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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차문화로 창조경제 만드는 ‘이싱’ 

차 우리는 자사호의 본고장... 황실공차의 맥 잇는 양시엔차업원 

서영수

▎황실공차의 맥을 잇는 양시엔차 다원.
4000년의 역사를 가진 ‘이싱(宜興)’은 장쑤성 성도인 난징에서 120km 떨어진 타이후와 접해있다. 제주도 면적보다 큰 타이후는 중국 제일의 경제권인 상하이와 난징 사이에 있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담수호다. 환타이후경제권에 속한 이싱은 인구 200만의 소도시지만 5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중국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도시로 삼아 돈과 활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싱의 또 다른 매력은 차와 도자기에 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이 지역의 전통문화인 차(茶)와 도자기를 지난 세월의 박제된 유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싱의 예술가와 차 전문가를 지방과 중앙정부가 공동지원해 산업과 문화로 재탄생시킨 사실은 창조경제와 혁신이 먼 곳에만 있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자사호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싱


▎1. 자사공예 일대종사 (一代宗師)로 추앙받는 구징저우가 1948년에 만든 석표호는 2015년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서 40억원에 낙찰됐다. / 2. 중국도도 도자예술센터. / 3. 2013년 후롱스(芙蓉寺) 대웅보전 완공식 때 시진핑 주석의 영부인 펑리위안도 참석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세계에서 자사호(紫砂壺)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싱은 도자기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타오두(陶都)라는 애칭이 있다. 차를 우릴 때 사용하는 자사(紫砂)로 만든 자그마한 주전자가 자사호다. 자사는 이싱의 띵수전 일대에서만 채굴되는 희토류로 국가에서 생산과 유통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싱의 자사호는 2014년 1월 24일부터 ‘중국국가지리표지보호산품’으로 등재되어 배타적 권리를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다.

국가에서 자격을 부여하는 13개 작가등급 중 최고등급인 중국공예미술대사의 자사호 작품값은 억대를 넘어가는 것이 많다. 자사공예 일대종사(一代宗師)로 추앙받는 구징저우(顾景舟, 1915~1996년)가 1948년에 만든 ‘석표호’는 2015년 5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서 2450만 위안(미화 400만 달러)에 낙찰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정책으로 꽁꽁 얼어붙은 고가품 시장도 중국인의 자사호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자사공예의 피카소로 불리며 살아있는 전설로 존경받는 뤼야오첸 대사의 자사호는 중국의 유명 박물관은 물론 영국 대영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케임브리지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있는 뤼야오첸의 자사호는 한 점에 3억원이 넘는다. 뤼야오첸 대사는 둘째 아들 뤼준지에와 함께 살며 뤼씨호예를 이끌고 있다. 장쑤성 공예미술대사로 활동하는 뤼준지에는 2014년 5월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중국문화예술인을 대표해 자신이 만든 자사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1954년 설립한 자사1창은 근대 자사공예의 산 역사로서 현대 자사공예 예술과 산업이 선순환되게 이끄는 이싱 자사의 심장부다. 도제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작가의 개인 공방이 몰려있는 쌍교촌은 전통 가내수공업 지역으로 중국 각지에서 찾아온 자사작가 희망자로 북적인다. 세계 제일의 도자산업 도시를 열망하는 이싱정부는 2010년 부터 25만㎡에 달하는 신시가지를 조성해 ‘중국도도 도자성’이라는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차도구 타운을 조성했다.

중국 전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도구와 유명 도자기가 산지별로 잘 전시되어 있는 ‘중국도도 도자예술센터’를 중심으로 이싱정부는 자사 공예작가들의 개인 작업장과 상품화된 자사호 가게를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주시켰다. 작업장 1층은 전시장과 작업실로 되어 있어 작가의 작업 모습과 작품을 외부에서도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설계됐다. 2층은 전시실을 겸한 상담실과 사무실로 사용하며 3층은 주거 공간과 창고로 활용한다. 작가가 24시간 머물며 작업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한 설비는 설익은 탁상행정이 아닌 이싱시의 노련한 결과물이다.

자사호 작가들이 자사호로 즐겨 마시는 차는 이싱에서 생산되는 차다. 이싱의 차는 ‘양시엔차(陽羡茶)’라 불리며 당나라 때부터 황실공차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녹차가 유명했지만 지금은 홍차가 유행이다. 이싱의 홍차는 향이 십리까지 간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향과 맛이 뛰어나다. ‘십리향’이라는 중소엽종의 차나무 종류가 실제로도 있다. 이싱의 홍차가 자사호를 만나면 그 맛과 향은 업그레이드된다.

향이 십리까지 간다는 이싱의 홍차

황실공차의 맥을 이어 이싱시 정부가 야심차게 조성해 관리하는 양시엔차업원은 3600만㎡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다원이다. 이싱시 외곽에 끝없이 펼쳐진 다원과 어우러진 대나무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이싱의 차 문화와 자사호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양시엔문화박물관과 대만출신의 이안(李安) 감독이 연출한 무협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주하이(竹海)공원과 이어지는 동선은 훌륭한 관광코스다. 주하이공원 가는 길목에 있는 후롱스(芙蓉寺)는 당나라 때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원나라 때 병사들에 의해 소각되어 파괴된 절을 명나라 주원장이 새로 지었다. 후롱스 경내와 주변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차밭이 훌륭했지만 1950년 토지개혁 때 모두 국가에 귀속됐다. 문화혁명을 거치며 스님을 모두 외지로 보내고 사찰 건물을 사용해 국영농장 형태로 차창을 운영했다. 생산성과 질이 모두 떨어지는 이싱차의 암흑기였다.

죽의 장막을 걷고 개혁개방의 훈풍이 후롱스에도 불어왔다. 2007년 이싱시관광국은 후롱스에 대한 문화재 가치조사를 벌여 일급 관광자원으로 인정했다.

흩어져있던 유물을 보존하고 옛 절터 위에 대웅보전도 새로 지었다. 2013년 대웅보전 완공식 때는 시진핑 주석의 영부인 펑리위안도 참석했다. 이싱시는 사찰을 중심으로 386만㎡를 보호지역으로 정하고 황폐해진 다원을 복원시키기 시작했다. 이싱시의 노력으로 133만㎡가 넘는 현대식 모범 다원과 전통 수공차 제조기술이 복원됐다. 국영차창도 현대화 설비를 갖추고 난징농업대학과 산학 협조체제를 구축해 전문 인력을 양성해 이싱차의 명성을 복원했다. 과거 유물로 묻혀버릴 수도 있는 차와 자사호를 통해 이싱은 문화와 산업을 아우르는 창조경제로 발전시키고 있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33호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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