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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후 코스피 종목 집중 분석] 굳어진 박스피 뚫어낸 기업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주가 상승률 한미사이언스·화승인더스트리·한샘 순

한국 경제가 어둡고 긴 터널에 진입했다. 위기감이 고조된 2013년, 기대감으로 출발한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큰 소득 없이 약 4년을 보냈다. 경제성장률은 2%대에 발이 묶였고, 주력 산업은 휘청거리고 있다. 수출이 줄어드는데 수입은 더 많이 감소하는 불황형 흑자가 지속되고, 경제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구조조정·노동개혁 등 풀어야 할 구조적 난제가 쌓였는데, 최순실 게이트라는 돌발 악재에 리더십마저 실종됐다. 증시도 결국 박스권을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올해로 6년째 ‘박스피(박스권+코스피)’ 신세다. 그래도 꾸준한 실적을 바탕으로 주가가 크게 오른 기업이 있다. ‘오를 종목은 오른다’는 증권가 공식을 재확인시킨 상장사의 면면을 살펴봤다.


“중국 등 세계 경제 회복세가 미약한 가운데 미국 대선 이후 보호무역주의나 금리 인상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경제도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필요하면 신속, 단호한 시장조치를 하겠다.” 11월 16일 열린 18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말이다. 평소 같으면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문맥과 단어 하나하나가 해석 대상이다. 하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언론도 국민도 큰 관심이 없다. 선언적 의미 빼곤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정계와 재계를 넘어 나라 전체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은 탓이다. 11월 초 박근혜 대통령은 새 경제부총리를 내정했다. 곧 떠날 사람의 말엔 힘이 없다. 권력이 이양돼야 정상인데 새로 올 사람(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역할 갈등에 시달린다. ‘대통령 하야’ 여론이 쏟아지는 상황에 ‘부총리 청문회’ 정도는 낄 처지가 못 된다. 설사 임명돼도 임 위원장이 추진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국정 지도력을 상실했다. 부총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실상 리더십 실종 상태다.

생산·투자·소비 트리플 부진


“경제에 가장 나쁜 건 불확실성이다. 정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경제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형국이다. 이 파장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는데, 만약 내년 대선 때까지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시계를 돌려보자.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던 시기는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 우려가 점증하던 때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2010년 5.2%를 기록한 이후 2011년 4.0%, 2012년 3.2%, 2013년 3.0%로 내리막을 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회복은 더뎠고, 그 사이 신흥국의 성장 열기마저 식어버렸다. 2005~2011년 사이 매년 9~13%씩 성장하며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했던 중국마저 성장률이 2012년 7%대로 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 경제팀을 ‘성장론자’로 구성하고, 성장동력 되찾기에 안간힘을 썼다. 재정 지출을 늘렸고, 금융 수단도 쓸 만큼 썼다. 신성장동력을 키운다며 창조경제에 힘도 실었다. 그러나 3년 9개월이 지나는 동안 달라진 건 없었다. 3명의 경제부총리가 나섰지만 ‘정책 일관성’ 논란만 증폭시켰다.

어느새 경제성장률은 2%대로 고착화하는 형국이다. 2013년 2.9%에서 2014년 3.3%로 잠깐 반등했지만 이내 2.6%로 떨어졌다. 올해도 잘해야 2.7%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내년은 더 나쁘다. 2.2%라는 충격적 전망(LG경제연구원)까지 나왔다. 성장엔 소비와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간소비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인다. 가계 소득은 소폭 늘었지만 불안감에 소비를 줄인 탓이다. 금융연구원은 “개별소비세 인하를 포함한 내수활성화 정책이 종료된데다 청탁금지법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내년의 민간소비 증가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부동산도 정부가 11·3 대책을 내놓은 탓에 당분간 냉각기가 불가피하다. 주요 지표는 이미 이런 상황을 잘 반영한다. 통계청이 내놓은 ‘9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생산(-0.8%)·투자(설비 -2.1%, 건설 -4.7%)·소비(-4.5%) 3대 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소비는 5년 7개월 만에 감소폭이 가장 컸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코스피 지수 상승률 -1.25%

밖으로는 수출 부진이 발목을 꽉 붙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수출액은 419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2% 줄었다. 지난 8월에 20개월 만에 반등에 성공한 이후 두 달 연속 하락세다. 자동차 파업과 갤럭시노트7 단종 등의 영향으로 자동차와 무선통신기기 수출액이 각각 11.8%, 28.1%씩 감소했다. 그럼에도 무역수지는 2012년 2월 이후 57개월째 흑자행진이다. 수출도 줄지만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드는 ‘불황형 흑자’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이라고 장사를 잘 할 리 없다. 10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57만여 개 기업(비금융 영리법인)의 매출액 증가율은 0.3%로 전년(1.3%)보다 1%포인트 하락했다. 2010년 15.3%에 달했던 매출액 증가율은 2011년 12.2%, 2012년 5.1%, 2013년 2.1% 등 해마다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던 대기업과 제조업의 침체에 기인한다. 대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2014년 -0.4%에서 지난해 -4.7%로 크게 떨어졌다. 2010년엔 16.4%였지만 단 5년 만에 이렇게 됐다. 제조업도 2014년 -1.6%, 지난해 -3%로 2년 연속 매출액이 뒷걸음질쳤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갈수록 힘 빠지는 대기업·제조업


심리는 이미 꽁꽁 얼어붙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9.8에 머물렀다. BSI 지수가 100 미만이면 향후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좋게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BSI 전망치가 9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월(86.3)·8월(89.5)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다. 2002~2006년 사이 평균 104.2를 기록했던 BSI 전망치는 2007~2011년 99.6으로 하락했고, 2012부터 올해까지는 94.8로 더 떨어졌다.

실물 경제가 휘청거리니 주식시장도 탄력을 받지 못했다. 양적으로는 팽창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의 하루 거래대금은 2013년 평균 3조9934억원에서 올해 4조641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2105년엔 평균 5조3517억원에 달했다. 거래량도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저금리에 갈 곳을 잃은 유동자금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몰린 영향이다. 그러나 시장이 질적 성장을 이뤘다고 보긴 어렵다. 일단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했다. 박 대통령 취임일인 2013년 2월 25일 2009.52포인트였던 코스피 지수는 올해 11월 11일 1984.43포인트로 오히려 1.25% 하락했다. 매년 연말 다음 해에는 박스권을 탈피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지만 적당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삼성전자 한 종목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18~20%를 차지하는 비정상적 구조도 여전하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위 100위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이 84.5%에서 80.8%로 줄어든 것 정도가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다. 2014년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중소형주 열풍에 어느 정도 자산 배분이 이뤄진 덕분이다. 이 때문에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는 527.27포인트에서 621.89%로 17.95% 상승했다.

시장 전체는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그래도 상당수 기업이 실적이나 주가 면에서 괄목할 성장을 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코스피 시가총액 3000억원 이상인 283개 기업의 주가 변동을 살펴봤다. 이들 기업은 같은 기간 동안 주가가 평균 10.4%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1039조원에서 1087조원으로 48조원 늘었다. 167개 기업의 주가가 상승했고, 114개는 하락했다. 이 중 주가 상승률이 코스피 지수 상승률(-1.25%) 대비 10%포인트 이상 오른 기업은 총 148개다. 이 중 54곳은 100%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한 소위 ‘대박’ 종목이었다.

한미사이언스가 전체 1위였다. 1주당 7464원이던 게 3년 9개월 만에 8만6500원이 됐다. 상승률이 무려 1059%에 달한다. 지난 9월 말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 파기로 주가가 급락하는 악재가 있었지만 순위를 지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한미사이언스는 국내 제약 업계 대장주인 한미약품의 지주사다. 한미약품 역시 같은 기간 주가가 219.2% 상승해 19위에 올랐다. 화승인더스트리(946%)와 한샘(874%)이 뒤를 이었다. 두 회사 모두 탄탄한 실적이 주가 상승을 견인했다. 화승인더스트리는 2013년 대비 매출액이 30% 이상 성장했고,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했다.

한샘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그밖에 JW중외제약(7위, 382%)·아이에스동서(10위, 351%)·경동나비엔(13위, 318%)·코오롱(18위, 231%) 등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화장품 시장을 주도하며 사세를 크게 키운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G(지주회사)는 나란히 15, 16위에 올랐다.

제약주 큰 폭 성장 … 조선·은행주는 부진


업종별로는 제약·바이오 관련주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148개 기업 중 26개가 제약 관련 기업이다. 올 하반기 이후 상승세가 꺾였지만 2014년~2015년 사이 주가가 크게 올랐다. 영진약품·제일약품·삼진제약이 20위 내에 포함됐고, 한국콜마·보령제약·부광약품 등도 몸값이 2배 이상 뛰었다. 식음료 관련주가 17개로 뒤를 이었다. 651%의 상승률을 기록한 SPC삼립(옛 삼립식품)이 전체 4위에 올랐고, 오뚜기·팜스코 등도 상승폭이 컸다. 대한유화·한솔케미칼 등 화학 관련 기업도 15곳이 포함됐다. 자동차(8곳)·금속(8곳)이 뒤를 이었고, 금융권에선 보험(8곳)·증권(4곳)이 체면치레를 했지만 은행주는 대체로 부진했다. 한때 시장 주도 업종 중 하나였던 조선주는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년에도 국내 주식시장은 박스권 장세를 이어갈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신영증권은 2017년 주식시장을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으며 ‘금수저 미국, 흙수저 한국’이란 제목을 달았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내용을 살피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하다. 일단 미국은 내년에 지난 5년 간의 경제성장률 평균치를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최근 소비와 투자 회복세가 뚜렷하다. 정동휴 신영증권 연구원은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돼 소비의 점진적 증가가 예상된다”며 “새 대통령인 트럼프의 소득세 인하정책도 소비성향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규모 정부 지출을 통한 인프라투자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다우지수가 2만 포인트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마냥 기대만은 아니다.

2017년 코스피 1800 중반~2200 초반 전망


한국은 반대다. 일단 대외 악재가 적지 않다. 트럼프 당선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확대가 최대 변수다. TPP 무산 여부,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 등에 따라 국내 기업의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18%로 중국의 무역국 중 가장 크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 중 중간재 비중이 6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수출 감소는 한국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경기의 회복도 경우에 따라서 한국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경기 회복은 필연적으로 금리 상승과 연결된다. 금리 인상 횟수에 따라 외국인 자본 유출이 현실화하면 부담이 작지 않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코스피에선 정보기술(IT)·소비재 등 경기 민감주의 상대적 강세를 예상할 수 있다. 경기 회복에 따른 유가 상승까지 감안한다면 에너지나 소재 관련주를 담아두는 것도 괜찮다는 분석이다. 개별 종목의 이익증가율에 따라서도 전망을 해볼 수 있다. 신영증권은 1분기엔 디스플레이·가전·소프트웨어·조선·건설 등을, 2분기엔 이들과 함께 화장품·의류·유통·레저 업종 등에 주목할 것을 조언한다.

기업 수익성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건 긍정적이다. 코스피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16년 2분기를 기점으로 점차 회복하는 추세다. 업황은 부진했지만 기업의 비용절감 효과가 반영된 결과다. 증권사들은 내년 상장사의 순이익이 1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내년 완만한 수출 개선이 예상됨에 따라 순환적인 ROE 회복세가 유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규제에 나서면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란 점도 긍정적이다. 증권사들은 내년 코스피 지수의 상단을 2200~2350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신한금융투자 등은 2350을 전망한다. 비교적 어두운 예측도 있다. 신영증권은 1890~2210 사이를, 삼성증권은 1860~2210 사이를 예상한다. 삼성증권은 대형주 중 2017년 유망 종목으로 삼성전자·POSCO·현대산업·현대중공업·한국항공우주·두산밥캣·K B금융·삼성화재·SK하이닉스·NAVER를 꼽았다.

1361호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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