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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된 추경(追更) 예산 논란] 예산안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추경 

 

김태윤·하남현 기자 pin21@joongang.co.kr
올해 예산 1원도 안 쓰고 무턱대고 편성 주장... 외환위기 이후 18차례 걸쳐 130조원 집행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부 장관은 27일 “재정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성장률 등 대내외 경기여건을 면밀히 점검해 필요할 경우 추가대책도 검토하겠다”며 추경 편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 사진:중앙포토
올해 예산안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추가경정(추경) 예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23일 당정협의에서 “추경을 내년 2월까지 편성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유일호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재정전략협의회에서 “재정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성장률 등 대내외 경기여건을 면밀히 점검해 필요할 경우 추가대책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추경 예산 편성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즉각 “(내년도)예산안이 통과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추경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올해 예산(400조5000억원)을 1원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추경 편성론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나치게 추경에 의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확한 규모도 산출하지 않고 무조건 추경을 편성하자는 주장은 정치권의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예산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기로 한만큼 집행 효과를 지켜본 후 추경 규모를 정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에 이르는 상황에서 추경 편성은 보다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무턱대고 추경을 편성해 나랏빚을 늘리면 피해는 결국 납세자에게 돌아간다”며 “추경이 필요하다면 해야하지만 재정 상황을 감안해 나랏돈이 쓸 곳에 제대로 쓰이도록 재정 집행의 효율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카드사태·금융위기 때 효과 톡톡

추경은 역대 정부가 즐겨 쓴 카드였다. 이유가 있다. 성장률을 쉽게 올릴 수 있어서다. 추경은 기본적으로 자본(재정) 투입이다. 재정지출이 늘면 산출은 증가하게 마련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이 편성된 이듬해 경제 성장률은 대체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예산을 쓰느냐에 따라 추경 효과는 달라진다. 경기 부양은커녕 재정건전성만 훼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대한민국 재정 2016』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추경은 95차례 편성됐다. 지난 68년 동안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해는 13년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이후 올해까지 18차례에 걸쳐 130조원 넘는 추경이 편성됐다.

98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추경은 경기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98년 김대중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25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그 결과 1998년 -5.5%이던 경제성장률은 이듬해 11.3%로 껑충 뛰었다. 2003년에는 카드사태에 따른 내수 침체와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두 차례 추경이 편성됐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7조5000억원이었다. 이듬해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2%포인트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2009년에는 이른바 ‘수퍼 추경’이 편성됐다. 2008년 국채 발행 없이 4조8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썼던 정부는 2009년 21조5000억원이나 되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결국 2%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던 2009년 경제성장률은 0.7%를 기록하며 선방했다.

추경 예산 중 35%는 펑크난 세수 메우는 데 써


실패한 추경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추경은 경기가 저점이거나 하락 추세일 때 편성해 단기간에 쏟아붓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추경 편성안이 정치권 공방으로 국회에 묶여 ‘때’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 2000년과 2008년이 그런 해다. 2000년 6월 29일 김대중 정부는 저소득층 생계안정 지원과 의약분업·구제역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2조4000억원 규모의 미니 추경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추경은 107일이 지나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2008년 유가 급등에 따라 편성된 4조6000억원 규모의 추경 역시 국회를 통과하는데 90일이 걸렸다. 두 추경은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타이밍을 놓치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물론 국회 심사기간이 짧다고 능사는 아니다. 국회를 빨리 통과해도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허사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18일 역대 세 번째 규모(17조3000억 원)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제출안은 19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효과는 있었다. 문제는 저조한 집행 실적이었다. 당시 추경안은 5월 초 국회를 통과했지만 연말까지 쓰지 못한 예산이 3조9000억원(22.5%)에 달했다. 11조8000억원이 편성돼 18일 만에 국회를 통과한 2015년 추경 예산 역시 약 10%가 불용처리됐다.

정부 경기 예측 능력 부족이 부른 추경

추경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던 이유가 또 있다. 추가된 예산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부양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펑크 난 세수를 메우는 데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1998~2013년 편성된 추경 예산 111조4000억원 중 세입결손을 보전하는데 39조8000억원(35.7%)이 들어갔다. 이에 대해 박용주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추경의 취지에서 벗어나 세입 전망의 오차를 고치기 위한 추경이 잦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복적으로 경기를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과잉 예산을 짠 후, 예상한 만큼 세수가 들어오지 않자 추경 예산으로 메웠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추경이 잦다는 것은 정부가 경기 예측에 실패하고 국회는 본 예산 심사에 무능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는 간단하다. 경기 부양 효과가 있는 분야에 빠르고 과감하게 집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리 인하와 감세 등 정책 조합(policy mix)이 이뤄지면 효과는 배가된다.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경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2009~2015년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 국채는 45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경기 예측 능력을 높이고 국회가 본예산을 더욱 엄정하게 심사해 추경을 최소화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추경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추경이 재정 땜질로 성장률을 조금 올리는 용도로 쓰여서는 곤란하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은 일회성 지출이 많아 재정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본예산을 면밀히 짜고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1367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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