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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 뺄셈 경영으로 끝없는 탐욕 제어 

비주력 사업 과감히 없애... 중국 진출, 사물인터넷(IoT) 사업 확장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에도 연간 2000억원대 매출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강소기업’이 있다. 1998년 자본금 2억5800만 원으로 설립된 반도체 전문 기업 바른전자다. 김태섭(51) 바른전자 회장은 이 회사의 창업자는 아니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투자자로 바른전자를 지켜보다가 인수해 2010년 회장에 취임했다. “반도체는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분야가 나뉘는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최강국입니다. 바른전자는 그중에서도 성장성이 큰 낸드플래시를 취급하고 있기에 키워볼 만한 기업이라 생각했죠.” 낸드플래시는 플래시메모리의 일종이다. 스마트폰 같은 정보기술(IT) 기기에 들어가는 SD카드(소형 플래시 메모리) 등이 현재도 바른전자의 주력 상품이다.

경쟁사 대비 우수한 수율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은 “경영에선 ‘덧셈’만큼 ‘뺄셈’도 중요하다”며 “필요성이 작은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되,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 게 성장 비결”이라고 말했다.
기업에도, 김 회장 개인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 바른전자는 김 회장 취임 후 마이너스 성장 없이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수출액이 1770억원으로 전년보다 22% 증가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만 80%에 달한다. 순이익은 42억원으로 2014년의 4배가 됐다. 기술력으로 글로벌 거래 업체를 사로잡았다. 8스텍 제품 초창기에 경쟁국인 대만의 경쟁사들이 90%대의 수율(일정량의 제품을 만들었을 때 불량품을 제외한 정상 제품의 비율)을 기록할 동안 바른전자의 수율은 95%를 웃돌았다. 100여 명의 우수한 연구·개발(R&D) 전문 인력이 거래처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자유로이 설계·변경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8월 메모리 반도체 누적 생산량이 5억 개를 넘어섰다.

애초 바른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었다. 설립 초기엔 전체 매출의 90%가 삼성에서 발생했을 정도다. “당시 바른전자는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경기 변동에 삼성이 갑자기 생산 물량을 줄이면서 회사도 2년 간 적자가 났습니다. 삼성만 믿고 장비 투자를 엄청나게 했는데 패착이었죠.” 그때의 교훈이 바른 전자의 미래를 바꿨다. 부침이 많은 반도체 업종에서 살아남으려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게 필수라고 판단하는 계기였다.

이후 적극적인 해외 개척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김 회장은 취임 직후만 해도 리스크 관리가 더 필요하다고 봤다. “2009년만 해도 미주 한 곳에서만 거래처 2곳이 갖는 매출 비중이 80%였습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거래처 한 곳의 비중이 절대 30%를 넘지 않도록 분산시켰습니다.” 바른전자는 김 회장의 계획대로 아시아와 유럽·아프리카 등지로의 수출선 다변화도 꾀했다. 그 결과 지금은 수출 비중이 미주 50%, 아시아 30%, 유럽·아프리카 20%로 고르게 분포됐다. “이젠 어느 한 거래처의 변동이 심해져도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전체 매출의 2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거래처가 한 군데도 없으니까요.”

통상 바른전자 같은 후공정(삼성·SK하이닉스 같은 전공정 기업으로부터 반도체 집적회로의 핵심 재료인 웨이퍼를 사온 뒤, 낱개로 잘라 포장해 거래처에 납품) 업체들은 획일화된 매출선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김 회장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이 같은 매출선의 쏠림을 배제하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2014년부터는 ‘골드플래시’란 이름의 자체 브랜드 범용직렬버스(USB) 메모리도 만들어 팔고 있다. 역시 후공정 업체로는 이례적이다. 김 회장은 “제품을 자체적으로 설계·개발하는 능력을 키워야만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평범한 대학생이던 1988년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유행하던 음악다방에서 DJ로 일하면서 자금을 모았다. 서울 용산과 청계천 일대에서 파는 부품을 사다가 조립한 PC를 팔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사업을 하면서 김 회장이 갖게 된 경영 철학은 ‘선택과 집중’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필요성이 작은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되, 잘할 수 있는 분야엔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얘기다. 경영 과정에서 계열사 수를 늘리는 데 급급했다가 수 년 간 낭패를 봤던 개인 경험이 작용했다. “과거엔 ‘덧셈’을 잘해야 좋은 경영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열사든 장비든 하나하나 늘리는 데 집착했죠. 무조건 덧셈만 했다가는 전문성이 떨어지면서 무너지게 된단 걸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국내 일부 재벌들도 무리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여러 번 화를 자초하지 않았습니까. 경영자의 탐욕으로 과잉 투자를 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는 ‘뺄셈’의 경영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김 회장은 지난해 매출이 정체되자 200억원 이상의 연매출을 올리던 반도체 솔루션사업 부문을 정리했다. 비주력 부문의 과감한 구조조정 속에 2013년 359%였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말엔 111%로 낮출 수 있었다.

비록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지만, 바른전자는 두 갈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 시장으로의 본격 진출이다. 이를 위해 올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중국 장쑤성에 신공장을 짓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공장의 4배 규모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한국 공장은 마케팅과 R&D, 고용량·고품질의 제품 고도화에 집중하고, 중국 공장은 자재의 현지화와 제조 경쟁력 강화로 급속히 팽창 중인 중국 시장 수요에 대응하는 투 트랙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 일본, 다시 한국으로 세계 반도체 패권이 넘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는 중국이 그 패권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며 “중국 내부에 들어가 원가는 절감하면서 이익 실현을 극대화해야 향후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

부채비율 2년 새 359%→111%

다른 하나는 사물인터넷(IoT) 분야 신사업 강화다. ‘얍(YAP)’이 2014년 개발한 ‘비콘’은 고주파와 블루투스의 장점을 결합해 정보 도달거리와 정확성을 강화하고, 대용량 데이터 수신을 원활하게 한 단말기다. 비콘은 인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얍(YAP)’에 납품돼 편의점과 서점 등 7만여 곳의 가맹점에서 활용 중이다. 반경 50m 안의 소비자 위치를 탐지,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서면 맞춤형 할인 쿠폰이나 메시지를 전송한다. 제품 정보 제공과 결제 등의 기능도 갖췄다. 김 회장은 이런 IoT를 회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이자, 회사의 미래를 바꿀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집중 육성하려 하고 있다. “매출의 30%는 신성장 사업에서 나오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해는 기존 사업과 신성장 사업 간의 비율이 9대 1 정도였지만 올해부터는 7대 3 정도로 가져가려 합니다. 최근엔 드론 같은 신기술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결국은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가는 분야이니까요.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각화 노력을 이어가는 한편, 주력 사업과 관련이 깊은 신사업으로 반도체 불황을 계속 극복하고자 합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337호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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