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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철도원]의 ‘사유화의 비극’ 

민영화 탓에 사회적 고통이 커지는 현상... 지적재산권에서도 과도한 사유화 문제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2013년 10월 26일 서울 동자동 서울역 광장에서 전국철도노조가 ‘KTX 민영화 반대 3차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너무나 그리운 사람은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라도 꼭 만나게 되는 것일까. 일본 소설과 영화에는 유독 망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엄마가 찾아오고,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는 소꿉친구가 나타난다.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은 철도원의 딸이 찾아온다. 1997년 출간된 [철도원]은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17년 전 눈 내리던 날, 태어난 지 두 달 째인 유키코가 감기에 걸려 죽는다. 호로마이역 역장인 오토마츠는 딸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다. 그날도 오토마츠는 철도원으로서 철도역을 지켜야 했다. 그는 아픈 딸을 안은 아내가 탄 기차를 수신호로 떠나 보냈다. 그날 밤 유키코는 모포에 말려 차디찬 몸이 돼서 돌아왔다. 병원 하나 없는 마을에서 태어나 문풍지 바람이 끊일 새 없었던 사무실 겸 살림방의 추위를 어린 것은 견디지 못했다. 오토마츠는 딸에 대한 죄책감에 평생 시달린다.

누적 적자 커져 민영화

딸의 열 곱번 째 생일 전날 저녁, 한 여자아이가 셀룰로이드 큐피 인형을 역 대합실에 두고 간다. 키가 요만하고 아주 예쁘장한, 빨간 가방을 맨 아이였다. 벽시계가 밤 열두 시를 치자 빨간 머플러를 두른 또 다른 여자아이가 매표구 앞에 나타난다. 전날 저녁에 본 아이보다 키는 조금 크지만 외꺼풀의 눈매가 꼭 닮은 아이였다. 열두 살이라고 밝힌 이 아이는 곧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음날 오후 갈래머리의 여고생이 역에 나타난다. 청색의 하얀 리본이 달린 세일러복을 입은 이 여고생은 오토마츠를 위해 밥을 짓는다. 그날 밤 호로마이에는 시간도 장소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큰눈이 내린다.

호로마이는 메이지 시대부터 홋카이도 제일의 탄광촌이었다. 호로마이역도 증기기관차가 석탄을 가득 싣고 쉴새 없이 왕복하는 위세 당당한 역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탄광이 폐쇄된 지 벌써 10년 째다. 이제는 100여 가구만 사는 초라한 산골이 됐다. 호로마이역에는 아침과 저녁, 고등학교 등하교 전용 단행 기차만 오간다. 한량짜리 기하12형 기차다. 1952년에 제작된 낡은 기차로 거의 문화재급이다.

오토마츠는 마음이 허하다. 2년 전 아내가 죽으면서 홀로됐다. 45년을 근속한 그는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다. 석 달 후면 호로마이선도 폐선된다. 호로마이선이 폐선되는 이유는 적자 때문이다. 일본 국철이 분할 민영화되면서 호로마이선은 ‘홋카이도 여객철도’로 넘어갔다. 홋카이도 철도는 더는 적자를 견딜 수 없었다. 젊은 기관사는 말한다. “호로마이선이 언제 수송 밀도니 뭐니 따져가면서 운행했나요. 고등학교 방학 때는 항상 이랬잖아요. 근데 이제 와서 왜 새삼스럽게 노선을 폐지한다고 하느냐고요.” 베테랑 철도원인 센지가 답한다. “난들 알겠나.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과거의 실적을 크게 쳐준 것이겠지”

산골마을에 기차는 주민들의 이동을 돕는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폐선이 되면 주민들의 불편이 커진다. 때문에 국영철도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서라도 이 노선을 유지한다. 하지만 민간철도는 다르다. 적자를 보면서까지 노선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영철도는 국영철도처럼 공공성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돈이 되는 노선은 집중 투자해 많은 수익을 걷어간다. 만약 경쟁이 없는 독점 노선이라면 가격을 한껏 올릴 수도 있다.

주인이 없는 공유자원 혹은 공공재는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 사유화를 시켰지만, 사회적으로 도리어 고통이 커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사유화의 비극’이라고 한다. ‘사유화의 비극’은 공유자원을 마음대로 써버려 고갈되는 현상인 ‘공유지의 비극’에서 빗대 나온 말이다.

물·전기·수도·공공교통 등은 충분한 대가를 받지 않고 특정인에게 넘겨주면 인수자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게 된다. 공공 서비스는 가격이 높아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많다. 가격탄력성이 낮다는 말이다. 물이나 전기, 수도, 공공교통 등은 가격이 올랐다고 사용을 거부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물과 전기를 써야 한다. 사용자로서는 정당한 시장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 또 다른 비효율이 생긴다.

민영화가 되면 물값·철도요금·전기요금 등이 오를 것이라는 ‘민영화 괴담’이 있다. 충분한 경쟁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개연성 있는 괴담이다. 민간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이권이 막대하다 보니 민영화에는 종종 특혜시비가 나온다. 정치권에 대한 로비, 혹은 뇌물수수 얘기도 유독 많이 나온다.

인생을 바친 철도 노선 폐선에…

의료도 논란이 되는 분야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차별없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영리병원들은 돈이 되는 사람의 치료에만 집중할 우려가 크다. 너도나도 수익성 높은 의료에만 몰리면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된다. ‘유전무병, 무전유병’이 된다. 의료는 분명히 공공적 성격이 강하지만, 과도하게 공공성을 강조하기도 어렵다. 의료인들의 근로욕구를 떨어뜨려 되레 의료서비스가 위축될 수도 있기 대문이다. 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의료기구 개발에는 항상 돈이 따른다. 민간은 돈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에볼라 바이러스나 메르스 치료제가 빨리 나오지 않는 이유는 가난한 나라에서 주로 발병하는 병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사유화도 ‘사유화의 비극’을 부른다. 만약 안드로이드가 개방형 OS가 아니었다면 스마트폰 시장이 단시간에 급격히 커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나 안드로이드를 OS로 쓸 수 있도록 하면서 스마트폰 후발주자들이 애플에 맞서 새 제품을 낼 수 있었다. 특허권·초상권·상표권 등도 과도하게 보호해주면 관련 산업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철도원 오토마츠 앞에 나타난 세 명의 여자아이는 17년 전 죽은 딸, 유키코의 유령이었다. 유키코가 살았다면, 그렇게 차례차례 컸을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준 것이다. 오토마츠는 딸과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낸다. 다음날 오토마츠는 플랫폼의 홈끝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평생을 함께 했던 아내는 죽고, 인생을 바쳤던 철도원은 정년퇴직을 맞고, 평생을 몰았던 호로마이선은 폐선당하는 상황에서 오토마츠는 삶을 더 이어갈 의미를 찾지 못했을지 모른다.

만약 홋카이도 여객철도가 여전히 국철이었다면 호로마이선 폐선을 막을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이 호로마이선 폐선을 반대하지만 민간기업인 홋카이도 여객철도는 결국 폐선을 결정한다. 그렇다고 오토마츠가 회사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된 적자 속에서도 본사가 폐선을 하지 않고 버텨온 데 대해서는 고마워한다. 오토마츠는 “호로마이선과 함께 은퇴할 수 있어서 철도원 치고는 복 받은 사람”이라며 자위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억지를 부려 적자투성이의 호로마이선을 그대로 밀고온 만큼 회사로부터 퇴직금이나 연금은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근로자를 생각하고, 근로자는 기업을 배려하는 기업문화, 이런 풍토에서라면 ‘사유화의 비극’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343호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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