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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이세돌의 패배에서 배우는 3가지 교훈 

고수의 품격 지키기, 지피지기 전략, 미래 수읽기 유념해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다. 특히 세기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를 거둬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인간 지성의 마지막 보루인 바둑에서마저 무너졌다고 통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만간 컴퓨터가 사람을 조종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사람들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싸움은 기업 경영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이번의 대결이 남긴 비즈니스 교훈을 살펴보기로 한다.

패하고도 영웅이 되다: 이번 대결에서 인간 대표로 나선 이세돌 9단은 5대0으로 이기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컴퓨터가 감히 인간의 복잡미묘한 지적 능력을 당해낼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의 반영이었다. 필자도 매스컴에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면서 ‘쎈돌(이세돌의 별명)’의 4대1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결과는 1승4패였다. 보통 승부의 세계에서는 패자가 설 자리는 없으며 승자에게 환호와 영광이 돌아간다. 그래서 ‘패장은 유구무언’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세돌은 크게 패하고도 영웅이 되었다.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서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스타 송중기를 제치고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무엇이 패장 이세돌을 영웅으로 만든 것일까? 주요한 이유는 쎈돌이 인류의 대표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번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꺾어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고뇌하는 이세돌을 응원했다. 만일 기업이 이처럼 대중의 뜨거운 성원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웅기업’이 되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 기업은 엄청난 발전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세돌이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수의 품격’이다. 알파고에게 3패를 당해 쎈돌이 참담한 심경에 젖어 있던 날 MBC뉴스에서는 이런 뉴스를 내보냈다. ‘패배에도 빛난 인간 이세돌, AI는 못 따라갈 품격’. 승패와 관계없이 이세돌은 고수다운 품격을 보여주어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패배는 했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앞으로의 희망을 말하는 이 9단. 바둑판에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담담하게 수긍하는 자세에서 기계는 가질 수 없는 고수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기업도 이와 같은 칭찬을 받는다면 어떨까.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며 희망을 만들어내는 정신, 실패의 원인을 복기하며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 회사는 품격 있는 고수기업으로 대접받고 고객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지피지기에 실패: 스포츠경기 면에서 보면 이번 대결은 바둑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세돌 9단이 좀 더 잘했더라면 결과는 3대0 정도로 인간 승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9단은 처음 세 판에서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알파고에게 이끌려 다녔다. 한마디로 전략적 실패였다. 첫 판에서 이세돌 9단은 난생 처음 보는 포석을 폈다.


[1도]에서 흑7로 둔 수는 지금까지 프로의 기보에서는 보지 못한 수다. 아마도 이 9단은 알파고에게 낯선 수를 선보여 헛갈리게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알파고가 데이터에 없는 수를 보면 당황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착오였다. 알파고는 오히려 변칙포석을 환영하듯 척척 응수해 냈다. 백18로 흑돌을 가르고 백22로 공격하여 재미있는 진행이 되었다. [2도]에서 이세돌 9단은 흑1에 붙여 알파고의 능력을 테스트했다. 쎈돌다운 강렬한 수다. 이 수에 알파고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알파고의 진면목을 모르는 이세돌은 알파고가 자신의 강수에 어떻게 응수하는지 궁금했다. 이 수에 알파고는 가차없이 백4·6으로 끊어왔다. 전투의 화신 이세돌을 뺨치는 강력한 공격수다. 이렇게 되고 보니 흑1은 곤경을 자초한 무리수로 변했다. 이 장면에서 프로기사들은 이세돌의 패배를 직감했다. [3도]는 알파고가 2승을 거둔 뒤 이세돌 9단이 흑으로 둔 3국이다. 중국식 포진에서 백12·14로 움직일 때 이 9단은 난폭하게 흑15로 백돌을 끊어갔다. 자신의 주무기인 전투력을 발휘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백16으로 자기 집을 돌파당하며 공격한 이 작전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 세 장면을 보면 이세돌의 전략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알파고가 강펀치와 변화구에 약할 것으로 보았으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이러한 전략 실패는 알파고에 대해 잘 모르고 시합을 한 데 기인한다. 사실 이 9단은 알파고가 어떻게 바둑기술을 구사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알파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는데, 이세돌 9단은 상대방에 대해 알지 못하고 싸움을 한 셈이다. 쎈돌이 사전에 알파고에 대해 잘 알았더라면 이번 승부는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다. 기업 경영의 입장에서는 경쟁자를 잘 알지 못하고 도전을 하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강점이나 약점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미래 수읽기: 알파고 소식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면서 우리가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머나먼 미래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인간생활의 많은 영역으로 로봇이 진격해 오고 있는데 먼나라 일처럼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청동기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데 석기 시대라는 관념에 젖어 있는 것과 같다. 청동기 시대가 왔을 때 농사가 발달하며 평등했던 부족사회가 무너졌다. 사유재산이 축적되고 계급이 생겨났다. 이와 비슷하게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일자리를 잃게 될 직종이 엄청나게 많아질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오고 있는데 우리는 왜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일까? 당장 돈이 되는 아이템만 찾는 풍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한국인은 현세주의적 성향이 강해 미래를 멀리 내다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미래를 읽고 장차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상품을 보는 데 익숙지 않다.

구글 등 선진국의 기업들이 미래의 먹거리를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건설이나 휴대폰과 같은 현재 산업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겠다. 뒤늦게 우리 정부에서도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문가 회의를 소집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런 뒷북 마케팅보다 미리 미래의 수읽기를 하고 남보다 앞서가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책에 있어서도 좀 더 폭넓은 식견과 수읽기가 필요하다. 이번 대결은 한국의 국가적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3000년 역사를 가진 동양의 신비한 게임이자 문화인 바둑의 가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한국은 국가적 자랑인 바둑을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더 수지맞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30호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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