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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 (38)] 두려움이 없는 시장, 정부 개입 어디까지 

 

조원경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
라스 피터 핸슨의 자산 가격 결정 모형 … 정부는 정책 일관성, 소통, 모럴 해저드 방지 힘써야

▎사진:중앙포토
연말 연초, 많은 경제기관에서 올해 경제 전망을 내놨거나 내놓고 있다. 불확실성이 일상화 된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세계경제의 시계는 흐리다. 그리고 각종 리스크가 복병으로 세계경제를 위협한다. ‘G’란 알파벳으로 세계경제의 위험요인을 간단히 살펴보자.

세계경제의 쌍두마차인 미국과 중국의 제대로 된 화합이 이루어질까. 심각한 무역 불균형으로 으름장을 놓으려는 미국과 경기둔화의 우려 속에 미 국채 보유의 최대 큰 손인 중국의 대응이 긴장감을 줄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은 공산당 금융경제 지도부 회의에서 2017년 경제성장률이 6.5% 이하로 떨어지는 것도 용인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부채 증가도 여전히 우려스러운 무리수 중의 하나다. 여러 각도에서 G2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2016년 12월 금리를 다시 올렸고 2017년에 몇 번을 올릴지 모른다. 아직은 완화적 통화 정책을 사용하는 유럽과 일본의 향방과 구조개혁에 몰두하는 중국의 입장을 생각하니 통화정책의 대분기(Great Divergence)가 국제 공조의 정신을 흐리게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기후 변화나 난민문제 같은 세계적 이슈를 도외시하고 자국 이익만 우선하는 욕심(Greed)이 인근 국가를 궁핍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불확실성과 리스크 사이에서 서성대는 사람들

불확실성과 위험이 도사리는 가운데 이 두 개념을 잠시 구분해 설명해 보자. 재미있는 영화를 보기 위해 줄 서 있는 관객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입장객이 만원이 될 것으로 판단되면 다른 영화를 선택하든가 아니면 포기할 수 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는 경우의 리스크를 다른 선택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게 리스크 관리이다. 그런데 줄을 서지 않고 서로 먼저 표를 사려고 하면 내가 영화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소위 빽(배경)이 있거나 돈이 많으면 웃돈을 주거나 아니면 빽을 동원해서 표를 사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영화를 볼 수 있을지 불확실성에 놓여 있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불평등한 방법을 동원해야할 지도 모른다. 즉, 불확실성의 관리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각 경제주체가 미래의 삶을 예측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잘하는 것이다. 선진국을 보면 조세, 환율, 금융정책과 같은 각종 제도가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기업이나 국민은 발생할 비용을 예측하고 투자나 소비를 안정적으로 하며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후진국일수록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미비하다. 오히려 불손한 의도로 정책을 펼 수 있기에 그 사회는 불확실성에 놓여 있게 된다. 후진 시스템은 권력을 사유화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을 지지하는 자를 위해, 또는 지지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게 된다.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허약한 경제 펀더멘탈을 가진 국가에서 자본 유출이 예상된다. 금리가 자본유출을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세계의 이목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결정에 쏠려있다.금리의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 ‘연준 의장들의 입’을 분석해 보자.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의 별명 중 하나는 ‘장의사(undertaker)’였다. 워낙 성격이 신중하고 입이 무거운데다 평소 어두운 색의 옷을 즐겨 입어서다.

시장은 그의 말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후임 벤 버냉키 전 의장은 그와는 딴판이었다. 버냉키는 시장과의 열린 소통을 중시했다. 그는 공개 기자회견을 정례화하고 비밀스런 정책 조정을 뒤로하고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연준의 기조로 자리를 잡은 선제 안내(포워드 가이던스)’도 2012년 그가 처음 도입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미리 통화정책, 특히 기준 금리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연준은 처음 포워드 가이던스를 도입했을 당시 실업률 6.5%와 기대 인플레이션 2.5%라는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고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각종 지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개선되면서 포워드 가이던스의 애초 취지가 흐려져 실업률 목표를 삭제하고 광범위한 정보를 감안하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또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초저금리 기조를 ‘상당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유지하겠다는 애매모호한 문구를 내놓기도 했다. 이 와중에 연준 관계자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른 생각들을 쏟아내며 혼란을 부추겼다. 이러다 보니 포워드 가이던스가 있음에도 투자자들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파악하기 위한 다른 가이드를 찾았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위원들의 금리 인상 시기 전망을 나타낸 점도표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주장이 진실되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별 위원들의 점도표가 그나마 전망을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어쨌든, 연준 위원들의 발언에 시장은 출렁임을 반복했다.

완벽한 경제 예측 모형은 없어


▎라스 피터 한센 (1952~). / 사진:중앙포토
자, 이쯤에서 시장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연구한 경제학자 한 명을 불러 그의 견해를 살펴보자. 라스 피터 핸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13년 ‘효율적 시장가설’을 주장한 유진 파머와 시장의 비효율성과 인간의 비이성적 ‘야성적 충동’을 중시하는 로버트 쉴러와 함께 노벨상을 받았다. 파머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버블이 생겨나고 붕괴하는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은 언제나 효율적이어서 모든 정보를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바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버블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그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위기는 시장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만든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도 그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국민은 정부에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만 정부는 바람대로 일을 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현재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정부가 잘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부가 무언가를 더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말이 안 됩니다. 시장은 1960년 내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도, 그리고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언제나 효율적입니다.”

반대로 로버트 쉴러는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전제 하에 끊임없는 버블의 형성에 주의해야 하며 시장은 완전하지 않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유진 파머가 효율적 시장 가설을 설계한 인물이고, 같은 시카고대의 라스 피터 핸슨 교수는 평균과 분산이라는 통계치를 이용해 자산가격 결정 모형을 제시한 계량 경제학자다. 반면 예일대의 로버트 쉴러 교수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 자산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제기한 인물이다. 주가를 포함한 자산 가격을 예측할 수 없다는 파머와 예측하는 모형을 만든 핸슨, 장기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쉴러가 공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핸슨에게 다른 둘 중 누구 편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한다,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모릅니다. 나는 그들의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요.”

그에게서 중용을 지키려는 현실적 학자의 향기가 난다. 그는 평생을 금융시장의 수학 모델과 경제 전반을 연구하면서 보냈다. 그는 상당히 유연한 학자다.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모든 유용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지만 사안에 따라서 인간이 그렇게 정확한 인물인지는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경제 모형을 과신하지 마세요. 과학의 발달로 경제 모형도 진일보하지만 어디까지나 모형으로 돌려본 결과는 근사치이며 틀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산을 예측하는 모형이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시장에서 인간의 모습은 비이성적일 수 있지만 비이성적이라고 단언은 하고 싶지 않아요. 현존 경제 모델이 경제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는 투자자들이 분석 수단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을 주문한다. 현실에는 수량화할 수 없는 리스크가 있어 자산 가격 예측 모델이 완벽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주어진 제약 하에서 투자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옳다는 입장이다, 그는 나아가 자신의 모형을 통해 여러 자산 가격 결정 모델을 통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가 1982년 발표한 일반적률법(Generalized method of moments)은 탁월한 계량 경제학의 성과다, 자산 가격 예측뿐만 아니라 거시경제 모델을 실증 분석하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금물

개별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는데 그치지 않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부실해지는 것을 시스템 리스크라고 한다. 핸슨은 ‘위험’과 ‘불확실성’을 구분하고 ‘시스템 리스크’의 실체를 밝혀낸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이 되면 부실채권을 떠안은 금융권은 재무건전성을 방어하기 위해 대출을 줄이게 된다. 신용경색이 빚어지고 돈줄이 말라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고 가계는 씀씀이를 줄인다.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스템 리스크의 한 가닥이 금리다. 그에게 세계 모든 투자가들의 관심이 쏠리는 금리와 관련해 포워드 가이던스 측면에서 물어 보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고 우발적이면서 뭔가 신중성을 더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애매모호함이 증가하죠. 그 결과 경제 환경에 있어 불확실성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통화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죠. 장기적인 재정 정책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중앙은행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규제자들이 시스템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모르면서 규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진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더 나은 자산 가격 예측 모형을 개발하기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금융 위기 이후 발생한 현상들은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하고 새로운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금융 위기 이후 많은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개념으로 시스템 리스크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가 시스템 리스크라는 개념을 남용하고 있다는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우리가 직면한 리스크 중 과연 어떤 것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리스크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알아야만 정부는 적합한 틀을 사용해 금융기관을 감독할 수 있습니다. ‘거시금융 모델링 그룹(Macro Financial Modeling Group)’을 결성해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궤도에 오른다면 우리는 앞으로 금융 위기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이 바로 경제학의 재미라 할 수 있지요.”

시장 vs 정부, 그 오래된 논쟁

금융 위기 여파를 줄이기 위해 미국 정부는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확대했고, 생산적인 결과가 있었다. 단, 당시 정부는 당시 모든 금융기관을 지원해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기관들을 모두 지원해줬다면 그 기관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경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덜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그들이 경영을 잘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줄어들게 될 수 있다. 그래서 핸슨은 시장의 규율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만 잘 작동한다고 봤다.

정부의 규제와 관련해 핸슨은 파마와 달리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

“정부가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영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잃게 될 정도의 정부 개입은 무의미합니다. 규제 정도는 금융기관이 투명한 자기자본 요건 정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간단명료한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만약 그 이상의 복잡함을 요구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금융 분야를 심하게 규제한다면 그곳에서 진행되던 활동들은 그림자 금융(s h a d o w banking·비은행 금융기관)으로 밀려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잘 작동했으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했을 때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각 경제 주체가 확신을 가지고 계약을 위반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며 행동한다면 규제 없이도 시장은 잘 작동할 것입니다.”

우리는 규제와 시장 자율 사이에서 수많은 번뇌를 한다, 그리고 여전히 정답을 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을 펼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분명히 하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경제는 상호의존도가 크게 증가했다. 각국 증권시장은 수년 전과 비교해 서로 반응하는 새로운 자산 가격 변수들이 많이 늘어났다. 각국 정부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과거보다도 훨씬 많은 분야에서 다른 국가와의 연관성을 고려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재정 정책을 수립할 때는 통화 정책보다도 좀 더 멀리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장과 정부 사이에서 핸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일관성, 소통, 모럴 해저드 방지다. 그것만은 명심하자.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 있다.

1368호 (20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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