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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택 전 산은 회장의 폭로전, 왜?] 부실 책임 비판에 방어막 쳤나 

대우조선 지원 책임에 대한 진실게임 양상... 용두사미 식 논란에 그칠 수도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홍기택(64) 전 산업은행 회장의 폭로성 발언이 대우조선 해양 지원 책임에 대한 진실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계기는 6월 8일자 경향신문 인터뷰다. 경향신문은 현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인 홍기택 전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대우조선에 대한 4조2000억원 지원은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식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야당이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홍 전 회장은 6월 10일 산업은행을 통해 보도해명자료를 내며 진화에 나섰다.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 결정 때 당국 등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며, 지원 규모와 분담 방안 등은 관계기관 간 협의조정을 통해 이루어진 사항’이라는 게 골자다. 홍 전 회장은 “(경향신문) 기사는 공식 인터뷰가 아니라 5월 말경 해당 언론사와 AIIB 관련 세미나 협조를 위한 환담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홍 전 회장은 경향신문뿐만 아니라 한국일보·한국경제신문과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5월 30일자 한국일보 ‘청와대 서별관회의 때 산업은행은 린치 당했다’, 6월 4일자 한국경제신문 ‘靑 서별관회의서 무조건 따르라 압박’이라는 기사다. 당시 두 매체는 ‘산은 전 고위 인사’라며 익명으로 전했지만 경향신문이 실명으로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자 후속 보도를 통해 익명으로 인터뷰했던 사람이 홍기택 전 회장이라고 공개했다. 이들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은 각각 한국일보 5월 27일, 경향신문 5월 31일, 한국경제신문 6월 2일이다. 홍 전 회장이 일주일 새 국내 중앙일간지 3곳을 만나 ‘대우조선 지원이 정부 주도로 이뤄졌고, 산업은행은 정부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는 얘기다.

관료 주도 구조조정에 자존심 상했나


그가 인터뷰를 하기 직전인 5월 26일은 산업은행이 3년 간 4조5000억원을 지원한 STX조선해양을 법정관리에 보내겠다고 공식 발표한 날이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10월 정부가 4조 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대우조선해양이 ‘제2의 STX조선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산업은행을 향한 여론의 ‘혈세 퍼주기’ 비판이 거세졌다. STX조선과 대우조선 지원 결정 당시 산은 최고경영자(CEO)였던 홍 전 회장 책임론도 컸다. 더구나 대우조선 분식회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고, 감사원의 산업은행 감사 결과 발표도 예정된 상황이었다. 의도적인 인터뷰가 아니라는 홍 전 회장의 해명에도 금융권에서 ‘작심하고 폭로전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홍 전 회장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실 책임 비판에 대해 방어한 격이 됐다.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였던 홍기택 전 회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 경제정책 조언을 하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명박(MB)정부 때는 당시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현 국가미래연구원장) 등과 함께 박근혜 캠프의 경제공부 모임에 참여했다. 이후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에 임명됐다. 이 때 그가 맡은 핵심 업무가 정책금융 체제 개편이다. 당시 인수위는 MB정부 시절 추진한 산은 민영화 정책을 백지화하고 산은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하는 내용의 구도를 만들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정권 내부에서 당시 산은금융지주 회장(이후 산업은행 회장으로 직함 변경)으로 그를 내정한 건 인수위에서 그린 밑그림을 실천에 옮길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정책금융 개편에 힘을 쏟기도 전에 임기 초반부터 기업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야 했다. 당시 재계 서열 13위였던 STX그룹이 경영난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산업은행은 STX조선해양·STX팬오션 등 STX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채권은행이었다. 청와대·금융당국이 주도하고 산업은행이 이를 실행하는 구조조정 결정 구도를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홍 전 회장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토로한 이유다.

당시 정부와 산은은 STX그룹의 모체인 STX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채권단 자율협약 체제로 회생시키기로 결정했다. ‘법정관리에 보낼 경우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에 주는 충격이 크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는 전형적인 대마불사(大馬不死) 논리였다. 자율협약에는 홍 회장도 동의했다. “회계법인 실사 결과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홍기택 회장은 STX팬오션 구조조정 방향을 놓고 정부와 부딪혔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측 참석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돌아가면서 산은이 STX팬오션을 떠안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반면 홍기택 회장은 STX팬오션을 법정관리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결국 정부가 한 발 물러서면서 STX팬오션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14년에는 동부그룹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산은과 동부그룹은 1년여 간의 줄다리기 끝에 동부제철은 채권단 자율협약 체제로, 동부건설은 법정관리 체제로 구조조정을 하게 됐다.

그러고 나서 지난해 6월 터진 것이 대우조선 부실이다. 새로 부임한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이 “과거 발생한 해양플랜트 손실이 있다”고 공개하면서 대우조선 부실이 현실화됐다. 결국 7월부터 정부와 산은은 다시 서별관회의를 통해 유상증자·신규대출 등을 통한 지원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진행 과정은 STX조선해양과 흡사했다. 정부가 ‘대마불사’ 논리 속에 “일단 살린다”는 대명제를 정했고 이후 실사를 통해 지원 방식과 규모를 가늠했다. 이에 대해 홍기택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서별관회의에서 정부가 작성한 정상화 방안에 대주주인 산은과 최대 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의 부담비율이 다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한 정책금융기관 임원은 “정권 창출 공신이었던 홍기택 전 회장으로서는 STX조선 때에 이어 또다시 관료들이 주도하는 정책에 끌려가는 듯한 양상에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홍기택 전 회장은 이처럼 구조조정 실권이 없었다고 강조하면서도 대우조선과 STX조선 지원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었다.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파장은 더 컸을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구조조정 담당자는 “지원 결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부정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발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 “지원 자체의 문제는 없었다” 한 발 물러서

정부는 홍 전 회장의 잇단 발언을 일축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 위원장은 6월 8일 구조조정 추진계획 브리핑에서 “아무런 협의 없이 진행한 것처럼 비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연적인 이해 조정을 내가 했고, 대우조선 지원 규모는 산은과 내가 주도해 정했다”고도 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서별관회의 청문회’가 개최될 경우 정부와 홍 전 회장 간의 진실공방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실제 압박이 있었다면 문제가 될 것이고, 정부는 조정을 했다는데 홍기택 전 회장이 그걸 압박으로 느꼈다면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용두사미’식으로 논란이 사그라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1341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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