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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약재 다듬으며 마음도 다잡아 

약작두 다룰 때 정확성·참을성·조심성·성실성 등 필수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인삼을 자를 때 쓴 손작두.
“협도 개(가져) 오라우.” 한의대에 들어간 이후, 토요일 오후가 되면 할아버지는 약작두를 가져오라는 이 말씀과 함께 벽장에서 인삼 두어 근을 내놓았습니다. 인삼도 약재 써는 기계로 한꺼번에 썰어놓고 쓰면 좋으련만, 귀한 약재는 손작두로 일주일 분만 썰어 놓았다가 필요할 때마다 덜어 써야 좋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신조였습니다. 젖어 있는 상태인 수삼은 쇠가 닿으면 약성이 감소되기 때문에 플라스틱이나 나무칼로 자르는 반면에 마른 상태인 인삼은 손작두를 이용해서 튀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썰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약제사보다는 손자를 시키고 싶으셨나 봅니다.

약재의 크기·단단함에 따라 종류 다양

약작두(藥斫刀)의 종류는 약재의 크기와 단단함의 정도에 따라 다양합니다. 인삼을 써는 손작두의 칼은 작고 단단한 약재를 조금씩 썰기에 알맞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칼은 가늘고 얇으면서 날이 잘 서있는 가위 모양이고, 칼의 길이는 짧은 반면에 손잡이는 길쭉합니다. 그래서 인삼 써는 작두를 ‘협도(鋏刀)’라고 한 것 같습니다.

협도의 약재가 떨어지는 부분에는 나무판을 대서 옆이 올라오도록 했습니다. 이는 약재를 자를 때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음식을 조리할 때 만드는 요리와 재료의 특성에 따라 써는 모양이 달라지 듯이 약재를 자르는 방식도 한약재의 효능과 상태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박편(薄片)은 약효를 내는 물질이 잘 추출될 수 있도록 단단한 약재를 얇게 써는 것으로 녹용이나 녹각을 썰 때입니다. 후편(厚片)은 푸석한 약재를 달이는 동안 흩어지지 않도록 두껍게 써는 것으로 뿌리나 열매, 줄기를 썰 때 적합합니다. 약재를 비껴 자르는 사편(斜片)은 물과의 접촉면을 넓게 해서 잘 우러나게 하는 방법으로 인삼이나 감초, 황기 같은 약재가 이에 해당 됩니다. 이외에 가늘고 긴 약재를 길게 써는 장편(長片)이 있습니다.

이처럼 민간약으로 쓰던 풀이나 뿌리, 열매 등은 작두질을 통해 한약재로 거듭 납니다. 같은 약재라도 능숙한 작두질을 거친 약재가 상품(上品)으로 대접받습니다. 그러나 한약재 중에는 쇠로 된 작두에 닿으면 약효가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삼과 생지황입니다. 익모초·모과·석류·하수오도 가급적 나무칼로 절단하거나 손으로 잘라서 써야 약효가 줄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약재로 차를 끓여 마실 때에는 금속으로 된 잔보다는 도기나 유리로 된 잔에 담아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쇠를 싫어한다는 것 외에도 인삼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인삼은 오장(五臟)을 두루 보해주고 혈맥을 통하게 하면서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또한 면역력을 증진시키고 병후 회복을 도와주는 만병통치의 효능을 가졌다고 알려진 한약재입니다. 서양에서는 인삼의 학명을 ‘Panax Ginseng’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Panax’란 그리스어로 ‘만병통치’를 뜻합니다. ‘Ginseng’은 인삼의 중국어 발음입니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인삼의 효능을 인정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인삼은 몸이 뜨거운 열(熱) 체질인 사람이 먹으면 예후가 별로 안 좋습니다. 인삼은 약재의 성질 자체가 양(陽)의 기운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햇볕을 많이 받으면 잘 자라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북쪽으로 경사진 땅에서 남쪽으로는 검은 천막을 치고 북쪽은 열어놓아 해를 등지게 만든 음지에서 키웁니다. 기운을 위로 올리고 몸을 덥히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기운이 처지고 몸이 찬 소음인(少陰人) 체질의 사람에게는 최고인 약이고 수 년 간 장기 복용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태음인(太陰人)에게도 잘 맞는 약이기는 하지만 장기 복용하기보다는 일주일에 서너 번만 드시는 편이 좋습니다.

열이 많은 소양인 체질에는 인삼이 도리어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한두 번만 복용해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상열감이 있고 두통이 생기거나 눈이 침침해질 수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는 피부에 열꽃이 돋거나 불안해지고 잠을 못 자기도 합니다. 고혈압 환자가 소음인인 경우에는 인삼을 복용하면 혈압이 내려가지만 소양인이거나 태양인은 혈압이 도리어 많이 올라가는 것은 다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그래서 인삼을 한 달 이상 꾸준히 복용하고자 할 때는 한의사에게 반드시 진료를 받고 자기의 체질을 파악한 다음에 드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같은 삼 종류라도 수삼이나 산삼은 체질에 따른 문제가 훨씬 덜 합니다. 수삼은 인삼을 말리기 전 단계의 젖은 상태인데 대부분이 1~2년만 키운 것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기운이 인삼보다는 훨씬 떨어집니다. 산삼이나 장뇌삼도 체질에 따른 부작용이 별로 없습니다. 산삼은 20년에서 50년 된 것이 가장 흔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땅의 기운을 받으면 자체의 뜨거운 성질은 가라앉고 몸을 보하고 양기를 올려주는 익기승양(益氣升陽)의 효능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노화가 빨리 오는 사람은 체질에 상관없이 복용할 수 있는 장뇌삼이라도 드시는 편이 좋습니다.

산삼은 동물이 산삼의 종자를 먹고 이 씨앗이 동물의 변에 섞여 깊은 산속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난 반면에 장뇌삼은 산삼의 종자를 채취해서 이를 산삼이 자라기 좋은 환경, 즉 북쪽으로 비탈지고 강우량과 일조량 많지 않으면서 물이 잘 빠지고 활엽수의 부식토가 충분히 있는 곳에 사람이 뿌려서 10년 이상 자란 후에 채취한 것입니다.

그럼 수삼과 산삼과 장뇌산삼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수삼이던 산삼이던 몸통 위에 줄기가 붙어있던 꼭지가 있는데 이를 노두(蘆頭)라고 합니다. 수삼은 대개 노두가 1, 2개이고 인삼은 2, 3개 장뇌산삼은 3,4개이고 산삼은 10개가 넘는 것도 있으며 노두에서도 뿌리가 돋습니다.

인삼이나 수삼을 복용할 때에는 노두를 떼어내고 복용해야 합니다. 장뇌삼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두를 떼어내지 않고 몸통과 함께 복용하면 약효도 줄고 가슴이 답답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떼어내고 복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떼어낸 노두는 모아서 차로 끓여 마시면 됩니다.

수삼은 몸통에 테가 없고 딱딱한 반면에 산삼은 동그랗게 테가 많이 있고 눌러보면 탄력이 있습니다. 장뇌삼도 테는 있지만 희미하고 몸통의 탄력이 덜합니다. 수삼은 뿌리가 길지 않고 잔뿌리도 많지 않은 반면에 산삼은 뿌리가 길고 잔뿌리가 많으며 동그란 돌기가 만져집니다. 장뇌삼은 뿌리에 있는 돌기가 있지만 만지면 매끈합니다.

수삼은 2년 정도 재배한 후에 수확하는 반면에 인삼은 6년을, 장뇌삼은 10년 이상을, 산삼은 20년에서 50년 사이에 채취합니다. 인삼은 눈이 녹아야 싹이 트지만 산삼은 눈이 안 녹은 상태에서도 싹을 틔우는 강한 성질이 있어 생육기간이 약효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수삼·생지황은 나무칼이나 손으로 잘라야

수삼과 인삼, 산삼이 생장 연륜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나듯이 할아버지는 작두질을 잘 해야 약도 잘 짓고 약을 잘 지어야 처방도 잘 내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약재를 정확한 길이와 두께로 잘라야 하는 정확성, 책상다리와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하는 참을성, 손이 베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조심성, 같은 동작을 한 시간 이상 반복해야 하는 성실성, 그리고 약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약 처방과 조제를 잘 할 수 있다고 믿으셨기 때문일 겁니다. 약작두는 약재를 다듬는 도구일 뿐 아니라 마음도 다잡아주는 이기(利器)라 할 수 있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10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33호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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