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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지점장 출신 4인의 인생 조언] 은행원 인맥·노하우 어디서도 꿀리지 않아 

꼼꼼함·고객관리법 십분 활용할 만 … 노후 미리 준비하되 작은 행복에 만족을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3244명. 2010년 11월 국민은행에서 희망퇴직한 은행원의 수다. 국민은행이 5년 만에 실시했던 이 희망퇴직은 규모 면에서 금융권 사상 최대여서 관심을 끌었다. 주로 만 55세 안팎의 지점장급 직원들이 32개월치 월급을 희망퇴직 지원금으로 받고 은행을 떠났다. 그 후로 6년. 당시 퇴직한 지점장 중 4명을 만나 희망퇴직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6년 전만 해도 은행의 희망퇴직이 뉴스거리였지만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상시화되는 추세다. 희망퇴직 이후의 삶을 개척한 이들은 현재의 위치는 각자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깨달은 것을 은행에 다닐 때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친환경 비료 판매 대리점주 변신 백태흠씨: ‘늘푸른꿈 대표’. 백태흠(58) 전 지점장이 건넨 명함 속 직함은 간결했다. 늘푸른꿈은 그가 운영하는 비료판매 대리점이다. 그가 비료영업에 뛰어든 지도 만 5년이 됐다. 퇴직한 그에게 비료 사업을 제안한 사람은 지점장 시절 알고 지낸 거래처 사장님이었다. “일본의 친환경 비료가 있는데 일본에선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은행 시절 거래해온 골프장에 영업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쉽게 생각했다. 2011년 5월 친환경비료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지인의 도움으로 골프장에 어렵지 않게 납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번 비료를 쓴 골프장에서 다시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뒤늦게 알았다. 리베이트 관행을 그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료는 문외한이지만 고객관리는 전문가


▎은행원 만한 고객관리 전문가가 없다.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게 실패다. / 늘푸른꿈 백태흠 대표
영업의 방향을 틀어서 골프장이 아닌 농가에 비료를 팔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농사에 문외한인데다, 비료 업계의 경쟁은 치열했다. 비료를 팔려면 작물을 보면서 병이 있는지, 어떤 성분이 부족한지를 코치해 줘야 하는데 그런 지식이 있을 리 없었다. 농가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설명해도 받아주는 고객이 없었다. 다른 업자들과 똑같은 방식의 영업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부하기로 했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은행원이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서 은퇴 후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기술이 있는데 스스로 모르고 넘어가는 거에요. 30년 넘게 은행에서 일하면서 해온 게 고객관리잖아요. 그 기법은 다른 비료업자는 갖지 못한 나의 기술이죠. 내가 제품 설명은 못해도 고객관리는 전문가이니까요.”

다른 비료업자들은 마케팅을 위해 사은품용 장갑을 돌렸다. 어떤 업자는 비아그라를 구해서 돌리기도 했다. 백씨는 기존의 틀을 깨고 농가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찾아서 사은품으로 제공했다. 겨울엔 손이 시려우니 핫팩을, 봄엔 볕이 뜨거우니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줬다. 작목반장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고 그 부인들에겐 마사지팩을 선물했다. ‘늘푸른꿈’이 적힌 조끼를 맞춰서 작목반에 돌리기도 했다. 은행에서 영업할 때 고객 자녀의 취미가 뭔지까지 알아보던 경험을 살려 비료판매에 적용했다. 한 딸기연구회 워크숍엔 직접 가서 고기를 구워 주고 함께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놀라더라고요. 보통 워크숍 한다고 하면 다른 비료 업체는 돈이나 맥주를 보내줄 뿐 직원이 직접 오진 않는대요. 직접 가서 고기를 구우니까 고객들이 ‘우리 농가에 한번 와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3년쯤 하니까 ‘저 사람은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좋은 제품을 파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형제처럼 친해진 작목 반장들이 주변에 늘푸른꿈 제품을 선전해주는 고객이 됐다. 작목반장 중엔 알아서 물건을 팔고 수금까지 해주는 사람도 있다. 보증금 없이 사무실을 빌려준 것도 작목반장이었다.

그는 희망퇴직을 앞둔 은행 후배들에게 “도전을 하지 않는 게 실패”라고 조언한다. 세상엔 얼마든지 도전할 만한 일이 있고 은행원의 강점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차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제조 업체에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은퇴하고 모두가 그 기술을 발휘해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은행원이 은행을 나오면 할 게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은행원은 쌓아둔 대인관계가 있으니 오히려 조건이 좋은 편이죠. 농사를 짓든지 인터넷쇼핑몰을 하든지, 고객관리 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꽃집 사장님으로 변신한 정건삼씨: 일산 덕이동에 있는 비닐하우스 꽃집 ‘삼화카페플라워’. 봄꽃이 만발한 이곳은 정건삼(60) 전 지점장이 부인 유미희(57)씨와 운영하는 화원이다. 정전 지점장은 이제 어느덧 3년차 꽃집 사장님이다. 그가 퇴직할 때부터 꽃가게 주인이 되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부부가 그렸던 은퇴 이후의 삶은 귀농이었다. 퇴직 전부터 귀농아카데미를 다니며 교육을 착실히 받았다. 2011년 충남 청양에 땅을 사서 이주했다. 그곳에서도 농업기술센터에 열심히 다니며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취미로 하던 주말 농장과 본업으로 하는 농사일은 차원이 달랐다. 주말농장은 일하다 힘들면 그만둘 수 있지만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은 그렇지가 않았다. 힘들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문제였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무조건 쉬라고 했다. 1년 만에 정리하고 다시 원래 살던 일산으로 올라왔다.

오래 계획하고 준비했던 귀농이 무산되자 할 일이 없었다. 한동안 집에서 쉬었다. 어느 날 아내 유씨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같이 꽃집을 해볼까?” 은행 다닐 때 대출 받아 사둔 주말농장 자리 500평(약 1700㎡)에 화원을 내자는 이야기였다.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꽃에 대해 공부하고 비닐하우스를 지으며 준비한 지 1년 만인 2014년 2월 지금의 삼화카페플라워를 열었다.


▎은퇴 후 자기 사업을 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 은행에 다닐 때 저축을 늘려서 노후 준비 하라. / 삼화카페플라워 정건삼 사장
조직에서 더욱 성장하려고 노력하라

초보 꽃집 사장님이다 보니 처음엔 헤매는 일도 많았다. 은행에서 일하면서 몸에 밴 습관 때문에 꼼꼼하게 일하는 게 어떤 면에선 단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은행원다운 서비스에 만족감을 느끼는 고객도 있었다. “꽃을 포장할 때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하면 그걸 마음에 들어 하는 손님이 있더라고요. 은행에서 배웠죠,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게 좋은 분들은 단골이 됐지요. 지난 겨울엔 단골 손님이 ‘지점장님 추우실 텐데 이거 입고 일하시라’면서 옷도 사주셨어요.”

화원 운영은 은행 업무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꽃은 예쁘지만 꽃집 운영은 결국 몸을 써야 하는 ‘노동일’이다. 무거운 화분 배달까지 정 전 지점장이 직접 하다 보니 힘에 부칠 때도 많다. “화원을 하면서 세상의 일이 두 가지로 나눠진다는 사실을 알았죠. 시스템의 움직임으로 돈을 받는 경우가 있고,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급여가 있어요. 은행처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건몸이 편하고 수입도 좋죠. 시스템만 잘 돌아가면 수익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고요. 노동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벌 수 있는 돈이 제한적입니다. 건축현장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하루 일당 이상을 벌 수 없잖아요. 하루에 25시간을 쓸 순 없으니까. 그걸 일찍 알았으면 도움이 됐을 텐데….”

만약 은행원 시절에 이런 깨우침을 미리 얻었다면 뭐가 달랐을까. 그는 “내가 은행 중간간부일 때 이를 알았다면 더 열심히 일해서 은행 조직에서 성장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시스템 안에서 오래 머물기 위해 좀 더 노력했을 거란 뜻이다. 또 “은행에 있을 때 덜 쓰고 저축해서 은퇴 후 받는 연금액을 늘려놨다면 화원은 취미생활 정도로 삼아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다행히 정씨 부부의 화원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임대료가 없다 보니 비싸게 팔 이유가 없어 가격 경쟁력이 있는데다 충성고객도 늘었다. 지난해까지는 간신히 유지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소득이 생겼다. 정씨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재미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후배들은 좀더 편한 일을 찾고, 혹시 화원을 하더라도 취미로만 하길 권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력파견 업체 사장님 된 이상용씨: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용(62) 전 지점장은 ‘한국주택E&C 대표이사’라는 직함의 명함을 건넸다. 그가 2013년 설립한 건물관리·인력파견 업체로 8명의 직원이 일한다. 공장과 콜센터, 은행 등 20여 곳에 100명 정도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사업이 이 정도 기반을 잡기까지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애초 그가 퇴직 전 구상한 사업은 경영컨설팅. 전문기관에서 4주에 걸쳐 관련 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구체화하려고 알아보니 시장 상황은 예상과 딴판이었다. 영세한 중소기업은 경영컨설팅을 받으려는 수요 자체가 거의 없었다. 먹고 살 수가 없겠다 싶어서 계획을 접었다. 그 후 찾은 분야가 인력파견이었다. 지인 몇 사람과 회사를 설립했고, 150명을 파견하는 큰 계약도 따냈다. 그런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계약했던 한강 새빛둥둥 섬 운영 업체가 공사기간이 연장되면서 결국 부도가 났다. 사무실 운영 등에 쏟았던 돈을 날리고 말았다.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퇴직 후 1~2년은 세상 경험을 쌓아라. 그런 다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 한국주택E&C 이상용 대표이사
낯선 일에 섣불리 뛰어들다간 큰 코 다쳐

예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초초해졌다. 생소한 분야인 건설인력 업체에 뛰어들었다. 공사현장에서 막노동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매일 일당을 선지급하려면 현금이 필요했다. 살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왕창 받았다. 45일 후 건설사에 청구해 받아서 메워야 하는 돈이었다. 순탄하게 사업이 굴러간다 싶었는데 일이 터졌다. 직원 한 명이 건설사가 지급한 일당 2억 원을 가지고 잠적해버렸다. 사업 경험이 없는 그가 직원을 믿고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었다. 3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직원은 찾지 못했다. 그 일을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면서 그가 깨달은 점은 이거다. “자기 돈을 넣는 투자는 하면 안 된다. 자기 몸으로 뛰는 일을 해야 한다.” 목돈이 있다는 자신감에 섣불리 건설인력업에 뛰어든 게 무리수였다.

그는 다시 인력파견업으로 돌아왔다. 구직자를 찾아 매칭시키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이기 때문에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은행원 시절 구축한 인맥으로 건물주 등을 고객으로 모셨다. 업계의 경쟁이 심하지만 열심히 영업을 뛰는 만큼 성과가 있었다. 그는 “사업을 해보니 구멍가게 사장도 다시 보게 된다. 아무리 작은 구멍가게지만 월세를 내고 직원 월급도 주려면 얼마나 여러 가지 궁리를 해야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사업을 하려면 남의 밑에서 1~2년이라도 일을 배운 뒤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자신도 과거에 친척형님이 하는 지방의 인력파견 업체에 일을 배우러 갔다가 ‘이런 조그마한 업체에선 배울 게 없겠다’는 생각에 그만뒀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준비했더라면 더 나았겠다 싶다. “한두 달 놀다 보면 초조해져서 경험 없는 일에 섣불리 뛰어드는데, 그러면 결국 실패합니다.”

특히 은행원들은 더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은행원은 온실 속 고운 꽃이에요. 은행이란 보호막이 벗겨지면 강한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리고, 벌레가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어요. 퇴직 후 무엇을 하느냐는 선택에 자신의 남은 20~30년 인생이 달려있는데도, 달콤한 말에 현혹돼 넘어가기 쉽지요. 투기로는 절대 돈 못 벌어요.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요.”

커플매니저로 전성기 유선재씨: “난 지금이 전성기에요. 은행다닐 때보다 더 행복해.” 지난 4월 8일 만난 유선재(62·여) 전 국민은행 지점장은 행복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5년 전인 2011년 2월,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희망퇴직 후 결혼정보업체 닥스클럽 이사로 변신한 직후였다. 그때 그는 “밑바닥부터 하라면 할 수 있다”는 각오가 대단했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그가 커플매니저에 도전하게 된 건 우연히 본 억대 연봉 커플매니저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빛나는 직업’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의 중요한 선택을 도와준다는 면에서는 은행원과 비슷한 직업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겪은 커플매니저란 직업은 애초 생각과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있었다. “커플매니저는 은행원이 잘 할 수 있는 직업인 게 맞았어요. 연륜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고요. 다만 정형화된 인재들만 모여있는 은행에서 일하다가 여러 성향의 매니저들과 일하려니 잘 안 맞더라고요.”

그는 풀타임제의 커플매니저로 일하던 닥스클럽에서 1년 만에 퇴사했다. 어렵게 재취업한 회사를 그만 둔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그는 “처음 밖에 나왔을 땐 계속 은행에서처럼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매일 출퇴근하면서 소속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곳에서 커플매니저 관리자 역할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만 사무실로 출근하며 커플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커플매니저처럼 졸업앨범이나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을 가지고 연락하는 영업은 하지 않는다. 알음알음 소개로 전화를 걸어오는 고객만 관리한다. 그는 “결혼정보 업체가 자신의 정보를 관리하는 걸 싫어하는 부유층 고객들이 주로 찾는다”고 했다. 은행 지점장 출신이라는 경력이 이러한 고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다. 그의 고객들은 자녀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전문 커플매니저가 아닌 ‘잘 아는 지점장’이 소개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조금만 내려 놓으면 은퇴 이후에 얼마든지 재밌게 살 수 있다. / 닥스클럽 커플매니저 유선재
“ 나와도 괜찮아 … 할 일 많고 재미있어”

커플매니저 일이 은행에서 일할 때보다 좋은 점도 있다. “은행에선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고객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어요. 지금은 의뢰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별로다 싶으면 ‘소개가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거절해요. 내 고객의 자녀를 그런 집에 보내고 싶지 않거든요. 조직에 속한 게 아니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얼마든지 ‘아니면 말고’가 가능하지요.” 주간·월간·상반기·하반기 목표에 맞춰 시간에 쫓기며 지내야 했던 은행 지점장 시절과 달리 누가 재촉하지도 않는다. 결혼이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도 아니어서다.

그는 “조금만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작은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위해서 살고자 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게 그가 은퇴 후 찾은 행복론이다. 그가 희망하는 게 있다면 봉사하는 것, 그리고 65세가 되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번 걸어보는 것이다. 커플매니저 일은 70세까지 하겠다는 계획이다. “나와도 괜찮아. 할 일 많고 재미있어. 너무 걱정하지마.”

-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1331호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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