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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업계에 부는 ‘메리츠웨이’ 바람] 자율·성과주의 카드로 깜짝 놀랄 호실적 

메리츠증권·메리츠운용 약진... 단기 성과 집착해 장기 안정성 해칠 우려도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존 리 메리츠운용 대표.(좌) / 최희문 메리츠증권 대표. / 사진:중앙포토
‘신한웨이(Way)’라는 단어가 있다. ‘안정적 수익창출’과 ‘임직원의 주인정신’으로 대표되는 신한은행의 기업문화를 상찬하는 말이다. 업계 후발주자였던 신한은행은 ‘신한웨이’를 무기로 급성장해 지금은 모든 은행이 부러워하는 추격의 대상이 됐다.

최근 메리츠금융지주를 보면 ‘메리츠웨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메리츠종금증권(이하 메리츠증권)과 메리츠자산운용(이하 메리츠운용)이 한창 때의 신한은행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차별화한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해 증권사 실적이 최근 공개됐을 때 업계는 깜짝 놀랐다. 중소형 업체인 메리츠증권이 순이익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개별기준 순이익 2969억원을 기록하면서 대우증권(2858억원)·한국투자증권(2660억원)·삼성증권(2575억원)·현대증권(2204억원) 등 전통의 대형 강자를 모두 따돌렸다. 기업의 건전성과 성장가능성을 짐작케하는 핵심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3년 연속 1위다. 지난해 ROE는 21.3%로 우량 제조 업체에 필적한다. 증권업에서는 기록하기 힘든 수치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말 현재 자기자본이 1조7186억원으로, 3조~4조원대인 선두권 업체의 절반 수준이다.

메리츠운용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4조4000억원이 순유출됐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이 업체는 1조8000억원을 끌어들였다. 메리츠코리아펀드 단 한 개가 지난해 빨아들인 시중자금이 1조3000억원을 넘었다. 2위 업체의 자금 순유입액이 3000억원 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성공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1년 간 수익률도 21%에 달해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2013년 수익률이 -3.47%로 업계 꼴찌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회장님도 한 달 전에 식사 약속해야”


성공하는 기업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두 회사의 성공 요인으로는 먼저 철저한 자율권 부여가 꼽힌다. 메리츠운용의 펀드매니저들은 ‘시간’과 ‘윗선’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일한다. 그룹 차원에서의 간섭이 거의 없다는 게 존 리 메리츠운용 대표의 설명이다. 다음은 리 대표가 들려준 일화다. “회사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룹 회장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조정호) 회장님이 펀드매니저들과 식사 한번 하고 싶어 하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식사를 하고 싶으면 최소한 한 달 전에 연락해서 날을 잡으시라고 전해달라’고 했죠. 그랬는데도 아무런 뒷말이 없었어요. 회장님이 수긍하고 받아들이신 거죠. 그 정도로 자율권이 보장돼 있습니다.” 존 리 대표는 “다른 기업이라면 3개월만 실적이 나오지 않아도 위에서 쪼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 펀드매니저가 소신껏 일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수익률도 더 나빠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철저한 실적주의가 더해진다. 메리츠증권은 연봉계약직(1044명) 비율이 76.4%로 정규직(23.5%)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이 회사의 연봉계약직을 일반적인 비정규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회사의 연봉계약직 직원은 고정급(평균 월 150만원 수준)을 적게 받는 대신 자신이 불린 매출의 50%를 가져간다. 성과급의 한도도 없다. 1억원을 늘리면 5000만원을 가져가고, 10억원을 늘리면 5억원을 가져간다. 실제 지난해 679명의 영업직 중 상위 10명은 성과급으로만 5억원 정도씩 챙겼다. 이 회사의 성과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무실 크기다. 임원·부장·차장·과장의 순서로 크기가 작아지는 일반 회사의 사무실과 달리 이 업체는 성과에 따라 대·중·소로 나뉜 개인 사무실을 쓴다. 차장급이 부장보다 더 큰 사무실을 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자율성과 성과주의가 정착하면서 주인의식이 형성됐다. 주입식 주인의식이 아니다.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성과를 내면 내는 만큼 받아가는 구조가 정착되다 보니 내가 잘하면 내가 더 많이 가져간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최희문 메리츠증권 대표는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성과에 대한 보상 제도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직장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만큼 보상하고 있다. 임직원 스스로가 주주나 파트너라는 마음을 갖고 ‘주체’가 돼 일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회사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인재 욕심은 유명하다. 지난해 주총에서 “금융은 사람이 전부다. 일류 인재를 끊임없이 찾고 또 찾겠다. 자본이나 자산 규모에 비해 넘칠 정도로 인재를 확보하겠다. 이렇게 확보한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해 자연스럽게 사업 영토가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를 속도감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요즘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메리츠에서 일하겠다며 먼저 문을 두드리는 인재들이 넘쳐날 정도다.

메리츠에는 남들과 다른 차별화 포인트도 있다. 메리츠운용의 펀드는 메리츠코리아펀드·메리츠코리아스몰캡펀드·메리츠 글로벌헬스케어펀드의 3개가 전부다. 리 대표가 취임했던 201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는 메리츠코리아펀드 단 한 개만 운용했다. 수십 개에서 100개를 넘나드는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다른 자산운용사들과는 다른 행보다. 리 대표는 “펀드를 많이 만들면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 펀드 운용액이 너무 많아도 관리하기가 어렵다. 우리 펀드는 운용액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일시적으로 신규 가입을 제한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은 다른 증권사처럼 중개업이나 파생상품 판매에 매달리지 않는다. 지난해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에 열을 올렸을 때도 시류를 따르지 않았다. 올해 이익이 껑충 뛴 데는 ELS 등 파생상품 손실이 없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그 대신 종합금융업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메리츠증권은 회사명에 ‘종금’이 들어가는 유일한 업체다. 다른 업체들과 달리 기업금융이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특히 부동산 금융에 주력했고 부동산 활황 덕택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두 회사는 대표들이 ‘미국물’을 오래 먹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격식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한다. 리 대표는 취임 이후 보고서와 보고 체계를 없앴다. 말단 사원도 보고 체계를 거치지 않고 상무인 총괄매니저에게 “이 주식 삽시다”라고 바로 제안할 수 있게 됐다. 메리츠증권 직원들은 정장 대신 캐주얼을 입고 다닌다. 6시 정시 퇴근을 못하는 직원이 있으면 부서 수장에게 불이익을 주는 ‘칼퇴근’제도 시행했다. 유연한 조직문화 구축을 위한 조치들이다.

‘미국물’ 오래 먹은 CEO들 격식보다 효율 강조

물론 이들이 영원한 승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금융투자업계는 사이클이 짧은 동네다. 당장 메리츠운용의 경우 수익률이 작년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파격적인 성과주의가 장기적인 회사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전체 수익에서 부동산 금융의 비중이 커서 앞으로 부동산 거래가 줄어들면 수익도 함께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평가(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이들이 업계에 긍정적 의미의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한 경쟁 업체 관계자는 “이러니저러니 말은 많지만 메리츠증권과 운용이 참신한 철학과 새로운 전략으로 업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며 “이른바 ‘메리츠웨이’라는 말을 붙여도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1329호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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