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왜 그러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는 걱정 반 짜증 반인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 아내가 제 문자메시지를 봤어요. 여비서가 보낸 건데…. 깐깐한 성격이라 꼬치꼬치 따지고 추적하더니, 급기야 이혼을 요구하네요. 아무리 설명해도 굽히질 않아요. 여비서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물론 아내의 그런 태도는 10년 전 사건과 무관하진 않죠. 당시 아내 친구와 바람피운 사실이 들통 나, 그 친구와 함께 무릎까지 꿇고 용서를 빌어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교사인 아내는 두 딸도 잘 키우고 살림도 잘 했고요, 저는 저대로 열심히 돈 벌고, 아내와 두 딸에게 비교적 잘 해왔거든요. 물론 사회생활 열심히 하다 보니 아주 가정적이진 못했지만요.”
바람피운 전력 탓에 또 의심받아그는 대화는 하려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다. 욱하는 마음에 이혼해 버릴까라는 맘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아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본인도 잘못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대처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전 아내를 좋아해요, 잘 해결해야지 하는 맘이 훨씬 더 크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인간의 뇌기능은 불완전하다. 우리는 1초에 200만 바이트의 정보에 노출돼 있다. 이 중 아주 적은 134바이트만이 뇌신경에서 처리된다. 외부 정보는 생략되고, 왜곡되고, 일반화된다. 인간의 뇌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중요한 단서를 중심으로 압축해 저장한다. 또한 나중에 사건을 떠올릴 때 실제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기억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조작한다. 성냥팔이 소녀가 한 개비의 불꽃에 행복을 느끼고, 백만장자가 허무감으로 자살한다. 인간의 경험은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인간의 뇌는 자극에 모호하게 반응한다. 외부 자극보다는 내부 자극에 더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같은 경험이라도 보는 방식(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가치관에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시한다. “보이는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우리 뇌는 모호한 경험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은 무시한다. 바람피우는 것도 내가 하면 로맨스가, 남이 하면 외도다. 인간의 경험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신비에 가깝다. 이해하면 사랑할 수 있다. 이해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진리란 보편적인 이치다. 공자는 인간의 보편성으로서 인(仁)을 강조했다. 인은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인간다움의 실천이다. 석가는 불변의 이치로서 무명(無明)을 강조했다. 무명은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다. 모든 번뇌의 근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이해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실이란 거짓 없는 사실이다. 진실은 사람마다 다르고, 처지마다 다르다. 나에게 진실이 남에게 아닐 수 있고, 남에게 진실이 내게는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와 인식에 정직하게, 세상을 살다 얻은 거짓을 하나씩 벗겨갈 때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이해하면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은 정신적으로 통하는 것이다. 머리와 머리가 일치하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내 생각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사연이 다르고, 살아갈 사정도 다르다. 남의 생각이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용서를 통한 화해 필요소통은 정서적으로 통하는 것이다. 가슴과 가슴이 일치하는 것이다. 느낌을 나누고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공감(共感)이라 한다. 공감이란 순간순간 남의 마음이 될 수 있는 능력이다. 공자는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 원칙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예수는 신앙생활의 기본 원칙을 이렇게 가르쳤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성인(聖人)이다. 성인이란 남의 말을 잘 듣고(耳, ear), 거기에 잘 반응하는(口, mouth), 밝고 분명한(壬, clear) 사람이다. 공감의 신(神)이고, 소통의 달인(達人)이고, 대화의 왕(王)이다. 성인은 말로 할 수 없음을 보고, 말해서 아니 됨을 안다. 말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말하고 싶지 않음을 지닌다. 말은 더디게 하려고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한다.자, 그에게 집중해보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을 무엇일까? 첫째, 중재자가 필요하다. 둘은 위기를 겪고 있다. 당면한 문제와 해결 안 된 과거 문제가 함께 얽혀 있다. 믿음이 깨지고, 희망이 안 보인다.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사건만 기억하고, 유리한 얘기만 한다. 부부에게 남녀 문제는 민감하다. 아내의 막무가내 이혼은 꼭 그러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둘 다 화가 나 있다. 아내는 대화를 안 하려 하고, 남편은 피하려 한다. 제 삼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둘 다 자존감에 상처를 받았다. 아내는 거듭되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남편은 무릎 꿇은 굴욕감을 떠올린다. 중재자의 시각이 필요하다.둘째, 바꾸려 하지 말고 이해하자. 둘은 상대를 바꾸려 하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버릇을 고쳐보려 하고, 남편은 아내의 태도를 못마땅해 하고 있다.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보여도, 내 눈의 대들보는 안 보이는 법이다. 상대를 바꾸기도, 나를 바꾸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부부는 서로 타고난 체질과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보는 방식, 소통 방식, 생활양식이 다르다. 서로의 다름을 꼼꼼히 이해해 보자. 아무리 해도 이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강력한 동기와 꾸준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해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인간다운 배려와 손해 보는 이타심이 요구된다.셋째,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 둘은 해결 안 된 숙제가 있다. 용서를 통한 화해가 필요하다. 아내가 가시 같이 보이면 꽃도 가시도 함께 어루만지며 스쳐가는 바람이 되자. 바람은 생각이 깊고 너그럽다. 누가 너그러울 수 있는가? 내면에 힘을 키운 자만이 너그러울 수 있다. 남편이 벽처럼 느껴지면 바위를 어루만지며 비켜가는 물이 되자. 물은 상냥하고 부드럽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