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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⑥] 그림에서 버려야 할 네 가지 ‘사첨속뢰’(바르지 않고 달콤하고 속되고 의지하는 것) 

일관된 미의식 갖고 기본기에 충실해야... 감탄 넘어 감동 전해야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겨울나무, 2012
우리에게는 산수화라는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있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할까요. 옛 그림을 감상하고, 회화이론을 들여다 보면 사진, 특히 풍경사진을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동양화 회화이론 중에 사진에서 되새겨 볼 만한 글을 소개합니다. 중국 원나라의 황공망이라는 화가는 그의 저서 [사산수결(寫山水訣)]에서 그림에서 버려야 할 것 네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커다란 요체는 바르지 않은 것(邪·사), 달콤한 것(甛·첨), 속된 것(俗·속), 의지하는 것(賴·뢰)의 네 글자를 버리는 것이다(作畵大要, 去邪甛俗賴四箇字).’

‘근본도 없이 사기치지 말라’

어려운 한자어입니다. 뜻풀이를 하면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에서도 큰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황공망은 ‘사첨속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후대의 화가나 비평가들이 이를 나름대로 해석한 글이 전해집니다. 명나라 초 왕불(1362~1415)은 ‘사(邪)’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혹 어떤 등급의 사람들은 일에 옛 것을 배우지 않은 채 자신의 법을 행한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처발라 윤을 내고는 천취에 맞았다고 말하며, 그 아래 등급의 사람들은 붓끝을 뒤섞고 망령되이 가지와 마디를 만들어내며 음양을 이해하지 못하고 청탁도 구별하지 못하는데, 이는 모두 사(邪)라고 개괄할 수 있다.”

이 말은 기본기를 닦지도 않고, 공부도 않으면서, 철학적인 바탕도 없이 함부로 그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근본도 없이 사기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현상은 사진, 특히 현대사진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진이 난해하다 보니 난해함에 편승해 무임승차를 하는 것입니다. 생경하고 조잡한 사진에 그럴듯한 해석을 붙여 출품하는 것이지요. 또 디지털 시대를 맞아 사진에 가해지는 지나친 ‘뽀샵질’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느껴집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사진강의 노트]의 저자 필립 퍼키스도 황공망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보여 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기본기부터 다듬으라는 얘기입니다.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피사체의 밝고 어두움만 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똑같이 찍을 것인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빛의 종류나 방향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은 어느 정도 훈련을 거친 다음에야 알 수 있습니다. 사진에 ‘왕도’는 없습니다.

‘첨(甛)’과 ‘속(俗)’에 대해서는 ‘전신(傳神, 정신을 전한다는 뜻)을 소홀히 하고, 화려한 색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첨(甛)’은 ‘달다’는 뜻입니다. 영화 [첨밀밀(甛蜜蜜)]에 나오는 것과 같은 한자어입니다. 주제가를 들어보면 그 선율이 글자 뜻처럼 꿀처럼 달콤합니다. 깊이가 없는 단맛은 금세 식상하게 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초딩 입맛’이지요. ‘속(俗)’은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비록 자연의 색이라도 너무 화려하면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프레이밍을 달리하거나 흑백으로 처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진가의 일관된 미의식입니다.

청나라 때 화가이자 비평가인 심종건(沈宗騫)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붉고 푸른 아름다운 광채를 일러 ‘華(화)’라고 하는데 이 또한 畵道(화도)에서 폐할 것은 아니며, 내가 제거하고자 하는 것은 곧 필묵 사이의 일종의 고운 태이다…(중략)…무릇 ‘華(화)’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고, ‘質(질)’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안에 감추어진 것이다. 그러한 즉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 화는 한때 널리 떠다니는 허황한 명성을 얻지만, 아름다움이 안에 감추어진 ‘質(질)’은 천고에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

요즘 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참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얻기 위해 화려한 색채만을 추구하지 않나요? ‘좋아요’가 많다는 것은 대중적인 인기의 척도는 될 수는 있지만 사진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그 화려한 색채로 인해 눈길을 사진이 있는가 하면,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것도 있습니다. 좋은 사진은 ‘감탄’을 너머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뢰(賴)’는 ‘의지한다’는 뜻으로 ‘모방과 표절’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처음 사진을 배울 때는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을 흉내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훈련’의 개념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자기만의 창의성이 더해져야 비로소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청대의 소매신(邵梅臣)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능히 옛 사람과 합일될 수 있고, 또한 능히 고인을 벗어날 수 있는 것, 이것이 옛 것을 먹되 옛 것에 의해 목이 메지 않는 것이다.”

모방은 훈련에 그쳐야

세계적인 풍경사진가 마이클 케냐의 ‘솔섬’ 사진이 국내에서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한 대기업이 국내 작가가 촬영한 솔섬 사진을 광고에 썼기 때문입니다. 논란 끝에 원고인 마이클 케냐 측이 패소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습니다. 법적인 판단은 존중하지만 사진가의 직업윤리로서는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케냐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석해서 이 사건에 대해서 “아마추어는 그럴 수 있지만 프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말을 남겼습니다.

-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1335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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