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김준태의 ‘사직상소에 비친 조선 선비의 경세관’ (27)] 국정농단한 외척에 맞서 배수의 진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이준경의 영의정 사직상소... 문정왕후 동생 윤원형 일파 제거해 국가 기강 세우려 노력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명종 후반기부터 선조 즉위 초기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다. 방계승통(선조는 조선왕조에서 방계로서 임금이 된 첫 사례로, 임금의 직계자손이 아닌 방계혈족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 왕권의 정통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기 쉽다)의 혼란을 극복하고 ‘사림정치의 시대’를 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을묘왜 변을 평정했으며 청백리로 이름을 날렸고 붕당의 폐해를 내다본 유언을 남겼다. 심학(心學)과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고 남명 조식의 죽마고우이자 서경덕·이황과 같은 대학자들의 절친이었으며, 이원익·이항복·이덕형 등 뛰어난 재상들을 발탁해 키워냈다. 조정뿐 아니라 지식인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학문과 정치력을 겸비한 인물.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 1499~1572)의 이야기다. 그는 훗날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유년시절은 매우 험난했다. 1504년(연산군 10)에 일어난 갑자사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사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그도 6세의 어린 나이에 형인 이윤경과 함께 충청도 괴산 땅으로 유배를 가야했다. 벼슬살이를 시작한 후에도 시련은 계속 됐다.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로 사촌형과 육촌형, 아끼던 조카를 잃었고 자신도 귀양을 갔다. 이준경이 평생을 두고 정치의 안정과 기강, 공정성을 강조한 데에는 이러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특히 임금이 사사로움에 빠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임금이 공론을 따르고 공적인 책임을 다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이번 회에서 소개하는 사직상소도 그 같은 취지에서 올린 것으로, 여기서 이준경은 외척이자 권간(權奸, 권세를 휘두르는 간신) 윤원형을 처벌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울 것을 주청하고 있다.

사림정치의 시대 연 주역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자 대왕대비(문정왕후)의 동생으로 소윤(小尹) 세력의 영수다. 그와 그의 일파는 국정을 농단하고 부정부패를 자행했으며 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1565년(명종 20) 4월 6일, 윤원형의 뒤를 봐주었던 문정왕후가 죽으면서 권력 기반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준경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는데, 거대한 권력의 공백으로 저들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부패한 구세력을 일소해 국가 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침 이준경이 영의정에 제수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명종20.8.15). 윤원형의 탄핵을 주장하는 대간의 상소가 빗발치는 가운데 이준경은 곧바로 사직상소를 올리며 윤원형의 처벌을 주장했다. 사직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외척과의 대결에 나선 것이다. ‘국가에 있어서 공론(公論)은 한 사람의 몸에 있어서 원기(元氣)와도 같은 것입니다. 원기가 튼튼하면 갖가지 질병이 생긴다고 하여도 위협이 되지 않고 약을 쓰면 효험도 빨라 곧바로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원기가 약하여 손상되어 있으면 편작(중국 전설상의 명의)도 포기하여 결국 고칠 방법이 없을 것이니 공론이 국가에 관계됨이 이처럼 중대한 것입니다. 임금이 공론을 존중하여 원기를 보양하는 것은 국가를 다스리는 좋은 처방이므로 하루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이하 인용은 모두 명종20년 8월 22일자 실록에 기재된 이준경의 사직상소임).’

이준경은 우선 공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사람이 건강하려면 그가 가진 기가 맑고 튼튼해야 하듯이 국가가 건강하려면 국정이 투명하고 올발라야 하며 그와 관련된 모든 논의들, 즉 공론이 억제되거나 막히는 일 없이 공정하고 자유롭게 펼쳐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와 정책이 권위를 가질 수 있고 구성원들도 믿고 신뢰를 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론이 튼튼해지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준경은 당시 공론이 폐색되고 있는 원인을 훈척에게서 찾았다. ‘훈척(勳戚, 공신과 외척)을 우대하는 것은 사사로운 은혜이고 공론을 보양하는 것은 만세의 대의(大義)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은혜에 머리를 숙이고 만세의 공론을 거스르심으로써 국가의 맥이 미약해지고 있습니다.’ 임금이 사사로운 인간관계에 얽매여 있고 사적인 감정에 따라 정치를 행함으로써 철저하게 공적으로 작동해야 할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론이 배양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이준경은 악행을 저지르고 전횡을 휘두른 윤원형의 처벌을 요구했다. 명종이 이를 거부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윤원형이 전하의 외숙부라는 점 때문에 차마 귀양을 보내지 못하시겠다는 것을 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치우쳐 국가의 원기가 폐색된다면 민심이 어찌 안정되며 국맥(國脈)은 또 어찌 이어질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윤원형을 사면하고 조용히 물러나게 하려고 하시나 이것은 공론을 장려하고 원기를 북돋우는 도리가 아닙니다. 부디 그를 물리쳐 배척하심으로써 공론을 따르시고 정도(正道)를 일깨워 원기가 사그라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죄를 저질렀으면 응당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하물며 임금의 외척이라는 신분을 기화로 정당하지 못한 권력을 남용해 국정을 문란하게 만든 죄는 더더욱 용납할 수가 없다. 따라서 윤원형의 잘못을 엄중히 묻고 처벌하여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임금의 가까운 친척이라는 이유로 용서해주거나 혹은 처벌을 가볍게 한다면, 국가의 공공성은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다. 잘못을 유야무야 넘어감으로써 비슷한 일이 재발하게 될 가능성도 커질 뿐 아니라 백성들도 공권력의 권위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윤원형 처벌 빌미로 임금의 균형 있고 공적인 자세 요구

따라서 이준경은 ‘국가의 공론이라는 것은 사의(私意)가 용납될 수 없다’며 임금의 균형 있고 공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윤원형의 처벌 문제를 빌린 것이지만 실상 임금이 반성하고 책임을 지라는 경계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인사문제에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도 주문한다. ‘공론이 막혀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는 것은 위엄이 없어지고 형벌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정의 출척(黜陟, 좋은 사람을 등용하고 나쁜 사람을 물리침)이 엄격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스템이 좋고 공론이 세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잘 운영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무너뜨리느냐는 결국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훌륭한 인재를 주위에 두고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직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들을 과감하게 배척해야 한다. 인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때, 이익을 탐하고 부정을 꾀하는 사람들이 준엄한 심판을 받을 때, 공론은 정치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줄 것이며 나라의 질서는 자연스레 확립될 것이다. 대통령이 공적인 책무를 저버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게 의지하며 국정을 어지럽힌 요즘, 더욱 절실히 다가오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65호 (2016.12.2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