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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쓴맛에 숨은 단맛의 절묘한 조화 

 

서영수
덩샤오핑 “쿠딩차가 건강 유지의 비결”... 해갈·인후염에 효과

▎어린 잎을 하나씩 말아 만든 쿠딩차.
쿠딩차(苦丁茶)는 쓰디 쓴 음식의 대표 선수로서 ‘쓸개차’라고도 한다. 쿠딩차는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가 아닌 대용차(代用茶)다. 쿠딩차의 첫 맛은 웅담처럼 쓰지만 나중에 쓴맛을 이겨내고 단맛이 살짝 올라오는 반전 매력이 있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배한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20년 동안 매일 쓸개를 씹어가며 복수의 기회를 만들어 나라를 되찾고 천하를 재패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일화처럼 덩샤오핑도 쿠딩차를 매일 마시며 정치적 위기 때마다 극적인 컴백을 도모했다.

쿠딩차가 웅담처럼 쓴맛을 내는 이유는 쿠딩차 성분 속에 22%나 차지하는 사포닌 때문이다. 단맛을 내는 아미노산은 불과 1.4%에 불과하다. 쓴맛 속에 단맛이 숨어있는 쿠딩차를 열차 안에서 천천히 씹어 삼키는 88세의 덩샤오핑은 부도옹(不倒翁, 오뚜기)이라는 애칭답게 다시 한번 승부수를 걸어야 했다. 1989년 탱크로 진압한 천안문 민주화 사태의 후폭풍으로 모든 공식 직함을 내려놓고 일개 평당원 신분이 된 덩샤오핑은 개혁 반대 세력의 반발과 외면 속에 1992년 1월 18일 베이징 기차역을 출발해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강행했다.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받는 장쩌민(江澤民)은 중앙 언론의 보도통제와 당 차원의 도착지 환영행사를 금지하며 덩샤오핑의 남방시찰을 폄하했다.

쿠딩차보다 더 쓴 인생사 맛본 덩샤오핑

쿠딩차보다 더 쓴 인생사를 맛본 덩샤오핑이지만 생애 마지막 도전인 개혁개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첫 번째 남방시찰지인 후베이성 우창에서 덩샤오핑은 당시 중국의 화두였던 싱쯔싱서(姓資姓社,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에 대해 후베이성 관광푸 서기와 궈수옌 성장에게 “제대로 알지도 겪어보지도 못한 자본주의와 원래 우리 것도 아닌 사회주의 논쟁이 중국의 미래를 위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되물으며 “농촌에서 사회주의를 가르치는 일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자는 모두 관직을 내려놓아라”고 언성을 높이며 장쩌민을 비롯한 베이징의 중앙정부를 공격했다. 다음 날 선전 특별구에서 덩샤오핑은 “정치 투쟁만 일삼는 베이징은 이곳에 와서 경제를 배워라”며 장쩌민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군부의 절대적 지원을 받는 덩샤오핑의 최후통첩은 장쩌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쿠딩차의 탁월한 약리작용은 고령에도 담배를 즐겨 피운 덩샤오핑의 약해진 기관지를 보호해줬다. 2000년 전부터 인체의 노폐물과 독소 제거용으로 쿠딩차를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 최초의 차 백과사전을 편찬한 육우는 ‘쓴 맛 속에 단맛이 숨어있으며 보건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차경(茶經)]에 기술했다. 중국 한약재의 집대성이라고 일컬어지는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도 ‘해갈과 인후염에 효과가 있으며 가래를 삭인다’는 효능을 적시해놓았다. 황실 공납품으로 진상된 쿠딩차는 현대의 중약대사전(中藥大辭典)에도 약재로 등재돼 있다. 쿠딩차의 단맛을 느끼려면 반드시 쓴맛을 먼저 겪어야 한다. 금수저가 아닌 사람들은 맨손으로 삶을 개척하며 힘들 때마다 좌절 방지용으로 고진감래를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가 쿠딩차 한 모금에 드라마틱하게 축약돼 있다.

쿠딩차를 매일 마신 덩샤오핑은 중국에서 최초로 차를 인공 재배한 쓰촨성 출신이다. 쓰촨의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쿠딩차는 청산녹수(靑山綠水)라 부른다. 청산녹수는 소엽순 나무의 잎을 사용하는데, 비교적 쓴맛이 적고 잎도 작다. 중국 남부지방에서 폭넓게 서식하는 10여종의 동청과 나뭇잎을 원료로 사용하는 쿠딩차는 대엽종과 소엽종으로 분류하거나 장엽종·묘엽종·소엽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덩샤오핑은 광동성에서 생산된 쿠딩차를 좋아했다. 광동사람들은 차 마시는데 찻잎 하나면 충분하다고 해서 쿠딩차를 일엽차(一葉茶)로 불렀다.

실내에서 말린 쿠딩차가 으뜸


▎1. 쿠딩차의 원료 기지인 동청나무 숲. / 2. 쿠딩차 생산의 새로운 명소는 하이난다오 중앙에 자리한 우즈산 일대의 청정 고산지대다. / 3. 덩샤오핑은 “건강 유지 비결은 쿠딩차를 많이 마신 덕”이라고 말했다.
쿠딩차는 중국의 소수민족 장족이 모여사는 광시성장족자치구에서 생산된 야생 쿠딩차가 예전부터 유명하다. 이곳은 파리와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덩샤오핑이 1929년 농민폭동을 주도하며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낸 장소다. 쿠딩차 생산의 새로운 명소는 하이난다오 중앙에 자리한 우즈산 일대의 청정 고산지대다. 하이난다오 야생 쿠딩차는 수공업으로 만들어진다. 무공해 방식으로 관리하는 재배종도 품질이 좋다. 쿠딩차의 맛과 품질은 시들려 말리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햇빛을 피해 실내에서 말린 쿠딩차가 으뜸이다. 햇빛과 열을 가해 말린 쿠딩차는 맑은 맛이 적고 품질이 균일하지 않아 등급이 떨어진다.

쿠딩차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신 덩샤오핑은 찻잔을 내려놓고도 한참 동안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1992년 2월 21일 남방시찰의 종착지인 상하이는 비가 내리는 악천후였지만 장쩌민을 필두로 중앙당정치국원 전원이 군사령관들과 함께 도열해서 덩샤오핑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수 좌파세력을 압도하고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의 완승이었다. 장쩌민의 개혁의지를 믿지 못한 덩샤오핑은 49세에 불과한 후진타오를 장쩌민 이후의 지도자로 일찌감치 지목하는 초강수를 뒀다. 덩샤오핑의 이런 설계도가 없었다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오늘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쿠딩차가 유명해진 계기는 90세가 넘은 덩샤오핑이 창장(長江)에서 수영으로 강을 건너며 노익장을 과시한 후 기자들에게 “건강 유지 비결은 쿠딩차를 많이 마신 덕”이라고 말하면서부터다. 이날부터 쿠딩차는 덩샤오핑차로 소문나며 중국 전역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쿠딩차를 좋아한 덩샤오핑의 고진감래는 그가 죽어서도 유지가 이루어지는 멋진 마무리였다. 어촌이라 불리기에도 민망했던 바닷가 마을 선전이 개혁개방의 최전선으로 선정돼 발전을 거듭한 2016년 현재 6㎡에 불과한 초소형 아파트 가격이 1억5000만원을 넘어가도 매진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단일 건물로 세계 1위였던 두바이 국제공항(171만㎡)을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로 등극한 글로벌센터가 중국 쓰촨성 청두에 들어섰다. 롯데백화점도 입점해있는 글로벌센터(176만㎡)는 가로 500m, 세로 400m, 높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직사면체 구조다. 글로벌센터의 소유주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딸이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55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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