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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묘수는 상식의 저편에 있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실현 가능성 희박해도 발상의 전환 필요 … 정석에 매몰되면 창의성 떨어져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은 ‘빈삼각의 묘수’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묘수를 좋아한다. 묘수는 절묘한 수로, 놀라운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불리한 상황에서 묘수가 나온다면 형세를 크게 반전시킬 수 있다. 비즈니스나 일상생활에서도 묘수를 발견한다면 한 걸음 도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묘수를 쉽사리 발견하지 못한다. 상식을 넘어서는 곳에 묘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묘수 발견의 즐거움: 바둑에는 수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악수나 이적수 등은 나쁜 수를 가리킨다. 정수나 호수는 좋은 수를 가리킨다. 좋은 수 중에서 절묘한 느낌을 주는 수를 ‘묘수(妙手)’라고 한다. 묘수 중에서도 귀신도 놀랄 만큼 신기한 수를 ‘귀수(鬼手)’라고 부른다. 묘수가 나오면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 그런 수가 있었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실전바둑에서 묘수가 나온다면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예를 하나 보자.

[1도]는 [현현기경]이라는 고전 사활묘수풀이 책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다양한 묘수가 있지만 필자는 이 묘수를 바둑팬들에게 자주 소개한다. 어린 시절 이 묘수를 접했을 때 정말 절묘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북이처럼 생긴 흑돌 속에 백돌 다섯 점이 갇혀 있다. 용궁에 끌려간 토끼 신세와 같다. 과연 이 백돌을 탈출시킬 수 있을까? 보통의 수단으로는 거북이 뱃속에 잡힌 백이 빠져 나오기 힘들다. 백a나 b와 같은 빈틈으로 도망가려고 하기 쉬운데, 이런 시도는 모두 실패다. 그래서 포기하기 쉬우나 백1로 거북이 코에 붙이는 수가 묘수. 이 수에 의해 백은 밖으로 달아날 수 있게 된다. 백1의 묘수를 보는 바둑 팬은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 수가 절묘한 이유는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전혀 엉뚱한 곳을 두어 탈출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변화의 가능성이 별로 없는 좁은 곳에 묘한 수가 있다는 것도 절묘하다.

옛날 중국 원나라 때 이런 묘수풀이 문제를 창안해 냈다는 것이 신기하다. [현현기경]에는 이와 같은 문제가 300개 이상 실려 있다. 이런 점을 보면 중국의 문화적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바둑을 기록한 기보(棋譜) 한 장 남기지 않은 것에 비해 중국에서는 옛날 바둑 묘수풀이를 개발하고 기보와 정석 등 많은 것을 연구했다. 묘수가 감탄사를 수반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묘한 수’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서 도저히 탈출이 불가능해 보이는데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코붙임으로 탈출한다는 것이 절묘하지 않은가. 비즈니스에서도 이런 묘수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적의 묘수: 바둑 역사상 유명한 묘수가 몇 가지 있다.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이 둔 ‘빈삼각의 묘수’도 있다. 역사적인 묘수들 중에서 상대방의 귀를 빨갛게 물들이게 했다는 ‘이적(耳赤)’의 묘수를 소개한다. 먼저 18세기 일본 명인들의 바둑에서 나온 묘수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전국을 통일한 이에야스가 바둑 전문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방에서 오락으로 바둑을 즐기던 시절에 일본에서는 고수들이 공식시합을 하고 전문적으로 바둑을 연구했다. 4대 바둑가문 중 혼인보가의 천재기사 슈사쿠와 라이벌 이노우에 가의 인세키가 대결을 하게 됐다. 인세키는 바둑계 최고 지위인 ‘명인기소’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혼인보가의 젊은 고수 슈사쿠를 꺾어 기회를 잡으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초반에 책략적인 수법을 써서 슈사쿠를 당황케 하며 유리한 바둑으로 이끌었다.


[2도]는 인세키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상황이다. 백이 군데군데 집도 많고 중앙에 세력까지 있어 유리한 형세. 그런데 이 장면에서 흑1의 수가 떨어졌다. 이 수를 당한 인세키의 귀가 갑자기 빨개졌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비범한 수였기 때문이다. 이 수는 평범해 보이지만 상변 흑진을 키우고 중앙 백 세력을 견제하며 아래쪽 흑돌을 응원하는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판로가 생겨나고 신규 자금도 들어와 갑자기 호전된 것과 같다. 게다가 구조조정의 대상이었던 직원들도 일자리가 생겨난 셈이다. 이런 묘수라면 회사 직원들의 얼굴에 홍조를 띠게 할 경영의 묘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슈샤쿠의 이 묘수 이후 바둑의 흐름은 흑 쪽으로 넘어갔고 결국 흑의 승리로 끝이 났다. 슈사쿠는 역대 세 명의 ‘기성(棋聖)’ 중 한 명으로 꼽힌 뛰어난 고수로, 유명한 ‘슈사쿠 포석’을 창안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콜레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상식을 넘어서라: 많은 사람이 묘수를 두고 싶어 하지만 묘수는 흔하게 나오지 않는다. 밥 먹듯이 흔하게 나온다면 그것은 묘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멋진 묘수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사람들은 잘 발견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묘수가 상식을 넘어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매사를 상식적으로 평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묘수가 있어도 지나치기 쉽다. 설마 묘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3도]의 모양을 보자. 백 대마가 흑에게 포위되어 있다. 한 집 밖에 없어 백은 나머지 한 집을 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이 워낙 좁아 한 집을 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백 대마가 죽음이라고 단념하기 쉬운데 실은 멋진 묘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백1로 흑돌의 호구(虎口)에 들어가는 수다. 호랑이 입을 뜻하는 ‘호구’는 들어가면 잡히기 때문에 초보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바둑용어 ‘호구’는 바보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호구에 들어가는 수가 이 모양에서 백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묘수라니! 호구에 들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호구’ 같은 짓이라는 평범한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이 묘수를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아예 이런 수를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묘수들은 이처럼 상식을 넘어선 곳에 있다.

물론 ‘2의 1의 묘수’나 ‘좌우동형의 묘수’와 같이 자주 나오는 묘수자리도 있다. 비즈니스에도 이처럼 흔한 묘수가 있다. 예를 들면 ‘물 들어올 때 배 대라’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사업에 호기가 왔을 때 빠르게 대처하면 막대한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수지만 호기가 오는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외로 좋은 묘수가 될 수도 있다.

묘수가 상식의 저편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상식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하고 있는 방식이 모두 정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틀에 박힌 사람이다. 이처럼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56호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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