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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의 법과 기업 이야기 (3) 인재와 영업비밀 보호] 핵심 인재 퇴사 때 기술·영업비밀 유출 ‘비일비재’ 

 

장윤정 법무법인 지평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여성벤처협회 고문 변호사
경업금지약정 맺어야 … 정당한 보상체계로 인재 유출 막는 게 근본 해법
무엇이 기업의 가치를 창출할까? 흔히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같은 지표가 기업가치를 평가하는데 사용된다. 여기에 현금흐름과 영업이익도 함께 고려하면 좀 더 정확한 기업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표들을 만들어내는 실질적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 답이 있겠지만 결국은 그 기업이 보유한 핵심 기술과 인재가 기업 가치를 창출하는 근본적인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종사하는 로펌업계도 ‘얼마나 좋은 인재를 영입해서 훌륭한 재목으로 키워내느냐’를 그 로펌의 미래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본다. 로펌의 경우, 한 사람의 신입 변호사를 뽑아서 독립적인 파트너 변호사로 양성하기까지 대략 10년이 걸린다. 처음 4~5년은 일을 배우느라 정신없고, 6년차에서 8년차 변호사가 되면 실무적인 능력을 갖춘 중견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 보통 이 시기에 유학을 다녀오게 된다. 그 후 10년차쯤 되면 수임과 수행 능력을 두루 겸비한 독립적인 변호사가 되기를 본인도 희망하고 선배 변호사들도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국내 법률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라는 평가를 받은 지오래다. 예전에는 국내 변호사끼리만 경쟁하면 됐는데, 이제는 외국 로펌은 물론이고 인공지능까지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하면서 가뜩이나 힘든 변호사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하는 상황이다. 최근 기사를 보니 대형 로펌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중견급 변호사들이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데 비해, 과중한 업무와 로펌 내에서의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계속 낮아지는 행복지수가 아마도 원인일 것이다.

경쟁사로 옮길 때 법률 위반 사례 많아

이러한 인력 이탈 문제는 로펌 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한 기업의 근로자가 이탈하는 경우, 단순히 개인의 퇴직 문제로 그치지 않고 그가 취급하던 영업비밀 유출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K씨는 A사에서 대기업 계열사인 핵심 고객들과의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부서장으로 근무하다가 좀 더 나은 근로조건을 제시하는 경쟁업체인 B사로 이직하기로 마음 먹었다. A사에는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직장에 다닐 수 없다고 얘기했고, 퇴직 후 잠시 쉬다가 바로 B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K씨는 A사를 나오면서 B사로 옮긴 후에 자신의 업무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자료들을 선별해 A사 이메일 계정을 통해서 자신의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보냈다. 또한 이동식 디스크와 개인 노트북에 저장해 사용하던 파일들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서 B사로부터 제공받은 업무용 컴퓨터에 저장해 사용했다.

위와 같이 근로자의 입·퇴사와 관련된 영업비밀 유출 사례는 약간씩 유형만 달리할 뿐, 대부분의 기업이 수시로 겪는 일이다. 법률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A사의 입장에서는 K씨의 영업비밀 유출 여부를 조사해 형사고소를 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또한 경업금지 의무가 있는지 확인해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 경업금지란 근로자가 퇴직 후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하거나 동일 업종으로 창업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말한다. 유출한 영업비밀이 ‘산업기술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일정한 분야의 지정·고시·공고이거나, 인증된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할 경우 ‘산업기술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유출된 기술·영업자료에 ‘영업비밀성’이 있는지 여부가 주로 문제가 되는데, ‘영업비밀성’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비공지성), 기술적 또는 경영상 경제적 가치가 있으며(경제적 유용성),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고 있어야 할 것(비밀관리성)을 요건으로 한다. 보안시스템이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중소기업의 경우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지 않아 부정경쟁방지법상 보호조치를 취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근로자가 자신이 근무하던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스스로 경쟁업체를 설립·운영하는 것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경업금지의무’라고 한다. 상법 또는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경업금지 의무가 발생하거나 ‘경업금지약정’에 의해 이러한 의무를 지게 된다. 유출된 정보의 비밀관리성이 부정되는 경우에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해 놓았다면 전직 금지 가처분이라는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약정 내용에 따라 퇴사 후 1년에서 2년 정도 경업금지의무가 인정되기도 하는데, 경업 금지 의무가 헌법 제15조가 보장하는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 약정의 전체 또는 일부가 무효가 되거나 문제되는 내용을 제한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퇴사 후 5년간 경쟁업체 근무를 제한하는 약정은 지나치게 장기간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해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기술 발전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물리적인 비밀유출보다 기술과 영업 비밀을 체화한 고급 인력이 경쟁사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업금지약정이 더 많이 활용될 것 같다. 이때 똑같은 내용의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는 것보다는 전직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큰 사람을 선별해 그 직위나 취급업무, 전문성을 고려해 내용을 차별화해야 한다. 보호되는 영업비밀도 약정에 기재해 두면 좋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아직 소극적이지만, 핵심 인력에 대해서는 경업금지약정과 더불어 적정한 금전적 보상을 해준다면 더욱 이상적일 것이다.

비밀유지약정도 맺는 게 바람직

B사처럼 다른 회사에 근무하던 자를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이전 직장으로부터 영업비밀을 반입하지 않았다는 확약서를 받아두거나 경업금지 의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입사시에 모든 근로자로부터 회사 컴퓨터는 근무 목적으로만 사용하겠다는 확약서와 회사 컴퓨터를 이용해 송수신한 이메일 계정 열람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두고, ‘비밀유출금지 및 비밀유지약정’과 ‘경업금지약정’까지 체결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요즘같이 외국 기술자의 국내 기업 취업, 국내 기술자의 외국기업 취업이 빈번히 일어나는 글로벌 시대에는 영업비밀을 포함한 지식 재산이 국가간에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때문에 첨단산업 관련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하고 외국 기술자를 채용하는 경우 그 나라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핵심 기술과 인재가 기업가치의 중요한 두 요소라고 했지만, 그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역시 ‘사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기업으로서는 영업비밀 보호와 고급인력을 경쟁사에 뺏기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다양한 법률적 조치를 마련해 놓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능력에 맞는 급여체계, 사내복지제도의 향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된 기업문화, 직무발명 및 경업금지약정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체계 등 ‘사람’을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인 제도를 구축해 나간다면 핵심 인재의 이탈이라는 걱정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장윤정 - 법무법인 지평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여성벤처협회 고문 변호사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NYU School of Law에서 LLM 과정을 마치고 College of William and Mary Law School에서 객원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연구 활동을 했다. 2000년부터 기업 인수·합병을 비롯한 기업 자문 업무와 지적재산권 자문 업무를 하고 있다.

1365호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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