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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행원 초임 삭감 논란] 성과주의 도입 화두서 방향 급선회 

억대 연봉 이슈→신입 행원 고임금 ... “노사 부담 줄이려 의제 바꾼 것” 분석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연맹,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가 1월 2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퇴출제 일방 결정 시도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과 투쟁계획을 밝혔다.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연맹,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가 1월 2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퇴출제 일방 결정 시도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과 투쟁계획을 밝혔다.
올해 은행권 노사 협상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신입행원 초임 삭감’ 문제다. 원래 초임 5000만원은 이슈의 중심이 아니었다. 보신주의에 빠진 은행에 성과주의 문화를 주입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런데 노사 협상이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직전 ‘초임 삭감’ 프레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초임 삭감 이슈를 기승전결(起承轉結)로 풀어봤다.

기(起)-군불 지피기: 지난해 10월 10일 페루 리마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장기자단 간담회에서 “오후 4시에 문 닫는 은행이 (한국 외에) 어디 있느냐”며 “(한국은) 노조 힘이 너무 강해 금융개혁이 역동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이어 “입사 10년 후면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일은 안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국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후 한 달도 안 된 지난해 11월 5일. 금융연구원 주최로 두 가지 행사가 아침과 낮 잇따라 열렸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금융연구원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회’에 참석해 금융개혁 완성을 위한 주요 과제로 ‘성과주의 확산’을 내세웠다. 임 위원장은 “금융권이 보신주의적이란 말이 제일 듣기 싫다”며 “성과주의 문화를 확산시켜 장기적으로 시장 발전을 위한 규제 개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금융연구원은 서울 명동 YWCA에서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 세미나’를 진행했다. 신성환 금융 연구원장은 “온라인 금융거래의 확대, 고령화 추세, 국내 은행 산업의 수익성 하락 등 경영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 우리나라 은행권의 임금체계와 성과주의 현황을 짚어보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에 나선 패널들도 최근 몇 년 간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이 나빠지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호봉제를 중심으로 하는 비효율적인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현재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청년층 고용 여력 확대와 비정규직 최소화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승(承)-첫 청사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2월 1일 ‘금융 공공기관 성과중심 문화 확산’을 위해 9개 금융공공기관(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예탁결제원·예금보험공사·자산관리공사·주택금융공사·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최고경영자와 만났다. 이에 앞서 금융위는 경영예산심의위원회를 열어 성과주의 확산을 위한 ‘경영 인센티브 인건비’ 방안을 마련했고, 기재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금융공공기관의 최하위 직급(통상 5급)과 기능직만을 제외한 전 직원에 대해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 연봉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성과연봉제 적용대상이 현재 1327명에서 1만1821명으로 약 9배 수준으로 늘어난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1인당 평균 연봉은 민간은행 8800만원, 금융공공기관 8525만원, 금융업 전체 5849만원, 기업 5966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융공공기관을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모든 공공기관 보수 평균의 1.4배란 설명까지 덧붙였다. 임 위원장은 “금융권 전체를 선도한다는 취지에서 금융공공기관 하위 직급(4급)의 기본연봉에도 인상률 차등 폭을 적용하는 방안을 노사와 협의하겠다”며 “대상은 6248명으로 총 직원의 36%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轉)-프레임 변경: 2월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는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1차 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올 한해 금융 노조와 협상 방향을 논의하는 첫 회의다. 그런데 이어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새로운 이슈가 떠올랐다. 하영구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장(전국은행연합회장)은 “은행원 초임은 연간 5000만원 수준으로 다른 산업뿐 아니라 금융산업 내 다른 업종에 비해서도 높다”고 말했다. 애초 이날 회의에서 은행원 초임 삭감은 주요 안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논의가 이어지면서 신입행원 초임 문제를 몇몇 행장이 심각하게 제기했다고 한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업계 관계자는 “5000만원이 아니라 3000만원, 4000만원이라도 은행에서 일하고 싶은 청년 구직자가 많다”며 “초임이 높아서 신입행원을 더 이상 뽑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회의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사용자협의회는 3월 3일 2차 총회를 열고 사측 요구안을 네 가지로 확정했다. 바로 ①임금 동결 ②초임 삭감 ③성과연봉제 도입(호봉제 폐지) ④저성과자 해고다. 은행원 초임 삭감이 성과연봉제 도입보다 우선 순위로 전진배치된 게 확인되는 순간이다. 최경환 전 부총리의 ‘은행원 10년차 연봉 1억원’ 논란이 ‘신입 행원 초임 5000만원 삭감’으로 프레임이 바뀌었다. 노사 관계를 오래 다룬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억대 연봉 얘기가 나오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금융권 CEO”라며 “그래서 신입행원 5000만원 연봉 프레임으로 의제를 바꿔 노사 양측의 협상 부담을 줄여준 거 같다”고 분석했다.

결(結)-데자뷰: ‘신입 행원 초임 삭감’ 카드는 처음 나온 게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데자뷰(deja vu)’라 할 만큼 똑같은 장면이 있었다. 2009년 2월 기업은행은 당해연도 채용 예정인 신입행원 200명의 초임 20%를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다른 금융공공기관도 초임 깎기에 나섰고, 시중은행도 그 해 연말쯤 삭감 행렬에 동참했다. 당시 시중은행 초임은 4000만원 수준이었는데 2010년 3000만원대 초중반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초임 삭감 카드는 딱 두 해 밖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011년 경기가 회복되자 은행권도 슬그머니 초임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2년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수준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초임이 다시 올라가자 그만큼 신입행원 채용은 늘어나지 못했다. 정부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정책브리핑 2014년 3월 26일)에 따르면 은행권 전체 채용 인원은 2011년 9862명, 2012년 9451명, 2013년 6144명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행원 초임 삭감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형평성 문제다. 신입 사원과 기존 사원 간 임금 차이가 커져 인사 관리에 구멍이 났다. 2008년 시중은행에 입사한 신입행원은 4000만원을 그대로 받았지만, 2009년 입사자는 600만~800만원이 적은 3200만~3400만원 정도 받았다. 특히 1년 단위가 아닌 6개월마다 뽑은 곳에서 더 큰 갈등이 생겨 신입 사원의 불만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우수 인재 영입 경쟁이다. 당시에나 현재나 한국의 시중은행 체제는 경쟁 구도가 뚜렷하기 때문에 각 은행의 인사팀은 골머리를 앓을 수 밖에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시에도 서로 눈치를 보느라 초임 삭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우리만 임금을 낮추면 좋은 인재를 그대로 경쟁사에 뺏기는 구조였기 때문에 경기가 좋아지자 초임을 원상 회복시켰다”고 설명했다.

-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1331호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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