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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남녀 권태기 극복] 피할 수 없으면 극복하라 

숨은 갈등에 서로 솔직해져야... 아옹다옹 다투며 인간답게 사는 법도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그는 최근 입사했다. 대학 졸업 후 힘들었던 2년 여 청년 백수시기를 잘 견뎌내고, 드디어 선망받는 직장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에게는 대학 1학년 때부터 8년 간 사귄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있다. 군대와 백수 시절, 졸업과 함께 직장을 얻은 다부진 그녀에게 경제적·심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원하던 직장에 입사한 것도 그녀의 도움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입사 8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직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마음을 설레게 한 때문이다. 직장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집에 간다. 새로운 동료·선배와의 관계 또한 설레게 하는데, 특히 예쁜 이성 동료와 멋진 이성 선배와의 교류가 직장생활의 기쁨을 배가한다.

새로운 직장, 색다른 관계에 매료돼

최근 그는 여친을 만날 때마다 자주 싸우게 된다. 자신의 감정이 전달되는지, 그녀가 기분 나빠할 때가 많다. 더구나 현재 그녀는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 오랫동안 꿈꿔온, 공부할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언제 귀국할지 모를 유학을 가려고 한다. 결국 둘 사이에 결혼 문제가 불거졌다. 남자 집에서는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여자 집에서는 나이가 있으니 유학을 포기하라고 한다. 그는 여친의 결정을 따르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유학 갔다 와서 하자고 한다.

그의 새로운 환경과 그녀의 진로 문제는 둘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만들었다. 그는 여친과의 감정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친은 그가 많이 변했고,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자주 화를 낸다. 반복적인 탓에 이젠 짜증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크게 싸우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가 변한 것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다양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하루하루 보낸다.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 땅에 기어가는 개미, 신기한 모양의 돌멩이, 고사리 손 같은 빨간 단풍 등 자연의 신비에 흠뻑 젖어 산다. 그런데 어느 날 몸에 성호르몬이 돌게 되면, 우리의 관심과 흥미는 오직 하나로 집중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향한다. 서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속이 달아오름을 느낀다. 우리는 성(性)을 느끼는 순간부터 성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남자와 여자는 처음 사랑에 빠질 때 마법에 걸린다. 다른 점이 끌리고, 같은 점에 하나 된다. 장점은 돋보이고, 단점에 눈먼다. 헤어지면 보고 싶고, 사소한 것까지 궁금하다. 그런데 3년이면 마법이 풀린다. 불행히도 케미컬의 약발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른 점이 짜증나고, 같은 점에 싫증난다. 장점은 안 보이고, 단점에 눈뜬다. 만나면 지루하고, 궁금증은 사라진다. 권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성의가 없어지고 자기 일에 바쁘며, 자꾸 비교하고 자주 다투게 된다.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요, 결혼하지 말라 후회할 것이다.”

남녀관계는 인간관계다. 케미컬의 약발이 떨어지는 순간, 진정한 인간관계는 시작된다. 우리는 심리적·사회적·영적인 존재다. 인간관계는 변화무쌍하다. 여름이 있는가 하면 어느새 겨울이 오고, 비가 오는가 하면 어느새 햇볕이 난다.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고, 계곡이 있으면 산이 있다. 우리는 변화의 세계를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인간관계에서 한 계절에만 머물려는 것은 어리석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화와 화목과 고립이 바뀌는 것을 탓하지 않고, 매 계절마다 용기 있게 뛰어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권태는 반복되는 일상과 단조로운 환경에서 온다. 게으름·나태함·지루함·나른함은 인간의 본성이다. 권태는 변화를 위한 서곡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고, 안정감에서 벗어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권태는 성장과 성숙을 위한 이정표다.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전에,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다. 권태는 삶 자체가 던지는 메시지이다. 다람쥐 쳇바퀴에 길들여진 ‘무엇’을 깨고, 새롭게 탄생하는 ‘자기’를 찾는 것이다. 사회가 요청하는 ‘나 아닌 나’가 되는 길에서 돌이켜, ‘진짜 자기(本來面目)’를 찾으려는 용트림이다.

남녀관계는 불안정한 인간관계다. 케미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불같이 타오른 사랑이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절정의 행복은 권태의 공허로 떨어질 수 있다. 남녀관계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권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익숙함은 무관심으로, 안심은 싫증으로 돌변한다. 더구나 연애는 결혼과 달리 언제든지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관계의 안정을 위해서는 유대감이 필수적이다. 인간관계는 노력한 만큼 성장한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다.

이제, 그에게로 돌아가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좀 더 솔직해지자. 싸움의 원인은 숨겨진 갈등에 있다. 그는 혼란으로 가장하고 있다. 힘없던 시절 도움 받은 것이 버겁다. 이참에 주도적인 그녀와 떨어져 있고 싶다. 집에서도 결혼을 미루라고 한다. 그녀는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다. 처지를 이해 안 하는 남친이 섭섭하다. 그동안 도운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동한다. 집에서는 결혼을 서두르라고 한다. 동갑내기 결혼은 여자가 항상 불리하다. 그렇다고 여자 쪽에서 유학 전에 결혼을 재촉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마음을 터놓는 대화가 필요하다!

결혼이란 혼자 사는 듯 더불어 사는 것

둘째, 권태기를 점검하자. 싸움의 원인은 권태기에 있다. 둘은 아주 오래 만났다. 열정·호기심·신비로움은 이미 퇴색했다. 권태기가 처음은 아닐 것이다. 권태기는 보통 한 쪽에서 온다. 그런 경우, 기다리면 모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매료되고 있다. 여친을 주위 여자와 비교하고 있다.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 고민하고 있다. 유학과 결혼, 둘 다 포기하기 어려운 과제다. 양쪽 모두 권태기가 왔다면, 사랑의 종말이 예고된다. 다행히 둘은 크게 싸우고 있다. 좋은 징조다! 싸움은 무관심보다 낫다. 주말에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둘만의 추억의 장소로 가보자. “피할 수 없으면 극복하라.”

셋째, 좀 더 신중해지자. 결혼은 인륜대사(人倫大事)다. 둘은 중요한 인생의 고비를 넘기고 있다. 8년 동안의 경험은 소중하다. 인간관계의 사계절을 겪었을 것이다. 관계의 지혜가 필요하다. 결혼이란 혼자 사는 듯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혼자 사는 것은 무엇인가? 각자 원하는 것을 하는 자유와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다. 동시에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듯이, 가정과 사회 속에서 유기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1+1>3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연애의 클라이맥스는 지났다. 아옹다옹 다투며 인간답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요, 결혼하지 말라 더 후회할 것이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346호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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