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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세계 경제는 어디로] 환율·보호무역 전쟁 수렁에 빠질 수도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자유무역주의 흔들려 각자도생 움직임 … 인프라 투자 확대, 금융 완화 정책은 호재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에 요동치고 있다. 미국 최초의 ‘아웃사이더’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변은 세계 경제를 충격에 빠뜨렸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가결 결과가 나왔을 때와 비슷한 강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브렉시트’를 안겼다’며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이어 나온 트럼프의 승리는 자유주의적 국제사회 질서에 또 다른 중대한 타격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당선 소식에 세계 경제가 긴장하는 건 그의 시각 때문이다. 트럼프의 대선 캠프 슬로건은 ‘위대한 미국의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이를 위해 그는 미국 경제의 우선적 이득과 미국인의 우선 고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노동시장 개혁,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그의 태도는 세계 경제를 흔들기에 충분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상과 달리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모습”이라며 “실물 측면에서도 미국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가 하드 브렉시트, 중국의 수출 둔화 우려 등과 결합해 세계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환율 조작국 지정, 관세 45% 부과 … 중국과 일전불사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당장 버락 오바마 정부의 최대 통상 업적으로 꼽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타결된 TPP는 미국·일본 등 12개 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메가 FTA(자유무역협정)’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한·미 FTA처럼 잘못된 무역협정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졌고 TPP 역시 또 다른 실패한 협정”이라고 비판했다. 집권하게 되면 이들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전에 TPP를 처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사라졌다.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올해는 이 문제를 안건으로 삼지 않을 것이며 TPP 등 무역협정에 대한 결정은 트럼프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선 당장 ‘발등의 불’이다. 당장 한국이 그렇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으로 양허정지가 이뤄질 경우 2017년에서 2021년까지 5년 간 총수출 손실 269억 달러, 일자리 24만개 증발을 예상했다. 양허정지로 인한 수출 손실 타격이 가장 큰 산업은 자동차 산업으로, 손실액이 133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금융센터는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환율 조작 혐의가 있는 국가들에 대한 미 행정부의 보복 조치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특히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했다. 그의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란 공약은 중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4월과 10월 미 재무부가 의회에 제출한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도 두 차례 모두 ‘감시 대상국’에 포함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이 상반기 8.3%에 달하는 등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됐다. 뿐만 아니다. 트럼프는 “자동차회사의 멕시코 공장 건설을 막기 위해 멕시코산 자동차에 3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환율도 주요 변수다. 트럼프는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의 통화 가치 저평가 시도에 대한 의심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달러화 약세 정책이 앞으로 미국 통상정책의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을 의미한다. 금리도 변수다. 세계 경제의 ‘뜨거운 감자’인 미국 금리의 향방은 인상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당장 올 12월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고용시장과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 10월 미국의 고용지표가 안정적으로 호전되고 있고 실업률은 전달보다 0.1% 떨어진 4.9%를 기록했다. 정부의 예상치(17만2000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비농업 부문 고용도 16만1000명을 기록해 연준에서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년 이후는 안개 속이다. 트럼프는 “그동안의 저금리 정책 탓에 발생한 자산 버블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편은 “고금리가 경제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여기에 트럼프가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위해 연준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언급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하겠다’ ‘법인세를 대폭 감면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이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제학 석좌교수는 “앞으로 10년 동안 5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이 정도의 투자를 얘기한다면 시멘트나 굴착기, 트랙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정보기술(IT), 컴퓨터 장비 기술 등에 대한 투자”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커스 놀런드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수석부소장은 법인세 인하에 대해 “애플이나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기업들이 해외에 두고 있던 돈을 다시 미국으로 들여오면 경기 부양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불확실성 커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초 금융회사를 상자 안에 가두겠다고 공언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는 규제 완화에 무게를 둔 공약을 내세워온 점도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손성원 교수는 “선거 당일 미국 은행주·금융주가 5% 올랐는데 이는 금융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러 전망이 엇갈리지만 지난 수십년 간 세계 경제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흐름에 균열이 생긴 것은 확실해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세계 경제의 회복세는 아직도 미약하다. 이미 충분히 낮은 정책 금리 수준을 감안할 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기 침체 때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유일호 부총리도 “트럼프 당선자의 인프라 투자 확대, 제조업 부흥 등 정책 방향은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긍정적인 요소보다 대내외적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은 ‘예상하지 못한 미국 대선 결과로 나타난 금융시장의 패닉은 점차 진정되겠지만 앞으로 미국과 글로벌 금융시장은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트럼프의 발언에 따라 큰 폭의 등락을 거듭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360호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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