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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탁 기자의 바이오 이노베이터 (6) |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 휴대용 초음파 기기 개발의 선구자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미국·유럽에서 인정받고 30여개국에 수출 … 제3세계와 공공조달 시장 집중 공략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이 주목받는다. 바이오 강국을 꿈꾸며 숱한 실패를 딛고 도전을 이어온 혁신기업과 CEO를 소개한다.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 / 사진:김현동 기자
힐세리온 회의실의 세계지도 옆에는 다목적 리모컨 같은 전자제품이 걸려 있다. 힐세리온이 개발한 소형 초음파 진단기 ‘소논(Sonon)’의 시제품들이다. 내부 부품 없이 만든 디자인 확인용 모델부터, 테스트용 시제품, 그리고 지금 시판 중인 소논까지 제품 6개가 전시돼 있다.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는 제품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우리 회사의 역사”라고 말했다.

힐세리온은 응급실 의사였던 류 대표가 2012년 창업한 회사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빠른 진단이 필요한 급박한 상황을 종종 겪었다. 청진기는 불확실했고, 진단실로 이동하기엔 마음이 급했다. 그는 보이는 청진기가 있으며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진기를 사용해 귀로 환자를 파악하는 것보다, 휴대용 전자 기기로 환자의 몸 속 상황을 눈으로 보며 진단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청진기처럼 항상 휴대하면 갑작스러운 상황이나 의료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진료할 때마다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 필요성 절감

그가 보이는 청진기 연구를 시작한 배경이다. 그는 초음파 기기에 주목했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기기로 태아의 건강을 확인한 경험에서 착안했다. 이를 휴대용으로 만들어볼 생각을 했다. 기존 초음파 기기는 대부분 대형이었다. 냉장고 크기의 의료 기기라 옮기기 어렵다. 이동 가능한 제품도 있었다. 무게 20kg 정도에 성능이 떨어진다. 들고 다닐 수 있는 모델은 2010년 GE가 만들었다. 하지만 모바일 기술 적용이 불가능했다. 사진 판독을 위해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류 대표는 직접 기기를 제작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당시 모바일 헬스케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 중이었다. 디지털 기술을 의료 기기에 적용하면 충분이 만들 수 있었다. “예전엔 어려웠지만 지금은 가능한 기술입니다. 전기와 전자, 의료 신호처리 제품 개발에 참여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류 대표는 이력만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동국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여기서도 전자공학을 복수 전공했다. 대학 생활 중 공부보다는 꿈을 찾는데 더 열심이었다. 그가 일했던 벤처기업만 8곳에 달한다. 졸업하며 보안장비 업체를 창업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사업을 접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엔 의료 업계에 관심이 생겨서다. 그는 2005년에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로 변신했다. 청구성심병원에서 의사로 일했으며 우주인선발대회에 응시해 최종 단계까지 진출했다. 지금도 사업과 학업을 병행 중이다. KAIST에서 뇌과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기업을 이끌고 있다.

2012년 의사를 그만두고 초음파 기기 창업을 시작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창업은 여전히 어려웠다. 류 대표는 “맨 땅에 헤딩”이라고 표현했다. 디자인과 회로 설계, 부품을 직접 만들고 골라야 했다. 자금 마련하고 나중에 어디에 유통할지 계획도 필요했다. 다행히 투자까지는 쉽게 받았다. 소프트뱅크 벤처스·산업은행·엠벤처·스마일게이트·인터베스트·마젤란에서 85억원을 유치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나도록 수익을 못내 마음 고생을 했다. “사서 고생하는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가시 방석이었습니다. 창업가가 제 숙명이라 생각하며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2015년 드디어 지난해 완제품이 나왔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일반 초음파기기와 비교해 가격은 10분의 1 수준이다. 의사용 가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휴대가 간편하다. 와이파이를 이용해 무선으로 스마트폰에 초음파 영상 전송이 가능하다. 원격의료는 물론 교통사고 등 응급진료가 필요한 곳이나 출장의료검진처럼 현장에서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빠르게 인증도 받았다. 국내 식약처와 미국 의료기기인증(FDA), 유럽 의료기기 인증(CE MDD)을 획득했다. 현재 30여개 국가와 판매계약을 했다. 2015년 첫 매출 8억원을 올렸고, 올해는 3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그는 “2017년에는 3배 정도 성장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극 세종기지에 제품 공급

그는 의사들이 청진기를 들고 다니 듯 힐세리온 제품을 사용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의료 박람회나 진단 학회에서 힐세리온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의사들 평가가 좋아도 의료 기기는 병원 재단이 구매해왔다. MRI, CT, 초음파 기기의 실구매자는 병원이다. 재단 구매팀 벽을 넘기 어려웠다.

현실을 깨달은 류 대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하나는 사회봉사 단체를 통한 제 3세계 보급이다. 의료 시설이 빈약한 지역에서 휴대용 초음파 기기는 더 효율적이다. 6월엔 중동·아프리카 12개국을 대상으로 2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총판 계약을 했다. 또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연계해 베트남 의료보건개선 사업에 참여하는 등 의료 공공부문 사업에도 발을 내디뎠다. 류 대표는 “처음부터 한국 시장에 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해, 공공성을 확보해 개인영역과 공공영역을 동시에 공략했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는 공공조달 시장이다. 국내 보건소 의사들이 외진 나갈 때, 들고 나가면 편하다. 남극 세종기지에도 제품을 비치했다. 나아가 원양 어선과 항공기에 구급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바일 전송이 가능하기에 오지에서 대도시 병원과 연결하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다. “지금은 시장 형성 단계입니다. 중저가 휴대용 진단 기기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유럽 인증을 한국보다 먼저 받고 미국 인증을 준비했을 정도로 해외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현지에서 100개에 달하는 의료기기 딜러망을 공략 중이다. 미국에선 의사가 개업하면 의료 기기를 공급하는 딜러들이 있다. 이들이 인정해야 의료 기기를 공급할 수 있다. 보수적 문화가 강하고 지역별 특색도 다르다. 류 대표는 지역별 딜러들의 특징을 파악하며 제품 공급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한국 시장도 길게 보고 있다. 시간을 들여 병원을 찾아 다니며 제품을 알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가천대학교 길병원이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POC 초음파 핸즈온코스 교육’에 소논을 활용 중이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과 안암병원도 소논으로 전공의 교육을 시작했다. 제품 라인업도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지금은 복부용 기기에서 근골격계로 범위를 넓힌다. 유럽과 미국 시장을 겨냥한 동물용 초음파 진단기도 준비 중이다. 류 대표는 “초음파 진단기를 가정에서 편하게 사용하는 시대가 언젠가 열릴 것”이라며 “의료 볼모지에 널리 퍼져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1363호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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