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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엄마 손처럼 따뜻한 놋쇠 찜질기 

불돌·배밀이보다 진화한 한방 의료기... 산수화 조각해 예술적 가치도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놋쇠 찜질기는 열전도율이 높고 주전자와 달리 물이 나오는 곳이 없어서 몸에 올려놓기 좋은 한방 의료기다. / 춘원당한방박물관 제공
“골동품 중에서 금속으로 된 것의 감정이 제일 어려워요. 가짜가 가장 많지요. 그런데 다행이 한의유물은 가짜가 많지 않은 편입니다.” 금속으로 된 고미술품은 전세품(傳世品)과 출토품(出土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세품은 대대로 집안에서 물려 내려온 것이고 출토품은 말 그대로 땅속에서 발굴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고미술품을 거래하는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전세품보다는 출토품으로 거래되는 유물 중에 모조품이 섞여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한의학에 관련된 유물을 보면 출토품보다는 의원이나 가정에서 실제로 써 내려온 것이 대부분이어서 손때가 묻어있고 정감이 가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속 전세품 중에 제가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놋쇠를 두들겨 만든 찜질기입니다. 지체 있는 집안에서 썼음 직한 이 찜질기는 바닥이 넓고 위로는 납작해서 안정감이 있습니다. 겉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잉어를 조각해서 예술품적인 가치도 지녔습니다. 맨 위에는 뜨거운 물을 넣고 뺄 수 있도록 마개를 만들어서 배나 허리가 아플 때 치료용으로 썼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온찜질은 온열요법의 기본 치료법

아플 때에는 본능적으로 그 부위를 손바닥으로 비비고 주물러줍니다. 누구나 배가 아프거나 관절통·근육통이 있을 때에는 찜질을 해주면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경험했을 겁니다. 찜질에는 냉찜질과 온찜질이 있는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냉찜질은 이완된 근육을 수축시키고 대사기능을 안정시켜주기 때문에 과도한 운동 후나 부상을 입어서 관절이 붓고 통증이 있는 경우에 합니다. 삐자마자 관절이 붓고 열이 날 때에는 냉찜질을 해야 하지만 삔 지 오래 되어서 붓기는 빠졌는데 통증이 계속 있으면서 뻣뻣해지고 시리고 아플 때에는 온찜질이 좋습니다. 넘어지거나 부딪쳐서 멍들었을 때, 통풍, 벌레에 물린 부위가 부어올랐을 때,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으로 가려울 때에도 냉찜질을 해야 합니다.

온찜질은 온열요법(thermotherapy)의 가장 기본이 되는 치료방법입니다. 단순히 환부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국소 부위에 혈액량을 증가시켜 근육의 긴장을 완화하고 타박으로 인해 통증이 생긴 부위에 진통 작용을 해 줍니다. 다친 지 오래 되었거나 만성적인 염증 때문에 근육이나 관절이 아플 때에는 온찜질이 좋습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찜질 부위에는 출혈이나 상처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성장통이 있을 때, 눈이 많이 피로할 때에도 온찜질이 좋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냉찜질보다는 온찜질을 좋아했습니다. 약이 흔치 않은 옛적에는 모양이 넓적하고 평평한 돌을 불 위에 올려놓거나 물에 넣고 끓여서 적당히 뜨겁게 만든 다음 천으로 감싸서 아픈 데에 대주었습니다. 그러면 통증이 줄어들었겠지요. 이 돌을 ‘불돌’이라고 합니다. 불돌은 자갈로 된 모양새라 작거나 무거워서 자주 쓰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배밀이’입니다. 배밀이는 기왓장이나 도자기로 만들었는데 손잡이를 만들어서 냉기나 체기가 있을 때 배위에 얹거나 문지르기 쉽게 한 것도 있습니다. 이 배밀이에서 진화된 것이 찜질기입니다. 놋쇠 제품이어서 열전도율이 높고 주전자와 달리 물이 나오는 곳이 없어서 몸에 올려놓기도 좋게 만들었습니다. 환자가 원하는 대로 물의 온도와 양을 조절하면 되니 불돌이나 배밀이보다는 진화된 한방 의료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차가워진 체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민간요법이라고 본다면 한방 치료는 인체 내부의 찬 기운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장육부의 한열허실을 조절해서 균형을 맞추어주는 것이 한의학의 원리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적용이 됩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양자십법(養子十法)이라는, 아기를 키우면서 꼭 알아야 할 열 가지 섭생법이 있습니다. 요즘 엄마들도 알고 있으면 좋을 한방육아법입니다.

① 등이 따뜻해야 한다(要背煖) - 등은 족태양 방광경이 흐르는 기운의 통로입니다. 등이 따뜻해야 감기도 안 걸리고 타고난 기운을 잃지 않게 됩니다.

② 배가 따뜻해야한다 - 배가 따뜻해야 복통이나 설사를 앓지 않습니다. 여름에도 배는 내놓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③ 발이 따뜻해야한다(要足煖) - 발이 따뜻해야 전신에 기운과 혈액의 순환이 잘 되어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몸이 찬 체질의 아기에게는 여름에도 양말을 신기는 것이 좋습니다.

④ 비위는 항상 따뜻해야 한다(脾胃常腰溫) - 소화기는 항상 따뜻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아래를 차게 하거나 찬 것을 많이 먹여서 비위가 냉해지면 나중에 커서 소화기 질환이 생기게 되고 깊은 잠을 못 자며 성장이 느려집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회향(茴香)이나 생강차 등을 마시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⑤ 머리는 서늘해야 한다(要頭凉) - 머리는 양기(陽氣)가 모여 있는 곳인데 스트레스나 열을 받으면 아기가 불안해하거나 성인이 되어서 신경성 질환이 생기기 쉽습니다.

⑥ 가슴은 서늘해야 한다(要心胸凉) - 심장 부위에 열이 생기게 되면 경기나 경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슴 위로는 서늘하고 아래로는 따뜻해야 건강해집니다.

⑦ 이상한 것을 보이지 말 것(要勿見怪物) - 아기를 놀라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기가 자주 놀라면 소화 장애가 생기거나 보채는 원인이 되고 잘 먹지도 않게 됩니다.

⑧ 울음을 그치기 전에는 젓 주지 말 것(盛啼不使飮乳) - 울 때 젓을 먹이면 젓이 기도로 들어가서 가벼운 질식 상태가 되거나 염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심하게 울 때에는 젓을 물리지 말아야 합니다.

⑨ 함부로 경분과 주사를 먹이지 말 것(勿得輕粉朱砂) - 아기에게 약을 꼭 써야 할 때에는 약성이 약한 약을 잘 골라 써야 합니다. 아무리 한약이라도 경분이나 주사처럼 독한 약을 쓰면 다른 약이 듣지 않게 됩니다.

⑩ 목욕을 간단하게 시킬 것(少洗浴) - 목욕을 너무 자주 시키거나 자극을 주면 피부의 저항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태열이나 피부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차가운 기운은 상체로 올리고 뜨거운 기운은 내리고

동의보감이 나온 지 400여 년이 넘었지만 육아법의 기본 방침을 보면 현대의 육아법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양자십법에 나타나는 섭생의 지침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해당됩니다. 이 지침은 음양오행설에서 나온 한의학 원리 중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습니다. 차가운 기운은 상체로 올리고 뜨거운 기운은 하체로 내리는 것이 병 치료의 첫 단계라는 원리입니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이라는 모토는 위는 서늘하게, 아래는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허준 선생의 말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10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35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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