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카프카를 읽는 밤'의 ‘비교우위론’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생산비 또는 기회비용 적게 드는 상품 집중 생산 … 선후진국 격차 키우는 요인 되기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자국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진 점을 감안해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등을 추진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왠지 섬뜩하고, 비현실적이면서 암울하고 당혹스러울 때 ‘카프카적(kafkaesque)’이라는 단어를 쓴다. 뭔가 비현실적인 상황인데도 술술 잘 설명이 되는, 기묘한 모순의 순간도 ‘카프카적’이라는 단어는 어울린다. ‘카프카적’이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에 드러난 특성을 그대로 담은 표현이다.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46년이다. 이후 영어사전 한 켠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카프카의 우울과 공포, 당혹과 섬뜩함은 그 자체로 동료 작가들에게 매력적인 소재가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구효서는 [카프카를 읽는 밤]을 썼다.

[카프카를 읽는 밤]은 굵은 비가 오는 산촌, 아주 밝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삼거리에서 서성이던 기묘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옷으로 치장한 그녀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인지, 차를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산을 들고 반바지에 맨발 슬리퍼 차림으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대흥사 가는 길을 물었다. 나는 소설가다. 연재하던 글을 8번이나 출판사에 보냈지만 퇴짜를 당했다. 잘못하면 잡지사의 연재가 끊길 판이다. 답답한 마음에 해남 대흥사 인근에 며칠 전 내려왔다. 다음 날 삼거리에서 나는 우연히 그녀를 또 만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짧은 스커트의 주황색 원피스 차림이었다. 설마 또 그녀를 만나겠거니 했는데, 아뿔싸, 다음 날 그녀를 내가 묵는 모텔의 식당에서 마주친다. 비수기에, 이런 곳에, 젊은 여자가, 혼자서, 무엇하러 왔을까. 모텔에서 30여km 떨어진 땅끝마을로 내달렸다.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또 만난다. 결국 자리를 마주한다.

그녀의 이름은 김유미. 재일 한국인 2세라고 했다. 6년 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소설을 쓴다. 내가 “소설이 통 되질 않아요”라며 고개를 떨구자 그녀가 말한다. “한국에서 한국 문학을 하는 사람들, 아무리 힘들다 해도 다 행복한 고민으로 보여요.” 그녀가 쓰는 소설은 그녀 가족의 이야기다. 결국 재일 한국인 2세의 재일 한국인 이야기다. 그녀는 뭔가 다른 글을 쓰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일본 문학계는 이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문학계가 궁금해하는 것은 불우한 민족의 유랑하는 가족 얘기다. 일본 문학계는 왜 그녀에게 재일 한국인 2세의 소재만을 요구할까.

재일 한국인 2세 작가의 비교우위는 재일교포 스토리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재일 한국인 2세의 소재는 김유미가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교우위란 한 나라가 두 상품을 모두 잘 만든다 하더라도 두 상품 중 생산비가 적게 드는(기회비용이 적은) 상품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교환하면 서로 이익이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두 상품을 모두 못 만드는 국가 입장에서는 덜 못 만드는(기회비용이 적은) 상품을 특화하면 된다.

미국과 한국이 자동차와 쌀을 각각 생산하는 것을 가정해보자. 1시간 동안 미국은 쌀 10가마니를 만드는데 한국은 2가마니 밖에 못 만든다. 자동차도 미국은 1시간 동안 5대를 만드는데 한국은 3대 밖에 못 만든다. 미국은 팔 것(쌀과 자동차)만 있고, 한국은 살 것만 있다. 이래서는 거래가 안 되는 걸까?

비교우위를 따져보면 된다. 미국의 경우 1시간 동안 쌀 10가마니를 생산하는 시간이면 자동차 5대를 만들 수 있다. 즉 쌀 한 가마니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0.5대를 포기해야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쌀 2가마니를 생산하는 동안 자동차 3대를 만들 수 있다. 쌀 한 가마니를 얻기 위해 자동차 1.5대를 포기해야 한다. 쌀 한 가마니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자동차는 한국이 더 많다. 따라서 미국은 쌀을, 한국은 자동차를 만들면 된다.

비교우위론를 제안한 경제학자는 리카도다.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근거로 많은 나라가 자유무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전체적인 부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우위론은 보호무역을 하려는 나라에 개방을 설득하는(혹은 강요하는) 무역논리도 된다.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내세워 영국 의회가 곡물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제정하려 했던 ‘곡물법’을 반대한다.

국제적 분업을 의미하는 글로벌 체인밸류(GCV)도 비교우위론에서 시작됐다. 자국이 둘 다 잘해도 비교우위에서 밀리는 것은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 생산성을 더 높인다는 것이다. 한국은 부품을 만들고, 중국은 조립을 하면 완성품의 가격도 싸진다.

일본 문인들이 아무리 재일교포 2세의 삶을 이해하려 해도 김유미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체화된 삶이라 김유미는 일본 문인들에 비해 적은 시간으로도 재일교포 스토리를 써낼 수 있다. 김유미가 재일교포 2세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쓸 때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다른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쓰는 것)이 일본 문인에 비해 적다는 얘기다. 일본 문단이 김유미의 자전적 소설에서 문학적 효용성과 상품성을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유미가 재일교포 소재의 글을 쓴 덕에 일본 문학은 더욱 풍성해진다.

비교우위론은 직장 간 이동이 쉽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즉 미국이 자동차 생산을 포기하고 쌀만 생산할 경우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농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제무역이 발달할수록 실업자가 늘어났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분노한 러스트밸트의 백인 실업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비교우위론은 ‘정치성’도 짙다.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국가는 계속 고부가가치 제품을, 저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나라는 계속 저부가가치 제품만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은 영원히 선진국이 되고, 후진국은 영원히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계속해서 자동차·스마트폰을 만들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바나나를 팔아야 한다. 따라서 비교우위론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라고도 부른다. 후진국들이 사다리를 타고 선진국으로 올라가려 하니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다는 것이다.

비교우위론은 ‘사다리 걷어차기’

김유미도 마찬가지다. 김유미가 재일교포 소재의 글만 쓰면 김유미는 더 좋은 형태의 소설을 쓰지 못한다. 영원이 일본 주류 문단에서 겉도는 2류의 삶을 살게 될 수 있다. 재일교포로서의 삶이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어서 김유미는 더더욱 이 소재에 매몰되기 싫다. 재가한 어머니는 일본 남편에게 얻어맞고, 자신은 의붓 오빠에게 강간을 당해 아이까지 낳았다. 잊고 싶은 기억을 소설로 주구장창 써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김유미는 이런 글쓰기에서 탈피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더 이상 이런 소재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때, 일본의 언어로 그녀가 쓸 수 있는 글은 없었다. 그런 답답함에 이끌려 그녀는 물 건너 땅끝 마을까지 왔다.

비교우위론에 따른 자유무역은 선진국의 전유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19세기 말 영국의 공산품에 대항해 독일과 미국은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했다. 미국도 자국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자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등을 추진하고 있다. 자국이 강하면 자유무역을, 약하면 보호무역을 내세웠던 게 경제사다. 우리의 대외정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1364호 (2016.12.1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