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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하루만이라도 미래를 먼저 알 수 있다면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 버블 생성에서 붕괴까지

▎한 일본 투자자가 증권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투자를 하다 보면 “아, 저 정보를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때가 있다. 미래를 미리아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된다. 1970년대 강남에 땅만 사뒀더라면, 1980년대 삼성전자 주식을 사뒀더라면 지금쯤 사장님 소리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멀리 내다볼 필요도 없다. 당장 내일 주가가 어떻게 될지, 내년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만 알면 큰돈 벌기는 땅짚고 헤엄치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33년 뒤 미래를 먼저 알게 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묶는다. 나미야 잡화점은 주택가 외각의 한 언덕배기에 있는 점포 겸 주택이다. 옛날 목조 건물로 셔터에는 우편함이 하나 있고 뒤쪽 출입문에는 우유 상자가 있다. 30여 년간 비어있는 폐가다. 이 건물에 어느 날 밤 3인조 좀도둑이 찾아든다. 쇼타, 아쓰야, 고헤이다. 몇 시간 전 한 집을 턴 이들은 이곳에서 밤을 샌 뒤 아침 일찍 도망갈 예정이다. 그런데 우편함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달토끼’라는 익명의 여인이 보낸 편지다. 달토끼는 올림픽 출전을 꿈꾸는 운동선수다. 암에 걸려 위중한 남자 친구 곁을 지키는 것이 옳을지, 올림픽 출전을 위해 계속 훈련을 해야할지가 고민이다. 알고 보니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나미야씨는 고민 상담을 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3인조 도둑은 얼떨결에 그녀에게 답장을 해준다. 그런데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이상하다. 달토끼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릭픽 출전이 목표란다. 그제야 깨닫는다. 도둑이 있는 때는 2011년. 그녀가 편지를 보낸 때는 1979년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우편함과 우유 상자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었다.

“1985년 이전에 부동산을 사서 89년 전에 파세요”


달토끼에 이어 또 다른 사람이 고민 편지를 보내왔다. 가업인 생선가게를 잇기보다 음악을 너무하고 싶어하는 가쓰로라는 청년이다. ‘생선가계 예술가’라는 필명을 쓴다. 생선가계 예술가는 인기가수인 미즈하라 세리와 이어진다. 목각 기술자가 된 고스케, 부동산 기업가가 된 하루미도 인연으로 얽혀있다. 이들 인연의 중심에는 아동복지시설인 환광원이 있다.

소설은 꽤 복잡하다. 40여 년간 많은 사람이 얽힌 인연을 이리저리 뒤섞어놨기 때문이다. 실타래를 풀듯 얽힌 시간을 가지런히 풀어보면 나미야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폴레논’에게 진지한 답변을 써주는 때는 1969년이다. 78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79년 달토끼가, 80년에는 생선가계 예술가가 고민상담 편지를 나미야 잡화점에 보낸다. 88년에는 환광원에 불이 난다. 그리고 나미야가 사망한 지 33년째 되는 기일인 2011년 9월13일 나미야 잡화점은 잠시 문을 연다. 그동안 나미야 잡화점이 고민상담을 해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서다.

2011년 현재에 사는 3인조 도둑이 마지막으로 답장해주는 사람이 1980년의 하루미다. 돈을 벌기 위해 호스티스를 마다하지 않는 하루미에게 3인조 도둑은 편지를 통해 돈 버는 법을 가르쳐준다.

“어떻게 하든 1985년 이전에 부동산을 매입하세요. 86년 이후 일본은 사상 유례없는 호경기로 부동산가격이 급등합니다. 그러면 즉시 되팔아 더 비싼 부동산을 사들이세요. 부동산의 매입과 전매를 거듭해 벌어들인 돈은 주식에 투자하면 됩니다. 85년부터 89년까지 아마 어떤 종목의 주식을 사도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명심해야할 게 있어요. 90년이면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해요. 그러니까 아직 가격이 더 뛸듯한 기미가 보이더라도 89년 이전에는 모든 투자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플라자합의가 만든 버블

오일쇼크 직후인 80년 일본경제는 결코 좋지 않았다. 몇 년 뒤 사상 유례없는 호경기가 진행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상황을 뒤집은 것은 ‘플라자합의(Plaza Accord)’였다. 플라자합의는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과 잃어버린 20년의 도화선이 됐다.

85년 9월22일 G5(미국·프랑스·독일·일본·영국)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였다. 당시 미국은 이른바 ‘쌍둥이 적자’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겪고 있었다.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달러화가 약해져야 하는데 달러화 강세는 계속됐다.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이 여전한데다 고금리 정책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감세로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했다. 자금조달을 위해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또 오일쇼크로 인해 불거진 스테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서도 금리인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금리인상은 달러 강세를 불러왔다. 달러 강세는 미국의 대외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켰고,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독일제품에 밀리면서 주요 기업들이 잇달아 도산했다. 미국은 달러 약세가 필요했다. 5개국 재무장관은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 달러화 가치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플라자합의’다. 일본과 독일은 내키지 않았지만 기축통화인 달러가 흔들려 좋을게 없을 뿐 아니라 미국의 무역제재 압력을 견뎌낼 수 없었다.

플라자합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합의 1주일 만에 일본 엔화는 달러화 대비 8%, 독일 마르크화는 7% 평가절상됐다. 플라자합의 직전 달러당 240엔대였던 엔화는 85년 말 200엔, 88년에는 120엔까지 떨어졌다. 3년 만에 엔화가치는 2배 올랐다. 수출국가였던 일본은 비상이 걸렸다. 가격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경기악화를 우려한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 정책으로 금리를 낮췄다. 또 공공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풀린 돈은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향했다. 도쿄 땅값과 니케이지수는 사상 최대로 뛰어올랐다. 통화절상은 대외 자산을 매입할 기회가 됐다.

일본은 강해진 엔화를 앞세워 미국 주요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부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미국의 자랑이던 록펠러센터, 콜럼비아영화사도 이때 일본에 넘어갔다. 그러나 버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일본 정부는 89년 금리를 인상하고, 대출총량규제를 해 과도한 대출을 막았다. 소비세도 신설했다. 하지만 급작스런 긴축은 버블 붕괴로 이어졌다. 잃어버린 20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다시 소설 속으로 가보자. 하루미는 미친듯한 호경기가 89년이면 막을 내린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지만 부동산을 모두 팔아버린다. 이어 90년대는 홈페이지 제작과 인터넷을 이용한 광고사업과 판매사업으로 떼돈을 번다. 나미야 잡화점이 해준 충고를 그대로 따랐다. 그녀는 2000년대 들어 컨설팅사업까지 진출하며 큰 부자가 됐다. 알고 보니 하루미도 3인조 도둑과 인연이 닿아있다. 전혀 다른 듯한 사람들의 인연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내는 실력. 추리소설을 즐겨 썼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치밀한 문체는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1367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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