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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치열해지는 면세점 대전] 시내 면세점 ‘무한경쟁’전국시대 

서울에 4곳 추가 허용 … ‘황금알 낳는 거위’ 옛말 될 수도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이명구 관세청 통관지원국장이 4월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에 4곳(대기업 3+중소기업 1)의 시내 면세점 특허를 추가로 발급한다고 밝히고 있다.
4월 29일 이명구 관세청 통관지원국장은 “관광산업 활성화와 투자·고용 촉진을 위해 서울 지역에 4개 면세점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신규 시내 면세점 특허를 받은 HDC신라·한화갤러리아·두산·SM은 ‘이럴 거면 도대체 왜 그토록…’이란 씁쓸한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면세점 관계자는 “결국 예상대로 특정 업체 구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신규 면세점이 문도 열기 전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달리 지난해 입찰에서 탈락한 이후 회생의 길이 열린 롯데면세점 잠실 월드타워점(6월 말 폐점)과 SK네트웍스 장충동 워커힐면세점(6월 중순 폐점)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한달 매출이 600억원인 월드타워점의 경영 손실을 메우려면 하루빨리 공고가 나야 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대백화점은 관세청의 발표 이후 30분도 안돼 “코엑스 단지 내에 있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면세점 후보지로 내세워 신규 입찰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며 면세점 유치를 위한 재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랜드도 마찬가지다.

올해 말 추가 사업자 선정 예정


관세청은 5월 말이나 6월 초에 특허 신청 공고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명구 통관지원국장은 “4개월의 공고 절차, 2개월의 심사를 거쳐 올해 말 사업자 선정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세청은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특허 4개 중 하나는 중견·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제한 경쟁 입찰을 하기로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제까진 남의 떡(면세점 사업)이 커 보였지만 실제로 클지는 전략의 차이에서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면세점 전쟁’이 시작된 건 지난해 7월부터라고 하지만 유통 업계의 출정은 이미 예고됐다. 2010년 이후 꾸준히 성장하던 면세점 사업이 2013년 유커(중국 관광객)의 급증으로 이른바 ‘대박’을 맞으면서다. 우리나라 면세점산업은 세계 시장의 10.5%를 차지하며 이 분야 세계 1위다. 중국이 7%로 2위, 나머진 미국이 5.9%, 영국 5.5%, 홍콩 4.9% 순이다.

관련 기업의 시선은 특히 시내 면세점을 향했다. 시내 면세점 매출은 2010년 약 2조4000억원에서 2013년 5조3000억원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시내 면세점의 2014년 고객 수는 1100만 명으로 해외 출국장 고객 수 1900만 명보다 적지만 시내 면세점의 1인당 평균 이용금액은 47만8478원으로 출국장 이용금액 12만6728원보다 4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지금까진 롯데와 신라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을 했다. 일부에선 “시장의 86%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롯데(57.3%)·신라(28.8%)가 당분간 사업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른 쪽에선 “여의도·동대문·강남 등 앞으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역을 거점으로 면세점이 들어설 경우 머지 않아 시장 재편도 가능하다”란 주장도 나온다.

전자의 경우는 명품 ‘빅3(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와 같은 브랜드 유치가 쉽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이와 함께 롯데와 신라는 면세점 관광·가이드 등 속칭 마케팅을 위한 인프라가 견고하단 평가다. 이와 달리 신규 면세점 중 빅3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사례는 지난 5월 3일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이 루이비통을 유치한 게 전부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최근 고전 중인 명품 브랜드가 신규 출점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을 이유로 꼽기도 한다. 후자를 주장하는 쪽에선 외국인 관광객이 면세점 쇼핑과 함께 좀 더 다양한 쇼핑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꼽는다. 관세청이 외국인의 한국 쇼핑 장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시내 면세점만 이용하는 외국인은 6.2%다. 다른 점포를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46.7%였다. 시내 면세점과 다른 점포를 이용한다는 응답자도 28.2%에 달했다.

두산의 두타 면세점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입지’를 특허 신청 당시 강조했고 운영 전략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두타 면세점 관계자는 “동대문 DDP, 대학로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 절반 이상은 두타몰을 방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면세점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즐길거리가 즐비한 곳에 면세점은 필수 방문 코스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최근 두타 면세점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중화권에서 최고 한류 스타로 등극한 송중기를 모델로 영입했다. 두타 면세점은 두산가 4세 박서원 두산 전무가 면세점 사업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비교적 대중에 친숙한 광고인 출신인 그는 자신의 SNS를 활용해 두타 면세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최근 두타 면세점 BI와 홍보 티저 영상을 자신의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면세점 매출 서울·수도권이 80%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은 5월 3일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를 받은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루이비통을 유치했다. 면세점 사업에 손을 잡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주변의 관광 콘텐트를 개발해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단 전략을 세운 곳은 올 7월 그랜드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한화의 한화갤러리아63이다. 한화 관계자는 “기존 면세점은 도심권에 있지만 갤러리아는 여의도에 위치해 관광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콘텐트가 새롭고 다채롭다”며 “당장 면세점 오픈에 맞춰 63시티 내 아쿠아리움을 선보일 예정이고 한강시민공원과 여의도공원, 노량진 수산시장이 옆에 있어 만족도와 함께 체류시간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라HDC의 신라아이파크 면세점은 단체 관광객 비중이 큰 유커를 겨냥해 버스 동시주차 100대가 가능한 주차장을 마련했다. 최초의 역사 면세점으로 교통 인프라를 연계한 상품도 개발 중이다. 신라아이파크 면세점 관계자는 “단체 관광객을 위한 대형 식당도 준비할 것”이라 밝혔다.

우리나라 면세점의 본류라 할 수 있는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외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명동에 자리해 입지의 이점을 십분 누렸다. 하지만 곧 롯데면세점 소공점 옆에는 강력한 유통 라이벌 신세계의 신규 면세점이 들어선다. 그리고 신세계 역시 ‘입지’를 자신들의 강점으로 손꼽는다. 신세계 면세점으로 사용할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위치한 명동의 장점은 역시나 외국 관광객의 ‘첫 목적지’란 점이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평균 10명 중 7.5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을 찾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시내 면세점 사업자 발표를 앞두고 “어메이징한 면세점을 만들겠다”면서 “해외 비즈니스맨이 사업적 영감을 얻을 만큼 뭔가 새롭고 재미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청사진을 직접 제시했다. 5월 오픈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인 신세계 분위기는 비장함마저 감돈다. 매장 콘셉트와 참여 브랜드 수까지 철저히 감추고 있다. 신세계 면세점 관계자는 “인근의 기존 면세점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언급 외 말을 아꼈다.

면세점 업계의 모델 전쟁도 치열하다. 신세계는 한류 스타 전지현과 한류 아이돌 지드래곤을 홍보 모델로 낙점했다. 신라면세점은 동방신기와 샤이니를 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모델이 32명으로 호화군단을 꾸렸다. 이민호·박해진·슈퍼주니어·엑소(EXO) 외에 최근엔 중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수 황치열도 자사 모델로 영입했다. 면세점은 모델료로 10억원에서 많게는 60억원까지 지출하면서 광고 업계의 큰손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인 관광객에 자사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기존의 면세점은 외국인 단체 고객이 많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개별여행객이 다른 점포와 함께 시내 면세점을 이용하는 경우는 21.5%지만 단체 여행객은 같은 경우 47.6%가 시내 면세점을 이용한다.

면세점 평균 영업이익률 백화점보다 낮아


시내 면세점 사업자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 매출액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 면세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2012년 69.56%에서 2015년 79.53%로 증가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18.66%이다. 다만, 지역적으로 보면 유독 서울 시내 면세점에 관광객이 몰린다. 외국인 면세점 구매 고객 수는 2015년 기준 서울은 558만 명인데, 경북은 658명에 불과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80%가 서울을 찾고 18%는 제주, 8%가 부산, 2.4%가 경북을 찾을 만큼 외국인의 지방관광이 저조한 편이다.

지방 면세점이 불리한 것처럼 하나투어의 SM면세점과 같은 중소·중견기업 면세사업자가 넘어야 할 산도 있다. 특허수는 2015년 7월 기준 23개로 대기업 17곳보다 많지만 매장 면적은 대기업이 5배 크고, 매출도 14배가량 많다. 일부에선 중소·중견기업의 면세점 경영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형 면세점 업체 주도의 프랜차이즈 면세점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시내 면세점이라고 미래에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 1979년 시내 면세점 제도가 도입된 이후 동화·롯데가 면세점 사업에 참여했고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에 따라 시내 면세점 사업자는 총 29개로 증가했다. 당시 한국을 주로 찾던 외국인은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일본 버블붕괴, 사스(SARS) 등으로 관광객이 급감하자 한진·SKM·AK를 포함한 19곳이 특허권을 반납, 양도했다. 이후 10년 동안 11개 사업자가 면세점 사업을 하다 2013년 17개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도 메르스 사태 여파로 관광객이 급감했다. 면세점 방문객 증가율도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이를 지켜본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현재와 같이 운영 업체가 늘어나다 악재가 발생하면 1980년대 후반처럼 구조조정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지난해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보다 일본으로 몰렸다. 엔저와 메르스 등의 영향이 컸지만 유커가 언제까지 한국을 찾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중국인 중 여권 소지자 비율이 5~6%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유커가 줄지 않을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도 있지만 지금처럼 저질 단체관광의 폐해가 이어지면 이들이 언제 발길을 돌릴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 행사 수수료, 가이드 수수료 등 마케팅 비용이 점점 커진다는 점도 면세점 업계의 고민이다. 면세점산업의 영업이익률은 2~9%로 알려져 있다. 백화점의 9~13%, 대형마트의 3~7%보다 낮은 수치다.

-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1334호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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