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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의 청년실업률 통계 논란] 현실과 따로 노는 통계청 수치가 더 문제 

연구원 vs 통계청 격차 10%포인트 넘어 … 통계청장 “국제 기준 어긋난다” 반박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1. A씨는 지난 2년 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뒀다. 조직생활에 지쳐서다. A씨는 적어도 1년 동안은 구직활동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푹 쉬면서 향후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할 생각이다.

#2. B씨는 한 대학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간단한 사무보조 업무로 향후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퇴근 후엔 열심히 취업을 준비한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면 지금의 일은 언제든 그만 둘 계획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실업자를 이렇게 규정한다. ▶지난 1주 동안 일을 하지 않았고(Without work) ▶일이 주어지면 일을 할 수 있고(Availability for work) ▶지난 4주 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수행한(Seeking work) 사람. 한국에서 실업률을 집계하는 통계청도 이 정의를 따른다.

그렇다면 A씨와 B씨는 어떨까? A씨는 실업자가 아니다. 일을 하지 않고 있는데 실업자가 아니라고? 대신 A씨는 ‘비경제 활동인구’로 분류된다. 4주 간 구직활동을 안 했기에 실업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실업 통계 계산에서 아예 제외된다. A씨는 당장 취업 의사 없이 쉬고 있어 사실상 잠재적 실업자이지만 통계 계산에서 빠져 통계상 실업률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B씨는 ‘엄연한’ 취업자다. 비정규직이고 사실상 아르바이트에 가깝지만 취업자로 분류된다. B씨의 경우 자신이 스스로 취업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통계상으로는 직장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인 정서와 통계 간에 거리가 있다.

이래서 통계가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의 5월 실업률은 3.7%다. 15세 이상 한국 국민 대부분이 취업을 했다는 얘기다. 이론적으로는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깝다. 청년(15~29세)실업률은 9.7%다. 청년 10명 중 1명만 실업 상태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이태백(20세 태반이 백수)’, ‘광탈(빛의 속도로 채용 과정에서 탈락한다)’과 같은 비관적 신조어가 일상화될 만큼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현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숫자다.

34.2% vs 8% 누구 말이 맞을까


이런 가운데 한 민간 연구기관이 내놓은 실업 통계가 주목을 끌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체감 청년실업률이 34.2%에 이른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 기준으로 삼은 지난해 8월 통계청의 청년실업률은 8%였다. 현대 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수치와는 큰 격차를 보여준다.

두 기관의 지표가 이렇게 다른 건 어디까지 실업자로 보느냐의 관점 차이 때문이다. 통계청의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를 실업자로 나눈 개념이다. 경제활동인구는 현재 취업을 하는 이와 구직을 준비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학생이나 주부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A씨처럼 당장 구직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아도 향후에 취직 의사가 있는 이들 역시 비경제활동인구 범주에 속한다. 4주 안에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해야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업률 통계에서 빠진다. 마찬가지로 ‘구직단념자’의 경우도 경제활동인구가 아닌 걸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들 중에 역시 향후 취업을 하려는 의지를 가지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럼에도 이들 역시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 대상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사실상 실업 상태에 놓여있는 이들이 실업률 통계에서 빠지게 된다. 실업률이 현실보다 낮게 나타나는 이유다.

이런 지적이 계속됨에 따라 통계청이 따로 계산하는 게 고용보조지표다. 지난해 1월부터 매달 발표하고 있다. 세 가지다. ‘고용보조지표1’은 공식 실업자에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취업 준비생)를 포함시킨다. ‘고용보조지표2’는 공식 실업자에 잠재취업가능자와 잠재구직자 등을 나타내는 잠재경제활동인구를 더한다. 입사시험 준비생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고용보조지표3’은 공식 실업자에,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와 잠재경제활동인구를 모두 고려한다. 이 수치가 지난 8월 기준 22.6%다. 사실상 체감 실업률인데 통계청은 공식적으로 “체감실업률과 고용보조지표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여기에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그냥 쉬고 있는 청년’까지 실업률 통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청년들의 경우 임금뿐 아니라 공적연금이나 고용보험, 교육훈련 등에서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열악하다”며 “이들 비정규직 청년과 함께 ‘그냥 쉬고 있는’ 청년들도 사실상 실업 상태”라고 말했다.

통계청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이례적으로 유경준 통계청장이 직접 기획재정부 기자실을 찾아 강한 어조로 현대경제연구원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유 청장은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고용보조지표는 ILO에서 수년 간의 연구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도출한 기준에 따라 작성된다”며 “이를 도외시하고 성격이 다른 여러 지표를 임의로 확대·혼합해 체감 실업률을 산출하는 방식은 자의적일 뿐 아니라 국제 기준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가 통계도 체감 수치와 동떨어져

실제 일각에서도 현대경제연구원의 주장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 등 근로환경이 열악하다고 이들을 아예 실업자로 분류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데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을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와 똑같이 분류하는 것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가 울림을 가지는 이유는 그만큼 청년 고용 시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10%도 안 된다는 정부의 공식 청년실업률 발표보다 34.2%라는 현대경제연구원의 수치가 고용 상황의 진실에 더 근접해 보이는 게 현실이다. 이에 실제 고용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는 불신만 자초하는 만큼 통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졸업을 미루고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취업준비생, 노량진 학원가에 넘쳐나는 공무원시험 준비생은 실업자가 아니라는 통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처럼 현실과 괴리가 큰 통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물가 통계가 대표적이다. 물가상승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해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지만 서민들은 전혀 저물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계에 대한 신뢰가 계속 떨어지면 국민이 믿지 않게 된다”며 “그러면 그 통계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1341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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