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트럼프 시대 미국의 과제] 국가 분열 치유, 경제적 양극화 해소 급해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2년 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재평가... 보호무역 강화로 서민층만 피해 볼 수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11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후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회동했다. /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한 2016년 미국 대선은 이민자와 세계화에 반감을 보이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이민자 3세인 트럼프의 모순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경선 기간 중에는 물론 대선 유세 기간 중에도 인종차별적 발언에 이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막말과 말실수, 그리고 국가 현안과 국제 문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인기가 꺾일 줄 몰랐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이오와주립대 스티븐 슈미트 교수(정치학)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내걸었던 ‘자유무역 반대’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개념은 그동안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디도 외쳤던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이단자’로 불리는 트럼프만의 개념이다. 이런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준 것은 미국 유권자들이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독자 세력’의 손을 들어준 획기적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경제의 주인공에서 주변 세력으로 밀려나 ‘점차 잊혀져 가는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황당해 하는 사람이 많지만 어찌됐든 이는 현실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앞으로 열릴 트럼프 시대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의 미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를 제대로 분석해야 앞으로의 대처 방안도 마련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극복해야 할 최대의 과제는 단연 국가적 분열이다. 트럼프가 이런 이들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에 당선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은 심각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내부 분열을 겪었다. 이제 트럼프는 대통령에 오르기 전 정권 인수 과정에서도 여성과 이민자들, 소수 인종, 그리고 젊은 유권자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 반에 불과하다. 2년 후 중간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분노와 증오의 정치가 업보 될 수도


▎지난 1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반대하는 젊은층의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트럼프를 버려라' 등의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 사진:뉴시스
트럼프의 시작은 일단 좋다.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원의원 3분의 1과 하원의원 전원 선거에서 미국 공화당이 승리해 의회까지 장악했다. 하지만 앞으로 2년 동안 미국을 제대로 봉합하지 않으면 201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싱크홀처럼 바닥에 내려앉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원과 하원은 물론 상당수 주지사 자리까지 민주당에 내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는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 연설에서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발언한 것은 이런 냉혹한 현실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법이민자 200만 추방, 멕시코 국경에 장벽 쌓기 등 기고만장했던 공약이 이른 시일 안에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국내 정치를 위해 우선 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을 상대로 하는 보호무역주의의 움직임은 가시화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로선 손해 볼 게 없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야 내부 지지자 결집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트럼프식 정치다. 그러나 선거에서 극대화한 미국의 국가적 분열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면 2년 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세 과정에서 분노와 증오의 정치를 일삼았던 트럼프의 업보다.

사실 미국 사회는 이번 대선을 치르기 전부터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분열돼 있었다. 최대 요인은 경제적 양극화다. 인구 3억 2000여만 명의 미국은 사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통계 기준 17조3480억 달러로 세계 1위다. 세계 GDP의 22.45%를 차지한다. 2위인 중국(10조3565억 달러), 3위인 일본(4조 6023억 달러), 4위인 독일(3조8744억 달러)을 합친 액수와 비슷하다. 인구 5억800만의 유럽연합(EU) 28개국 전체(18조 5271억 달러)와 비슷한 수준이기도 하다. 이민자나 수입 상품 때문에 미국이 어려워진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미국은 강력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1인당 GDP도 여전히 압도적이다. 2015년 IMF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5만5805달러로 인구 1000만 이상의 국가 중에서는 세계 1위다. 미국보다 1인당 GDP가 많은 나라는 강소국인 룩셈부르크(10만1994달러)·스위스(8만675달러)와 산유국인 카타르(7만6576달러)·노르웨이(7만4822달러), 그리고 중국 땅이지만 일국양제를 유지하는 카지노 도시 마카오(6만9309달러) 정도다.

문제는 이런 미국에 사는 국민의 생각은 계층별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미국 국민은 상위 1%가 부의 99%를 독점하고 있다며 부의 편재 현상을 지적한다. 이를 함축하는 단어가 ‘양극화’이고 그 상징이 ‘앵그리 버드’다. 고연봉의 월가는 미국민의 공격 대상이다. 문제는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한 만족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0.01%의 수퍼리치들이 그 99%의 99%를 차지하는 데 대해 또 다시 분노한다. 99%대 1% 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0.99%대 0.01% 사이에도 상호 갈등이 존재하는 앵그리 버드의 증폭 구도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의 백인 노동자 계층은 물론 중산층도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다.

이런 양극화는 경제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여유 있고 건전한 사고를 하는 중산층의 축소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도심 지역 229개소에서 1999년과 2014년의 소득을 비교한 결과 83%의 지역에서 중산층의 가계소득이 줄어들었다. 중산층 비중이 감소한 곳도 87%에 이르렀다. 사회의 허리 역할을 맡으면서 소득 하위계층에게 신분 상승의 희망을 줘야 할 중산층이 감소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산층 가계소득 점점 줄어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에 경계감을 드러냈지만 중국 상무부는 11월 10일 미·중 경제무역 관계의 대세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선단양(沈丹陽) 대변인. / 사진:뉴시스
201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런 양극화 문제가 여러모로 작용했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유권자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설득력을 얻었다. 민주당에서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75)가 클린턴 후보를 위협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도도하게 감지됐던 이런 기류를 클린턴은 물론 트럼프도 공약에 반영했다는 사실이다. 두 후보 모두 유권자들을 상대로 표를 얻기 위해 대중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보호무역주의는 이런 공격의 희생양이 됐다.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며 중국 때리기, 한국을 비롯한 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공약해 인기를 모았다. 사실 클린턴도 어느 정도 보호무역주의를 받아들이는 공약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런 양극화를 트럼프가 말한 보호무역주의의 부활로 해결할 수 있느냐다. 선거 기간 중의 발언을 종합했을 때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정책은 보호무역주의, 소득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의 대대적인 감세와 1조 달러 가까운 인프라 투자, 그리고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기업의 미국 복귀) 독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내내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국과 멕시코의 값싼 상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해 문턱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유권자를 매료시킨 대표적인 공약이다.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보호무역주의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미국의 사양산업을 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자유무역 때문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의 힘은 자유무역주의에 의한 경쟁력 상승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이 당면한 경제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포퓰리즘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보호무역으로 양극화 해소 어려워


선거기간 내내 중국을 비난한 트럼프의 당선으로 당장 내년부터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트럼프의 인식 속에서 중국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주범이다. 환율을 조작해 싼 가격으로 미국에 상품을 풀어놓고 미국의 산업을 문닫게 하는 악당이다. 트럼프는 그래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45%의 무지막지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럴 경우 중국의 대미 수출은 초토화된다. 중국에서는 연간 4200억 달러의 수출 감소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의 다이와증권은 78% 감소를 예상했다. 물론 그럴 경우 중국도 상호주의 입장에서 미국산 제품에 상응하는 고율의 보복 관세를 때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경제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국내 정치 구조상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시진핑 정권이 위신을 잃고 국민의 지지를 상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무역보복과 보호무역의 강화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자칫 세계적인 공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서민층이 오히려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와 달리 정보와 자본, 사업 수단이 풍부한 부유층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재산을 더욱 늘릴 수 있다. 양극화를 깨겠다는 유권자들의 투표가,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한 트럼프의 포플리즘적 보호무역 정책이 오히려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에 값싼 공산품을 대량으로 공급해왔던 중국이나 멕시코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물리면서 보호무역 만리장성을 쌓을 경우 역시 미국의 서민층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물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국산 소비자 상품이 미국 시장을 잠식하고 경공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도 감수했던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물가 조절 기능이었다.

헤비급 선수들이 이렇게 강펀치를 교환하게 되면 중국 경제는 경착륙할 수밖에 없다. 경제가 불안해지면 정치도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세계 정세가 불안해지면 미국 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호무역주의로 미국인만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은 글로벌 경제의 복잡한 연관관계를 도외시한 단견일 수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폐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트럼프발 보호무역 폭풍은 세계 각국에 연쇄반응을 일으켜 글로벌 교역을 얼어붙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는 미국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럼프가 원하는 만큼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도 어렵다. 미국이 진행해온 정책의 글로벌 신뢰도에 균열만 낼 가능성이 크다. 실제 가장 큰 손실은 미국의 신뢰성 상실에서 올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에서 자유무역은 공화당의 트레이드 마크다.

공약 이행으로 재정적자 심화할 수도

글로벌 금융시장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미국 통화정책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트럼프는 “나는 저금리를 선호한다”고 말해왔지만 금리 인상 속도가 느리다고 주장하는 등 오락가락해 왔다. 공화당 주류 사이에는 오랜 초저금리가 시장에 거품을 조장한다는 매파적 시각이 지배한다. 비둘기파의 대모인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내년 1월 임기가 완료되는 대로 교체될 것이 확실시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옐런을 임기 만료 후 재지명하지 않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금리를 최대한 천천히 올려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겠다는 연준의 기존 통화정책 구상은 틀어지고 금리는 더욱 빠른 속도로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달러 대신 엔화나 유로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돈을 더 찍어 엔화 가치를 낮춰 수출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회복 구상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경제의 활력 저하는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미국에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트럼프는 감세와 규제 철폐를 대내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시절 이후 최대 규모라고 주장할 정도다. 최상위층의 소득세율을 현행 39.6%에서 33%로 인하하는 한편 법인세 최고세율을 33%에서 15%로 대폭 낮추는 내용이다. 그는 또 “평생 세금을 낸 근로자들에게 죽어서도 세금을 내게 할 순 없다”며 상속세 폐지도 약속했다. 세금을 낮춰 투자를 유도하고 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는 점에서 레이거노믹스와도 비슷하다.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도 눈에 띈다. 다리·도로·공항 등을 대대적으로 새로 건설하거나 보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현안 중 하나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트럼프가 공약한 대로 대대적인 감세를 하면서 대규모 투자지출을 하면 재정 적자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경제분석기관인 CRFB는 트럼프 공약 이행에 앞으로 10년 간 11조~16조 달러가 들고 미국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4%에서 111~141%로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외쳐온 트럼프의 모순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중 동맹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언도 일삼았다. 한국은 물론 나토 국가들로부터 불신을 얻었다. 이들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과제가 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우정을 강조한 사실은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에서도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국-나토, 미국-러시아 관계의 근간을 뒤흔들 변화를 트럼프가 이끌 수 있을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세계가 주목한다. 트럼프는 자신이 만든 이 많은 문제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

1360호 (2016.11.2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