에 성장동력을 확충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지난해 주식으로 호되게 당한 개인들의 자금은 대도시(제일선 도시) 주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6개월 들불처럼 타오른 선전과 상하이 주택시장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선 주택공급 확대 못지 않게 이들 자금을 다른 쪽으로 유인할 필요가 있다. 당국으로선 선전증시와 상하이 증시로 유도하는 게 그럴싸할 것이다. 성공하면 ‘대도시 주택버블 진정’과 ‘기업들의 에쿼티 파이낸싱 기회 확대’라는 두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올 여름 MSCI 이머징지수 편입 심사를 앞두고 본토증시를 어느 정도 살려놓을 필요도 생겼다.

-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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