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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투자로 주목받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백화점 저성장 시대에 과감한 베팅 

6대 신규 프로젝트로 업계 2위 노려 ... 외환위기 때 공격적 경영 펼친 모친과 닮아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summary | 정유경 총괄사장은 백화점 저성장 시대에 백화점 투자를 늘리는 ‘역발상’ 전략을 선택했다. 올해 말까지 6개의 신규 프로젝트(강남점 증축, 부산 센텀시티몰 오픈, 시내면세점 오픈, 김해점·하남점·대구점 오픈)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마무리하면 신세계백화점이 연내 업계 2위로 올라설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정용진 부회장과의 ‘남매경영’ 경쟁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연초부터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 한 해 그룹 사상 최대 규모인 4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주요 투자처는 복합쇼핑몰과 온라인 강화 사업, 백화점 신규 오픈 등이다. 돈뿐만 아니라 사람도 화제가 됐다. 이명희(73)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인 정유경(44) 총괄사장이 2009년 말 부사장에 오른 후 6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룹에는 이제까지 없던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 이란 조직도 만들어졌다. 이마트 부문은 정용진(48) 신세계 부회장이, 백화점 부문은 정 총괄사장이 이끄는 구조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신세계가 ‘3세 경영’ 체제를 갖췄다고 본다. 무엇보다 정 총괄 사장이 처음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남매경영’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세계 내부에선 “남매경영까지는 아니다”란 말도 나온다. 오빠인 정용진 부회장이 맡은 이마트 부문의 매출 규모(11조 원)가 백화점 부문(2조5000억원)보다 훨씬 크고, 대내외적인 존재감도 정 부회장이 크다는 뜻에서다. 하지만 적어도 정 총괄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의 양대 축을 이루는 사업 부문을 총괄하게 됐다는 점에서 경영자로서 의미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단적으로 신세계는 올해부터 사장단 회의를 따로 하고 있다. 공식적인 이유는 부문별로 조직이 나뉘었기 때문이지만, 남매 간에 심상치 않은 경쟁 기류가 느껴진다는 전언이다.

정용진 부회장과 ‘남매경영’ 시험대 올라


정유경 총괄사장에게는 ‘은둔의 경영자’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언행이 화제가 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 공개되는 사진도 늘 같은 사진 한 장뿐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마트 상품 홍보는 물론 사적인 모습까지 드러내는 것과 대조된다. 재계에선 정 총괄사장이 올해도 이 같은 행보를 이어갈지 주목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수의 신세계 관계자에 따르면 정 총괄사장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을 철저한 롤 모델로 삼고 있다. 경영 스타일은 물론, 몸 가짐과 심지어 머리 스타일, 옷차림까지 이 회장을 배우고 따르려 한다. 이명희 회장은 아버지이자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각별히 아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경영과 관련해서는 자신을 철저하게 숨겨왔다. 소비자 접점이 많은 유통기업의 특성상 오너 경영인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 총괄사장 역시 ‘오너 경영인은 큰 그림을 그리고, 실무적인 경영은 한 발 물러나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한다’는 어머니의 경영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실제 정 총괄사장은 최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2월)과 부산 센텀시티몰(3월) 오픈 행사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는 신규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느라 고생한 임직원들이 주인공이 돼야 할 자리”라며 “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정 총괄사장의 강점은 해외 패션 트렌드에 대한 전문성과 업계를 한 두 발 앞서가는 안목이다. 여기에는 한국과 미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학력과 1996년부터 20년에 걸쳐 호텔·백화점에서 쌓은 경영수업이 밑거름이 됐다. 일례로 정 총괄사장은 백화점에 고급 아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는 “과거 소수 상류층에 국한됐던 문화가 이제는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시대”라며 “모든 고객이 직·간접적으로 예술 작품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아트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예술가’라 불리는 제프 쿤스의 300억원 대 작품인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를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전시했고, 2014년에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거장인 벤 아이네가 연출한 ‘러브 잇(LOVE IT)’의 이미지를 상품·광고·매장·쇼핑백 등에 활용했다. 지난해에는 ‘스타워즈 에피소드7’ 테마에 맞춰 신세계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패션 잡화 28개를 내놓았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인기 브랜드를 한 곳에 모은 편집매장 ‘분더샵’은 정 총괄사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프로젝트다.

그는 2014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식품관을 재단장했을 때 한 달에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던 스타벅스 매장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 자리에 떡과 한과를 파는 ‘떡방’을 열었다. 명동 상권인 본점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떡방·술방·장방 등 한국 전통 먹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국적인 식재료와 바른 먹거리, 전통 음식을 중시하는 정 총괄사장의 생각은 서울 청담동과 목동, 부산 마린시티에 문을 연 ‘SSG 푸드마켓’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5월에 서울시내 면세점 오픈

정 총괄사장은 올해 지금까지 쌓은 경영역량을 ‘2016년 6대 프로젝트’에 쏟아부을 방침이다. 백화점 업계가 2년 연속 역성장의 늪에 빠진 가운데 신세계백화점을 도약시킬 핵심 성장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총괄사장은 백화점 저성장 시대에 백화점 투자를 늘리는 ‘역발상’ 전략을 선택했다. 이명희 회장이 외환위기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1990년대 후반에 공격적인 투자를 펼치며 이마트의 성공을 이끌어냈듯이 미래 고객 선점을 위해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말까지 6개의 신규 프로젝트(강남점 증축, 부산 센텀시티몰 오픈, 시내면세점 오픈, 김해점·하남점·대구점 오픈)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지난 2월 첫 스타트를 끊은 ‘강신(강남 신세계백화점)’은 정 총괄사장이 각별한 공을 들였다. 그는 ‘미래 소비 트렌드 변화를 파악해 구체화시키라’고 주문했고 2년이 넘는 실무진의 노력 끝에 업계 최초로 ‘편집화된 전문관’을 선보였다. 이는 A부터 Z까지 상품을 한 곳에 모아 원스톱 체험쇼핑을 할 수 있는 ‘전문관’ 개념에 브랜드가 아닌 품목 중심의 ‘편집매장’의 구성을 접목한 형태다. 제품을 소유하는 행위보다 둘러보고 고르는 과정에서 즐거운 쇼핑 경험을 하고 싶어하는 선진국형 소비행태를 극대화했다.

오는 5월 말에는 서울시내 면세점을 오픈한다. 본점 신관 8~12층에 걸쳐 영업면적 1만3884㎡(약 4200평) 규모로 선보이는 면세점은 ‘면세점-백화점-남대문 전통시장’을 관광벨트로 잇는 가교로 키울 방침이다. 김해여객터미널에 백화점과 이마트의 복합개발로 지을 김해점(6월), 축구장 70개 크기의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퍼스트 하남’에 들어설 하남점(9월), 지역 랜드마크로 만들 대구점(12월)까지 6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신세계백화점이 연내 업계 2위로 올라설 가능성도 있다.

-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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